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위상 높이는 한상..박효은 에버그린그룹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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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동남부한인회연합회 회장·동남부무역인협회 회장·미주상공인총연합회 자문위원·무궁화한글학교 이사장·88서울올림픽위원회 부회장·콜롬비아한인회 회장·미주한인회총연합회 부회장·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부회장·세계한민족재단 이사장·민주평통 자문위원·미주(국민)희망포럼 부본부장’

두줄로 빼곡히 새겨진 이 명함을 가진 주인공은 박효은(69) 미국 에버그린그룹의 대표(CEO, 사진)다. 월드옥타가 개최하는 제19차 세계한인경제인대회에 참가한 그는 30일 기자에게 명함을건네주고는 “한인단체장을 맡아 봉사하면서, 축적한 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며 “곧 장학재단도 만들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건축자재 수입과 수출, 부동산개발로 애틀랜타 지역에서는 성공한 한상으로 꼽힌다. 애틀랜타 공항에서 자동차로 50분 정도 달리면 비포트하이웨이가 나온다. 과거에는 코리아타운이 형성됐지만, 지금은 차이나타운으로 변모해가는 곳이다. 여기에 6천500평 부지에 쇼핑센터인 ‘보물섬플라자’가 있는데, 바로 박 대표 소유의 건물이다.

이곳에서 다시 자동차를 타고 10분 정도 가면 피치트리가 나온다. 여기에도 3천 평 부지에 1층 상가, 2층 임대 사무실이 있는 박 대표 소유의 ‘피치트리플라자’가 있다. 이곳에 에버그린그룹 본사도 있다. 자체 소유한 쇼핑센터 3개 외에도 그는 중국·베트남·인도계 미국인들과 파트너십을 체결해 사들인 24개의 쇼핑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임대수익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것이다. 그는 “사업하는데 운(運)이 따라 하는 일마다 힘 안 들이고 성공했다”고 말했지만, 항상 남보다 먼저 돈이 되는 사업을 발굴했고, 파트너십을 활용해 견실하게 사업기반을 다졌다.

그는 사업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경기도 시흥에서 출생한 그는 동국대를 다니다 그만두고 일찌감치 사업에 뛰어들었다. 반도조선아케이드에서 프린스 와이셔츠를 제작해 신세계에 납품하면서 꽤 많은 돈을 번 그는 취미로 오토바이를 즐겨탔다.

그러다 오토바이를 취미가 아닌 경주로 해보겠다고 마음먹고 미국 메릴랜드주로 무작정 건너가 그곳에 정착했다. 그 때가 1973년, 지금으로부터 41년 전이었다. 28살 한 창 나이에 시작한 타국에서의 그의 삶과 사업은 ‘모험’과 ‘결단’의 연속이었다.

“잠시 일용직으로 일하다 흑인들을 만났어요. 그들이 애용하는 잡화를 팔면 괜찮겠다 싶어 가게를 냈고, 예상한 대로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뤘어요. 가게를 몇 개 더 내고, 한국과 무역업도 시작했어요. 그 사이 뉴욕에 이주해 액세서리 수입과 판매도 병행했죠. 결혼도 하고 안정적으로 기업운영을 하면서 부동산개발업에도 뛰어들었답니다.”

그는 현재 건물외장재·사무실과 아파트 등에 사용하는 나무로 만든 문·유리·알루미늄새시·대리석·화강암·바닥재 등을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대리석과 화강암은 중국 칭다오·상하이 등지에서 수입한다.

박 대표의 중국과의 인연은 중국 개혁·개방 이듬해인 1993년부터 시작됐다. 주변에서는 중국에 들어간다고 하자 그에게 손가락질하며 ‘미친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는 뚝심으로 밀어붙여 재미한인으로는 가장 먼저 중국에 입성했다. 1년6개월 정도 소규모 사업을 하면서 경험을 쌓으며 ‘관시’(關系)에 공을 들였다. 중국 정부는 그에게 건축자재 쇼를 열어달라고 요청했고,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40개 기업을 이끌고 중국에 들어가 쇼를 진행했다.그의 이 같은 도전정신은 중국과 무역업을 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된 것은 물론 오늘날 성장할 기회를 잡았다.

박 대표는 미국 남부 6개 주 지역의 차세대와 국내 중소기업들을 연결하며 모국 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로 전 산업자원부장관상과 한인을 위한 적극적인 봉사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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