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속 덕수(황정민)이 70대 노인이 돼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보며 오열하는 장면 속 대사다. 그렇게 덕수는 70대 끝자락이 되서 아버지를 찾고 눈물을 쏟아낸다. 누구의 남편도, 아버지도, 형, 오빠도 아닌 아들로서.
지난 24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 CGV에서 언론배급시사회를 진행한 국제시장’은 6.25 전쟁 이후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로 황정민, 김윤진, 오달수, 정진영, 장영남, 라미란, 김슬기 등이 출연한다.
덕수는 1950년 6.25 사변으로 전쟁이 한창이던 때, 마음이 함락되기 일보직전에 함경도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를 탄다. 1,4000명이 넘는 피란민들은 배에 타기 위해 죽기 살기로 부산행 배에 덤벼든다. 덕수도 아버지, 어머니, 막순, 승규, 끝순이와 함께 고향을 떠나려 했다. 그러나 동생 막순을 잃어버렸고, 아버지는 막순을 찾기위해 북에 남는다. 그 때 아버지는 정신없이 배에 올라타는 피란민 사이에서 덕수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아버지가 없으면 네가 가장이다. 네가 가족을 잘 지켜야된다” 그리고 국제시장 꽃분이네를 찾아가라고 당부한다.
이 때부터 였을까. 덕수에게는 지울 수 없는 책임감이 생긴다. 부산 국제시장 고모댁 ‘꽃분이네’에서 자라며 서울대에 입학한 동생 승규를 뒷바라지하고, ‘꽃분이네’를 팔려는 고모부에게 가게를 인수하고, 막내 끝순이를 시집보낸다.
이 과정에서 독일로 광부 생활을 3년 동안 하고 베트남에 기술자로 일하기 위해 날아갔다. 20대 청춘에 하고싶은 일이 얼마나 많았겠느냐만은 오로지 가족만 생각하고 그는 이역만리 타국 땅을 밞는다. 이 모두 자기 자신이 아닌 아들, 남편, 아빠, 형으로서의 역할을 위해서다. 자신보다는 가족을 우선시하는 덕수의 삶에서는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의 모습이 보여진다. 결국 덕수는 선장인 꿈이지만 가족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자신의 꿈은 결국 이루지 못했다. 대신 그는 안전한 가족의 울타리가 돼 다복한 가정을 이룬다.
아버지로서 살아왔지만 마지막만은 아들로서 남는다. “아버지가 이제 못찾아오시겠지”라며 ‘꽃분이네’를 70대가 되서야 팔려는 결심을 한다. 이 대목에서 덕수가 아버지를 항상 기다려왔음을 보여준다.
‘국제시장’은 처참하고 안타까운 우리의 근현대사와 그 혼돈의 시대 속에서 산, 아니 살아낸 덕수의 모습으로 시종일관 감동을 전한다. 한국전쟁이 휴전되기 전까지 살기 위해 아우성 치는,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을 이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지금을 일궈냈는지 아픔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 영화는 근현대사를 살아보지않은 젊은 관객들에게는 우리의 역사와, 아버지의 마음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근현대사를 겪은 중장년층은 그 때 그 시절에 다시 젖게 만들어준다.
시대가 달라진만큼 우리의 아버지들은 영화 속 모습과 달라졌겠지만 가족을 위해서 자기 자신은 잊고 사는 변하지 않는 아버지의 마음은 그대로가 아닐까. 그렇기에 이 영화는 전연령층의 공감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또한 ‘국제시장’은 눈물과 함께 웃음도 적절하게 버무렸다. 정주영 회장, 디자이너 앙드레 김, 가수 남진, 씨름 선수 이만기,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들을 깜짝 등장시켜 보는 재미도 더한다. 여기에 곳곳에서 분위기를 환기 시키는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도 엿볼 수 있다.
20대부터 70대의 덕수를 연기한 황정민은 ‘국제시장’을 ‘비로소’ 완성시켰다고 할 수 있을만큼 열연을 펼쳤다. 황정민의 눈빛, 표정, 말투, 심지어 그의 주름까지 아버지의 그것들을 연상시킨다. 70대 연기에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지만 70대의 황정민은 주변에 볼 수 있는 할아버지들의 특징을 그대로 담아냈다.
김윤진, 오달수, 장영란, 라미란, 김슬기 등도 ‘그 때 그 시절’ 속에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족의 구성원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외에도 총 제작비 180억원이 들어간만큼, 체코와 태국에서 촬영된 광산 세트와 월남전 장면, 국제시장 세트는 현실감이 넘쳐 그대로 몰입하게 만든다.
‘해운대’ 이후 5년 만에 신작을 내놓은 윤제균 감독은 공백 간의 고민을 ‘국제시장’ 속에 쏟았다. 영화는 그가 얼마나 아버지를 애틋하게 생각하는지, 삶을 관통하는 아버지의 희생으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실제 극중 덕수 이름은 그가 대학교 2학년 때 고인이 된 아버지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자극적이고, 젊은층만을 공략한 영화들 사이에서 아버지, 어머니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극장을 찾아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영화다. 오는 12월 17일 개봉. 러닝타임은 126분
유지윤 이슈팀기자 /jiyoon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