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드라마가 미국에서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원더우먼’ ’600만불의 사나이’ ‘맥가이버’ 등을 수입해 틀던 1980~90년대를 지나 이제는 국내 안방극장 수십개의 채널에서 하루에 방송되는 미국드라마가 수십편이다. 그런 ‘미드’의 충실한 수입국 한국에서 거꾸로 미국에 드라마를 수출하게 됐으니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미 한국드라마의 완제품은 미국 동영상 사이트에서 인기 콘텐츠로 각광을 받고 있다. 주 소비층도 비(非) 아시아계라 동포들만의 잔치도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미국 지상파채널에서 한국드라마의 스토리를 사서 리메이크를 한다고 한다. 동영상 사이트가 강물이라면 지상파채널은 바다다. 바야흐로 한국드라마가 그 바다의 입구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어렵다. 미국 드라마시장에서 바다의 입구에까지 이르는 드라마는 연간 300~500편이다. 그중 실제로 방송 기회를 얻는 것은 5%에 불과하다. 많게 잡아도 10%다. 한국드라마의 포맷을 수출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방송까지는 산넘고 물건너 가야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tvN ‘나인: 아홉번의 시간여행’과 지난달 KBS ‘굿닥터’에 이어 지난 19일에는 SBS ‘별에서 온 그대’의 포맷이 미국 지상파채널에 수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과연 이들 중 누가 먼저 바다로 나가게 될까.
|
◇ 우선 파일럿방송을 해야
미국 지상파채널에서는 모든 드라마를 정규편성하기 전에 파일럿방송을 한다.
파일럿방송이라는 것은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일단 한회를 제작해 방송하는 것으로, 방송사는 그 결과에 따라 정규편성 여부를 결정한다. 국내에서는 드라마가 아닌 예능프로그램을 파일럿방송하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에서는 드라마에도 이를 적용해 한회를 맛보기로 제작해서 시청자의 반응을 살피는 단계를 거친다.
그러다보니 미국에서는 파일럿방송을 해도 정규편성이 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이 파일럿방송을 하기까지도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한다.
‘나인’은 지난해 한국드라마 처음으로 미국 포맷 수출 테이프를 끊었지만 아직까지도 파일럿방송을 하지 못하고 있다.
tvN은 “미국은 기본적으로 드라마 제작이 빨리 진행되지 않고, 미국서 연간 기획되는 드라마가 300~500개 정도인데 그중에서 방영되는 건 5%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아직 ‘나인’은 파일럿 방송을 하지 못했지만 대본까지는 나왔다”고 밝혔다.
미국 ABC방송에 편성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나인’의 미국판은 현재 ‘가십 걸’ ‘디 오씨’ ‘캐리 다이어리’ 등을 만든 유명 제작사 페이크 엠파이어 엔터테인먼트가 제작을 맡고 있다.
‘굿닥터’의 미국판은 CBS스튜디오와 3AD, 엔터미디어가 지난달 초 진행한, 내년 시즌 방송을 위한 설명회에서 CBS방송이 바로 제작 추진을 결정한 작품이다.
이 계약을 성사시킨 KBS 유건식 BM(비즈니스 매니저)은 “계약이 체결됐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방송까지 되는 게 중요한 것”이라며 “‘굿닥터’가 성공적으로 방송되기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한다”고 밝혔다.
‘별에서 온 그대’의 미국 리메이크 소식은 미국에서 먼저 나와 눈길을 끌었다.
미국 연예전문지 할리우드리포트는 지난 19일 ‘별에서 온 그대’가 ABC방송을 통해 리메이크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별에서 온 그대’의 제작사 HB엔터테인먼트는 “얼마 전 ABC 방송국에서 파일럿 오더를 받았으며 현지 제작사인 소니픽쳐스와는 세부 계약서를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또 HB엔터테인먼트의 문보미 대표와 ‘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가 EP(executive producer) 자격으로 미국판 리메이크 작업에 참여한다고 덧붙였다.
‘별에서 온 그대’ 미국 리메이크에는 미국 메이저 제작사 소니픽쳐스 텔레비전이 제작사로 참여한다. ‘쉴드’ ‘엔젤’ ‘뱀파이어 다이어리’ 등을 집필한 리즈 크레프트와 사라 패인 작가가 대본을 맡아 현재 파일럿 대본을 집필 중에 있다고 HB엔터테인먼트는 밝혔다.
◇ 정규편성 후에는 시즌제가 목표
미국판의 대본이 통과돼서 파일럿방송이 된다고 해도 정규편성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드라마는 파일럿방송 대본 작업에 총력을 기울인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한번 오는 방송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별에서 온 그대’ 제작사는 “파일럿 대본작업을 마치는대로 올 하반기 파일럿 제작 및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며 현재 캐스팅 작업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앞서 ‘나인’의 사례에서 보듯, 제작사가 그리는 그림대로 제작진행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본작업에서 많은 벽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굿닥터’ 측은 “일단 파일럿방송 대본이 나오는 게 관건이라 거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
캐스팅은 사실 그 다음 문제다. 미국 드라마의 경우 한번 터지면 시즌10 넘게 제작되는 드라마가 많다. 배우가 한 작품을 수년에서 10년 넘게도 출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배우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국내 시청자에게도 큰 사랑을 받은 ‘프렌즈’가 결국 시즌10에서 멈춘 것도 고가의 출연료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즌제를 염두에 둔 드라마의 경우는 처음부터 캐스팅을 세게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스타급을 캐스팅했다가는 시즌제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KBS 유건식 BM은 “미국 드라마가 성공할 경우 최소 얼마간은 출연료에 큰 부담없이 시즌제를 끌고 갈 수 있도록 대개 스타보다는 연기력있는 배우들 위주로 캐스팅한다”고 밝혔다.
미국 드라마가 시즌제를 목표로 하는 것은 제작비가 크기 때문이다. 국내처럼 한편의 드라마만을 만들어서는 제작비를 건지기 힘들기 때문에 시즌을 거듭해야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다.
‘별에서 온 그대’ 제작사는 “시즌제 미국드라마가 되도록 미국 쪽 제작사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제작사 관계자는 “미국 리메이크 계약 조건이 굉장히 복잡하고 아직도 계약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면서 “캐스팅 등 제반 사항은 실제로 제작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많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정규편성이 된다고 해도 시청률이 좋지 않으면 시즌1에서 멈추는 드라마가 많다.
한국드라마의 미국 리메이크 버전 역시 최종 목표는 시즌제. 갈 길이 멀다. 윤고은 기자/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