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을법한 우리네 이야기
취직못해 힘들어하는 막내아들에
“네 나이엔 원래 되는게 없다”며
등 토닥이는 아버지 모습 감동적
우리는 수많은 가족드라마를 봐왔다. 거의 모든 유형의 가족드라마를 본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일일극과 주말극, 아침극 등을 통해 가족극은 방송된다. 가족은 마르지 않는 샘이다.
KBS 주말극 ‘가족끼리 왜 이래’도 일상적인 가족극이지만 요즘 드라마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강한 자극, 막장적 설정이 없어 소소한 이야기를 따스하고 정겹게 끌고가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극적인 느낌이 안살아나는 건 아니다. 가족은 기쁨과 용기를 주는 존재이자 상처를 주는 존재이다.
30년째 두부집을 운영하며 아내없이 자식들을 돌봐온 차순봉(유동근)은 허리 디스크보다 더 심각한 병에 걸린 것 같다. 자식들은 이 사실을 모르며, 아버지가 입원을 해도 문병 오는 것도 쉽지 않다. 이를 자식탓으로 돌리지 않고, 그들도 일때문에, 사정때문에 시간을 내지 못한다. 위암전문의인 장남 차강재(윤박)도 결혼을 하고 처가살이를 하다보니 아버지를 뵈러 가는 게 여의치 않다. 차순봉의 막내아들 차달봉(박형식)은 레스토랑에서 열심히 일하지만, 결국 과거 어울린 건달들과 싸우다 3천만원을 물어내야 한다. 누나 차강심(김현주)과 형 차강재가 동생을 확실하게 도와주지 못하는 건 마치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같다.
KBS‘ 가족끼리 왜 이래’는 막장적 장치 없이도 극적 구성이 잘 이뤄지고 있는 가족드라마다. 사진은 관계의 재미를 주는 서강준-남지현-박형식(왼쪽부터)의 미묘한 삼각관계. |
자식들이 일때문에 바빠 집안일을 제대로 못챙기지만, 부모세대는 자신들을 지키려고 한다. 차순봉은 달봉을 위해 합의금을 주고 “달봉아, 사고 그만쳐, 아버지 허리 휘청해”라면서도 “나는 괜찮아. 니가 필요로 하는 순간까지 나는 니 아버지니까”라고 말해 감동을 자아낸다. 차순봉이 막내 아들 달봉이가 취직이 안돼 힘들어하자 “니 나이엔 원래 되는 게 없는 거야. 되는 게 이상한 거야”라고 말할 때는 먹먹하기까지 했다. 중년 부모들이 용기를 잃은 20대 아들, 딸에게 써먹을 수 있는 좋은 말인 것 같았다. 유동근은 차순봉에 대해 “엄마 상과 아빠 상이 다 담겨있는 아빠다. 어떤 때는 엄마의 부산스러움도 있고, 어떤 때는 내 아버지, 친구 아버지 같은 모습도 있는 존재”라면서 “마지막까지 사랑을 놓치지 않는 아버지다. 자식에게 표현을 다 못하는 지고지순한 사람, 그 아버지에게도 힘든 모습이 있다”고 전했다.
아버지가 30년간 이끌어온 두부집 가게는 낡은 상태. 아들은 “건물을 지으면 쓸모있겠다”는 장모허양금(견미리)의 제안을 받아들여 아버지에게 말하려고 하지만, 이 두부 가게를 돈의 문제만이 아닌 한 평생의 기록으로 받아들이는 아버지가 이를 받아들이지는 미지수다.
이처럼 ‘가족끼리 왜 이래’는 아버지와 자식 세대간에 나타날 수 있는 갈등과 오해를 공감가고 따뜻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양쪽 모두 이해될만한 이유들이 있다. 그래서 기성세대나 젊은 세대들이 모두 시청하기에 편하다.
그 가운데 몇몇 인물들의 관계는 소소한 재미를 선사한다. 비서실장 차강심(김현주)과 문태주 상무(김상경)의 ‘밀당’이 그중의 하나다. 두 사람이 ‘썸 타는’ 모습은 특이하다. 건어물녀와 완벽남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니 아직 갈 길이 멀다. 김현주는 주변환경때문에 김상경을 밀어낸다. 김상경은 김현주를 붙잡고 싶지만, 까칠한 그의 성격으로 보면 쉽게 무릎을 꿇을 처지가 아니다. 김상경은 드라마에 별로 나오지 않았는데도 의외로 잘 어울린다. 딱딱한 캐릭터에서 조금씩 허물어져가는 김상경을 보는 게 관전포인트다.
또 하나 재밌는 인물관계는 시골 소녀 강서울(남지현)-차달봉(박형식)-이은호(서강준)간의 미묘한 삼각관계다. 이 드라마는 자극적 설정은 없지만, 이들에게는 특이한 설정이 있다. 강서울이 12년전인 12살때 계곡에서 물에 빠진 꽃미남(달봉)의 목숨을 구해준 후 그 소년과 결혼하기 위해 무작정 상경해 달봉 집에 거주하며 레스토랑 알바에 나섰지만, 사실은 달봉의 절친인 은호가 당시 짖궂은 장난으로 자신의 이름을 달봉이라고 말했음을 알게됐다.
순수한 강서울은 아직 차달봉에 대한 믿음을 키워와 ‘멘붕’에 빠졌지만, 이런 상태에서 강서울을 좋아하는 두 남자의 경쟁을 보는 것도 괜찮다. 서울 역을 맡은 남지현의 구수한 사투리도 좋고, 박형식과 서강준, 두 남자의 상반된 매력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또한, 미녀 손담비(권효진 역)가 사랑에 빠져버린 남자 차강재(윤박)는 남자가 볼 때는 ‘밥맛’이지만 왜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지도 궁금하게 여기면서 시청하게 된다.
서병기선임기자wp@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