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지난 1987년 데뷔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발표한지 3개월 만에 비운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싱어송라이터 유재하를 기리기 위해 1989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25회 째를 맞았다. 이 대회는 수많은 실력파 싱어송라이터들을 배출해내며 한국 대중음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정난으로 개최 무산 위기에 놓이기도 했던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지난해부터 대회 출신 뮤지션들로 구성된 ‘유재하 동문회’가 직접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6시 유재하의 모교인 서울 행당동 한양대학교 백남음악관에서 제25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가 열렸다. 올해 대회에는 총 597팀이 지원해 1ㆍ2차 예선을 거쳐 총 10팀이 본선에 올랐다. 이 같은 지원자 수는 대회 역사상 최다이다. 지난해에는 총 482팀 이 지원한 바 있다. 또한 올해 대회는 처음으로 유재하의 기일(11월 1일)에 열려 더욱 의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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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지난 1일 오후 서울 한양대학교 백남음악관에서 열린 제25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인 ‘유재하음악상’을 수상한 이신영(백석대 실용음악과 2학년) 씨가 ‘그 때 그 마음으로’를 부르고 있다. [사진제공=무붕] |
이날 대회는 그룹 스윗소로우의 성진환(16회)와 오지은(17회)의 사회로 진행됐다. 부부 사이이기도 한 둘은 자연스럽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경연장의 분위기를 띄웠다.
심사위원으로는 정원영 호원대 실용음악과 교수와 김형석 작곡가를 비롯해 조규찬(1회), 고찬용(2회), 이승환 한양대 실용음악과 교수(5회), 스윗소로우의 김영우(16회) 등 ‘올드보이’들이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2층 객석에 자리한 심사위원들은 대회 내내 진지한 표정으로 본선 진출자들의 무대를 바라보며 평가에 집중했다. 이밖에도 지난해 제24회 대회에서 수상한 ‘유재하 동문회’의 ‘젊은 피’들이 대회 진행을 도왔다. 박경환(14회)과 배영경(22회)은 축하 공연으로 대회에 힘을 보탰다.
‘그 때 그 마음으로’를 선보인 이신영(백석대 실용음악과 2학년) 씨가 대상인 ‘유재하 음악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 씨는 안정된 피아노 연주와 함께 수준급의 보컬을 들려줘 객석으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또한 이 씨는 작곡상인 ‘CJ문화재단상’까지 거머쥐며 새로운 실력파 신인 싱어송라이터의 탄생을 알렸다. 이 씨는 “내심 기대만 했지 대상 수상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유재하 음악상’을 기반으로 좋은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금상과 은상은 각각 조소정(동아방송대 실용음악과 2학년) 씨의 ‘꼬까신’과 안시온(동아방송대 실용음악과 2학년) 씨의 ‘그 모습까지 사랑했었고’의 차지였다. 조 씨는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6마디 소설로 유명한 “팝니다. 아기 신발, 한 번도 사용한 적은 없다”로부터 영감을 받은 이 곡으로 객석에 잔잔한 감동을 안겼다. 조 씨는 대상 이신영 씨와 함께 공동으로 ‘CJ문화재단상’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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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은 연세대 신학과 4학년 김명정 씨와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4학년 김현우 씨로 구성된 듀오 ‘익명의 시인들’의 ‘한여름 밤의 꿈’, 4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3학년 백승환 씨의 ‘한강’, 동아방송대 영상음악과 3학년 정신혜 씨의 ‘새’에게 돌아갔다.
장려상 수상작은 김승렬(강동대 실용음악과 1학년) 씨와 김경민(강동대 실용음악과 1학년)로 구성된 듀오 ‘스위트앤드라이트(Sweet & Light)’의 ‘그 남자’, 박종민(호원대 실용음악과 4학년) 씨와 이정아(호원대 실용음악과 4학년) 씨로 구성된 듀오 ‘퍼플커튼’의 ‘홀로 걷는 길’, 윤영현(한양대 실용음악과 3학년) 씨와 이다솜(한양대 실용음악과 4학년) 씨 그리고 조은길(한양대 실용음악과 2학년) 씨으로 구성된 팀 ‘유후’의 ‘소망’, 이나래(단국대 생활음악과 4학년) 씨와 조여진(단국대 생활음악과 4학년) 씨의 ‘오늘 하루’다.
지난해 대회와 마찬가지로 올해 대회 역시 실용음악과 출신 지원자들이 강세를 보였다. 10팀 중 총 8팀이 실용음악과 전공자들이었다.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만큼 참가 곡들의 수준 역시 나무랄 데는 없었지만, 특별히 강한 인상을 남긴 곡은 많지 않았다. 확실한 개성을 가진 곡은 오히려 음악과 무관한 전공을 가진 참가자들의 곡이었다.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을 떠올리게 만드는 사색적인 가사와 따뜻한 멜로디가 돋보였던 ‘익명의 시인들’의 ‘한여름 밤의 꿈’과 한강의 일상적인 풍경을 재치 있게 그려낸 가사와 흥겨운 멜로디로 웃음을 준 백승환의 ‘한강’을 향한 객석의 반응은 다른 참가자들의 곡들과 비교해 호응도 면에서 미묘한 온도차를 보였다. 대회 당일 ‘유재하 동문회’의 투표로 결정되는 ‘유재하 동문회상’이 백 씨의 ‘한강’에 돌아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기본 이상의 실력을 갖춘 만큼, 이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의 미래는 모범생보다는 당돌한 인재를 얼마나 많이 발굴해내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유재하가 한국 발라드의 문법을 새롭게 썼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