허영만 화백의 동명 만화 ‘타짜-신의 손’(이하 ‘타짜2’)이 스크린에서 다시 태어났다. 전작인 ‘타짜’가 2006년 영화화 돼 극장가를 휩쓴 지 8년 만이다. 조승우가 맡았던 최고의 타짜 역할은 최승현이 물려받았다. 고독함과 연민을 불러일으켰던 ‘고니’는 이제 없지만, 단순하고 저돌적인 ‘함대길’ 역시 매력적이다.
‘타짜2’ 개봉일인 3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서울 삼청동에서 최승현을 만났다. 그를 마주하는 순간, ‘최승현의 눈빛은 대체 불가’라던 강형철 감독의 말이 떠올랐다. 감기를 앓고 있어 유독 피로한 낯빛이었지만, 그의 눈빛에서는 ‘타짜’의 날카로움과 승부욕이 엿보였다.
#. “타짜를 알아보는 거지” -하우스 사장의 눈에 든 비결을 묻는 고향 선배의 질문에 대길이 하는 말.
‘타짜2’ 시나리오를 받아든 최승현은 설렘만큼 두려움도 컸다. 줄곧 어두운 캐릭터를 연기하다보니(‘포화 속으로’, ‘동창생’ 등), ‘연기 변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찰나였다. ‘타짜’라는 개성 강한 캐릭터를 맡을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한편으론 원작 만화의 마니아층이 두텁다 보니, 어떻게 연기해야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을 지 도통 엄두가 나질 않았다.
강형철 감독을 만나면서 고민이 해소됐다. 그는 영화에 대해 놀라울 만큼 많은 것을 준비해놓은 상태였고, 최승현에게 ‘네가 꼭 해야 한다’고 자신감을 심어줬다. “강형철 감독에 대한 무한 신뢰”가 그를 결국 촬영장으로 이끌었다. 또 원작 만화를 보면서 ‘함대길’ 캐릭터를 계속 연구하다보니, “어느 순간 ‘잘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최승현은 설명했다.
조승우·김혜수 주연의 전작 ‘타짜’는 한국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명작으로 꼽힌다. 전작의 후광 때문에도 부담이 컸을 법 했다. “(전작의 성공에 따른)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사실 그보다는 원작이 제 윗세대가 보던 만화였으니까 ‘마니아들의 추억과 갈증을 만족시켜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더 컸어요.”
#. “한 끗이 장땡 이길 때가 있는 겁니다” -대길의 패가 ‘장땡’이라는데 다들 올인하지만 ‘한 끗’으로 확인되자 대길의 회심의 한 마디.
최승현에게 이날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고민’이었다. 사소하게는 인터뷰에서 말 한 마디를 내뱉는 것부터, 작품을 선택하고 준비하기까지 그는 고민을 거듭했다. “원래 고민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예요. ‘타짜2’ 촬영 전에도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수 개월을 생각에 빠져 있었어요. 연출자가 원하는 캐릭터에 살을 덧붙이는 게 저의 몫이잖아요. 늘 새로운 아이디어나 애드리브를 고민해서 현장에 나갔죠.”
놀랍게도 최승현은 화투를 전혀 치지 못한다. 남다른 승부욕 탓에 게임이란 게임은 다 멀리했다. 그런데도 영화를 보면 그 손재간이 수준급이다. 2-3개월 동안 영화사 사무실에 갇혀 마술사에게 하루 5-6시간씩 특훈을 받은 덕분이다. “전작 선배들은 진짜 타짜한테 화투를 배웠다고 들었어요. 저는 마술사 분에게 화투 기술을 배웠죠. 전작과 달리 감독님은 마술사의 테크닉이 가미된 만화적인 연출을 원하셨어요.”
촬영이 끝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최승현은 여전히 ‘함대길’을 떠나 보내지 못했다. 그는 “대길이 제 손을 완전히 떠나기 전에 다른 작품을 검토하는 건 생각할 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당분간은 ‘타짜2’와 관련된 일 외에 다른 계획은 머릿속에 없다. “전작의 선배들한테 누가 되지 않으려면 망하지 않아야겠죠.(웃음) 그래야 누군가 바통 받아서 ‘타짜3’, ‘타짜4’가 나올테니까요. 명품 만화 원작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감(感)이죠, 감. 느낌!” -고광렬(유해진 분)이 자신에게 동업을 제안하는 이유를 묻자 대길의 대답.
무대를 압도하는 빅뱅의 탑과 충무로의 기대주 최승현, 그에겐 각각 어떤 의미일까. “노래든 연기든,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둘 다 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죠. 둘 다 아직까지 재미있어요. 제가 일을 하면서 설렘이 없다면, 보고 듣는 사람들에게도 설렘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걸 찾아나가는 과정, 그 시간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최승현은 자신을 들뜨게 하는 작품에는 주저없이 움직인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무조건 꽂혀야 움직이는 위험한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납득이 안 되는 역할은 욕심내지 않았다. 더 많은 작품을 할 수도 있었지만, 단순히 출연작 수만 늘리는 것은 의미 없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캐릭터의 언행을 관객이 납득하게끔 하는 게 배우의 몫이겠죠. 음악을 할 때도 그런 편이예요. 무대에서 사람들에게 진정성 있게 가사를 전달하고 음악을 전달하려고 해요. 음악이든 연기든 무언가 ‘표현’하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같겠죠? 진정성과 설득력이 없는 건 대중예술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스물여덟의 청년 최승현은 ‘타짜2’가 ‘도전’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작과 전작이 있다는 점에서 끝없이 비교당할 것이 뻔했고, 배우 입장에서 주저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던 작품이었다. “아마 1~2년 뒤였다면 도전하지 못 했을지도 몰라요. 지금은 한 살이라도 더 젊고 겁이 없으니까 덥썩 했던 거죠. 이제는 어떤 캐릭터를 맡아도 겁나지 않을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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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