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라스베가스

다시 보는 라스베가스<1>

라스베가스의 지리는 잘 알려진대로 미국 대륙의 서쪽 끝 캘리포니아주와 인접한 네바다주의 동남쪽 가장 자리에 위치해 남쪽으로 애리조나주, 동쪽으로는 유타주와 가깝습니다. 도시의 북쪽으로 쉽레인지(Sheep range), 남쪽은 머클록 레인지(Mccullouge range), 서쪽으로 스프링 산맥이(Spring mts.)둘러쳐져 동쪽의 미드(Mead)호수, 서북쪽의 인디언 스프링스로 연결되는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어 그래서인지 원래의 지명은 라스베가스 계곡(Las Vegas Valley)입니다.

이와 같이 산악과 사막 중간의 위치에 불과했던 라스베가스는 20세기를 지나면서 미국 굴지의 자본가들이 엄청난 물량을 투입하여 세계최고의 리조트로 자리를 잡으면서 지금은 60억 지구인들 누구라도 오고 싶어 하는 새로운 개념의 오아시스로 진화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라스베가스의 모습까지 오는 것은 결코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수많은 영욕과 좌절을 딛고 선 불굴의 정신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이제부터 그 과정을 살피는 여행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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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라는 지명의 역사적 배경

라스베가스는 18세기 후반까지 네바다와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미국 중서부는 뉴스페인(New Spain)이란 이름의 스페인 영토였지만 스페인이 쇠퇴하면서 멕시코령으로 바뀌었다가 1848년 중서부의 광대한 땅을 멕시코로부터 할양받아 미국령에 편입시킨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때문에 라스베가스란 스페인식 이름 처럼 많은 스페인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데 지난 세기 말인 1830년에서, 골드러시가 본격화되기 직전인 1848년까지 ‘Vegas’로 불리다가 후에 스페인말로 목초지(meadows)를 뜻하는 ‘Las Vegas’로 바뀐 것으로 전해집니다. 아마 그 시절에는 이곳이 풀이 많았던지 아니면 이곳이 너무 황량한 사막이라 초원을 그리면서 라스베가스라는 이름을 지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지금의 라스베가스 다운타운 프레몬트 스트리트에 가면 길이 약 800미터 정도의 돔으로 된 천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LG전자의 기술로 만든 라스베가스 걸작 중의 하나인데 그 프레몬트라는 양반이 1844년 3월경 육로정찰에 나섰다가 라스베가스 스프링스에 캠프를 차렸고 그 후 라스베가스에서 멀지 않은 유타주 솔트레이크의 몰몬교도들이 이곳 출입이 잦아지면서 도시로서의 발전이 계속됩니다.

그러다가 현대적인 도시로의 기초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04년 솔트레이크시티~라스베가스~로스앤젤레스를 잇는 Union Pacific Railroad의 철도 연결이 되면서 부터 계곡의 텐트촌이 살롱과 가게로 변모하고 급속한 성장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라스베가스는 도박 금지 구역이었다

필 토빈
라스베가스 도박의 아버지로 불리는 필 토빈. 교육세 인상을 위해 1931년 도박 합법화안을 제출한 사람이다.

오늘날 라스베가스는 세계적인 도박의 천국이지만 당시에는 한때나마 도박이 엄격하게 법으로 금지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안 믿어지시죠?

1910년 엄격한 ‘반 도박법’이 주 의회를 통과해 효력이 발생했기 때문인데 처음에는 술값내기를 위한 동전던지기 조차 금지됐다고 합니다. 필자의 추측으로는 아마 당시 인구대비 이곳에 많이 거주했던 몰몬교도들의 영향이 커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쨌든 ‘반 도박법’을 이용하여 도박꾼들은 재빨리 지하 도박장을 개설했고 단골손님들은 패스워드를 통해 입장하는 방법으로 도박은 계속 성행하다가 도박이 불법화된 지 21년이 지난 1931년. 필 토빈(Phil Tobin)이란 북 네바다 유지(목장 경영자)가 공교육에 필요한 세금을 올릴 목적으로 합법화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네바다주는 대공황 시기에 음성적으로 성행하던 도박을 합법화하고 1931년 후버댐 건설사업을 통한 공공일자리 창출, 서부로의 철도개발 등의 정책을 동원해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났던 유일한 주로써. 도박세 수익은 현재 네바다주 일반회계의 43%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주 재정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도박도시로 기초를 닦은 벅시

flamingo

초기 라스베가스에는 무엇이든 “No”가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네바다주에 접어들면 일단 고속도로의 제한속도가 독일의 아우토반처럼 없고 도박세도 주세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혼허가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기간이 없는 것이 다른 주와의 차이점이었습니다. 하지만, ‘노 주세’와 ‘결혼 노 대기기간’ 두 가지는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지만 나머지는 시대 추세에 따라 모두 사라지거나 고쳐졌습니다.

그러다가 본격적인 리조트 도시로의 변신은 2차 세계대전 후 호텔사업가 토미헐(Tommy Hull)이 지금의 Sahara호텔 건너편 빈 땅에 ‘Rancho Vegas Hotel Casino’를 건립하면서 시작됐고 수 많은 호텔카지노가 명멸했지만 초기에 지어진 호텔 가운데 ‘Flamingo’만이 지금도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플라밍고 호텔은 1940년대 ‘Meyer Lansky’란 마피아조직에서 활동했던 조직폭력배 벤자민 벅시 시겔(Benjamin Bugsy Siegel)에 의해 건립되었습니다. 이 벅시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싣겠습니다.

김도연/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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