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금융권이 초비상 상태에 빠졌다.
지난 10일 LA다운타운 의류상가를 급습한 연방 사법당국의 이른바 ‘무자료 현금거래’ 일제 단속 때문이다.
연방수사국(FBI)과 연방 마약단속국(DEA), 국토 안보국(HSI), 연방 국세청(IRS),이민세관단속국(ICE) 등 연방 사법기관이 총동원되다시피한 합동 단속 과정에서 마약 자금 세탁 혐의로 3개 의류상 관계자 9명이 체포되고 금융계좌를 포함한 현금 6천5백만달러가 압수됐다.
주목되는 것은 합동수사팀이 다른 한편에서 70여개 의류업체를 대상으로 수색에 나서 회계 관련 장부를 모조리 압수하거나 복사해갔다는 사실이다. 마치 세무조사하듯 해당 업체의 사무실을 이 잡듯이 뒤진 수사팀은 2년여 간 위장 근무를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지난 5월부터 160여개 업체에 대한 사전 자료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조사대상이 된 LA패션디스트릭 지역 70곳의 의류나 원단 업체들에 대해 무자료 현금거래 혐의를 두고 있었다는 얘기다.
미국은 1970년 제정한 BSA(Bank Secrecy Act)규정 위반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용(No tolerance)원칙’으로 엄하게 다스려왔다. 1만달러 이상의 현금거래에 대한 의무보고 규정인 BSA 위반 여부를 따지겠다는 게 10일 이뤄진 의류업체 집중 조사의 초점이었다.
BSA의 입법취지가 돈세탁과 탈세,기타 범죄 관련 자금의 흐름을 살피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동안 공공연하게 관행처럼 퍼져 있던 일부 의류업체들의 현금거래와 관련 금융거래 상의 BSA 위반 여부는 한인금융권으로선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 밖에 없다.
조사대상 가운데 20~30여개 업체가 LA 한인사회에서 나름대로 ‘큰손’으로 불리는 업주들이 운영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은 더 크다.
이들은 의류비즈니스를 통해 쌓은 재력으로 부동산과 금융 등 각 분야에서 투자자로 활동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인금융권과 적지 않은 규모의 예대출 거래를 하고 있는 커뮤니티 ‘머니파워’ 세력의 한 축이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코리아타운내 굵직한 상업용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다.
프로젝트마다 많게는 수십명에서 소액 주주들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어 개발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주도적인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는 일부 업주가 최악의 상황을 맞아 자산동결이 되면 그 파장은 다른 투자자는 물론 파이낸싱에 참여한 금융기관들까지 일파만파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그 뿐 아니다.
그들 업체의 무자료 현금거래가 입증돼 벌금과 나아가 탈세 여부에 따른 형사처벌 등 대대적인 제재가 이뤄지면 거래관계에 있던 금융기관들로서는 직격탄을 피할 수 없다.
한인 금융권이 가장 걱정스러워 하는 것은 기존 대출금의 상환 문제다. 연방 주요 수사기관에서 합동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무작정 기존 대출금에 대한 상환 요청도 불가능하다. 현재 금융 계좌를 비롯한 자산이 동결 되지 않았어도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할수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일부 은행 직원들이 의류 업체와 거래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1만 달러 이상의 현금을 쪼개서 입급하는 등 편법으로 편의를 봐준 사례가 나타나게 되면 해당 은행은 금융감독기관으로부터 추가적인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그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한인 의류업계와 한인은행권은 2008년 금융위기 보다 더한 어려움에 빠질 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 여파는 다운타운 의류업계에 국한되지 않고 한인타운 비즈니스 전반에 퍼질 수 있다. 11일 거의 모든 한인은행들이 의류업계와 관련된 거래계좌를 확인하고 비상 대책회의를 가진 것도 그 때문이다.
범 커뮤니티 차원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순조로운 해결과 재발 방지를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펼쳐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경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