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문’은 조선 왕조에서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로 기록된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에 궁중미스터리라는 장르를 더해 재해석의 여지를 제공한다. 이는 이 드라마의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서 기존 역사를 뒤짚어보는 효과도 생길 수 있다.
‘비밀의 문’은 초반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개돼 산만한 느낌이 들었다. 세책, 맹의, 살인사건, 선위 등의 이야기가 마치 연극에서 막이 전환돼듯 급속히 진행됐다. 맹의 등 앞의 이야기가 충분히 이해되기도 전에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버렸다.
하지만 상황을 쥐락펴락하며 온몸으로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한석규(영조)를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의 관점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기록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설정에서, 그 이유와 원인을 파헤친다. 영조가 주인공이고 아들인 사도세자는 조연일 수밖에 없다. 기존사극에서 사도세자는 광인이고, 80세가 넘게 살았던 그의 아내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을 쓰며 시름을 달래는 불쌍한 존재로 그려지게 되는 근거다.
하지만 ‘비밀의 문‘에서는 오히려 영조가 광인이다. 광인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뇌하는 왕 정도는 된다. 반면 사도세자 이선(이제훈)은 백성의 죽음에서조차 당리당략을 앞세우는 정치인들을 비판하며 살인사건을 제대로 파헤치려는 의로운 인간이다. 혜경궁 홍씨(박은빈)도 불쌍하고 가련한 여자가 아니라 앙칼진 악녀 전 단계쯤 되는 여인 캐릭터다. 박은빈의 눈빛을 보면 기존 혜경궁 홍씨와는 다른 점을 느낄 수 있다.
영조는 걸핏하면 ‘선위하겠다’고 해 온 신하들을 불러모으는 ‘선위떼쟁이‘이지만, 이 또한 권력을 지키려는 고도의 정치적인 행위다. 경회루 연못에서 잉어 낚시하는 모습 하나에도 눈길이 쏠린다. 양말을 벗고 어깨가 축 쳐진 왕의 모습도 재미있다. 고뇌하는 왕의 모습은 마치 연극을 보는 것같다.
권력을 지키려는 영조의 발목을 잡고 있는 ‘맹의’(노론의 비밀 조직 ‘대일통회맹’의 결의문)의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나며 보이지 않는 정치게임의 서막을 열렸다.
영조와 노론의 결탁을 담은 비밀 문서인 ‘맹의’를 가지고 있던 흥복(서준영 분)의 죽음을 도화선으로 영조와 이선(이제훈 분)의 갈등, 영조와 노론의 갈등, 노론과 소론의 갈등 등 각각의 입장이 분명히 그려지며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기대감을 더했다. 자살로 종결된 사건 결과에 만족하는 영조와 달리 자살로 종결된 흥복의 죽음을 받아드릴 수 없는 이선과 흥복살해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서지담(김유정 분)이 사건의 진실을 쫓기 위한 본격적인 여정에 돌입할 것임이 예고된 바다.
여기서 고뇌하는 왕 영조는 변화를 예고한다.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타개해나갈 것이다. 정치력을 발휘할 수도 있고, 두려움에 떠는 인간적인 속내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앞으로의 시청포인트가 될 것이다.
‘비밀의 문’(부제 ‘의궤살인사건’)은 이야기 구조를 조금 더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다. 어렵게 가면 시청률이 오를 수 없다. 이야기가 너무 복잡하면 드라마가 힘을 받기도 어렵다. 이야기 구조가 힘을 받으면 ‘극강 존재감’인 한석규 뿐만 아니라 이제훈 캐릭터도 살아날 수 있어 더욱 입체적인 드라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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