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와숫자들 “뿌리가 보이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다”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음악은 그 음악을 만든 이가 딛고 사는 땅의 정서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외국인이 판소리를 아무리 잘 소화해내더라도, 우리 소리꾼 이상의 경지에 다다르는 모습을 상상하긴 어렵다. 다소 절망적인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우리가 서양의 음악인 록으로 본고장의 로커 이상의 경지에 다다르는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세계 대중음악사에도 그런 사례를 기록한 페이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한 시장 규모차의 문제가 아니라 ‘솔(Soul)’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를 직시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도 그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정규 2집 ‘보물섬’을 발매한 밴드 9와숫자들은 한국 가요 황금기의 서정을 절묘하게 녹여낸 록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지난 2009년 셀프 타이틀 앨범으로 데뷔한 9와숫자들은 2011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앨범’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어 9와숫자들은 2012년 미니앨범 ‘유예’를 발매해 한국대중음악상 3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음악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9와숫자들은 2년 만의 신작인 이번 앨범에 전작보다 명도를 높인 사운드와 다채로워진 색깔의 음악을 담아내는 변화를 꾀했다. 그리고 가사는 더 깊어졌다. 지난 달 28일 서울 당산동의 한 카페에서 9와숫자들의 멤버 송재경(보컬), 유병덕(드럼), 유정목(기타), 이용(베이스)을 만나 새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설명 : 밴드 9와숫자들이 정규 2집 ‘보물섬’을 발매했다. 왼쪽부터 유병덕(드럼), 송재경(보컬), 유정목(기타), 이용(베이스). [사진제공=오름ENT]

송재경은 “전작에 대한 평가는 후했지만 앨범 전체를 지배했던 무거운 정서만이 우리의 색깔이 아니며, 우리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밴드란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앨범의 전체적인 흐름도 중요하지만 수록곡 개개의 색깔과 완성도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유정목은 “홈레코딩의 비중이 높았던 전작과는 달리 스튜디오에서 대부분의 녹음 작업을 진행하며 사운드의 질적인 완성도를 높이는데 신경을 썼다”며 “전작에선 녹음과 믹싱을 하며 곡을 만들어나갔지만 이번에는 녹음 전에 편곡까지 마쳐 사운드가 거의 완성된 상황이라 멤버들의 처음 의도대로 앨범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곡 ‘숨바꼭질’을 비롯해 지난 9ㆍ10월에 싱글로 선공개됐던 ‘보물섬’과 ‘커튼콜’, ‘실버라인’, ‘깍쟁이’, ‘높은 마음’, ‘잡 투 두’, ‘초코바’, ‘톱니바퀴’, ‘한강의 기적’, ‘겨울 독수리’, ‘창세기’, ‘북극성’ 등 13곡이 실려 있다. 앨범 재킷에는 원, 삼각형, 직선 등 기하학적인 도형들이 노란 색 바탕 위에 배치돼 있다. 이 난해한 도형들은 9와숫자들의 생각을 반영한 앨범의 중요한 단서다.

송재경은 “가운데를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선은 땅을 의미한다”며 “그 선은 윗부분이 더 큰 역삼각형과 아랫부분이 더 큰 정삼각형을 가로지르는데, 땅 아래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 부분이 취약하면 위태로울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근의 공식’은 ‘보물섬’ 외에 이 앨범의 가장 유력한 타이틀 후보였는데 우리 음악의 뿌리를 찾자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서양의 음악인 록을 아무리 잘 흉내 내도 그 정수에 도달하긴 어렵기 때문에 조금 더 깊이 있게 음악을 하려면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음악을 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었다”며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따라부르며 체득한 음악은 이문세, 동물원 등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켜면 쉽게 들리던 가요였으므로, 그런 음악들을 촌스럽다며 거부하기보다 창조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 앨범의 강력한 힘은 시를 방불케 하는 가사로부터 나온다. 그동안 청년의 사랑과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가사로 담아왔던 9와숫자들은 이번 앨범에도 같은 주제를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하고 있다. ‘보물섬’의 ‘동서남북 어디를 봐도/그댈 향해 있지 않은 곳은 없었고’와 ‘실버라인’의 ‘바보 같은 소릴 해봐/내가 책임져 줄 테니’라는 ‘실버라인’, ‘숨바꼭질’의 ‘버리고픈 내 모습도 그대에겐 소중하다’와 같은 연가(戀歌)의 은유는 문득 가슴 한 구석을 움푹 파고들어 저릿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갈등을 다루는 ‘높은 마음’의 ‘높은 마음으로 살아야지/낮은 몸에 갇혀있대도’, ‘잡 투 두’의 ‘친구야/언젠가 우린 미소 접어두고/서로 다퉈야 할지 몰라’라는 서늘한 내적인 고백은 참신함을 넘어 음악과 결합한 가사의 힘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송재경은 “일상에서 느끼는 자잘한 생각과 격한 감정들을 배설하듯 표현하는 대신, 눌러놓았다가 공통적으로 정리된 주제를 노래를 만든다”며 “사랑은 감정의 가장 낮은 곳과 높은 곳을 엿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포괄하는 중요하고 대단한 주제”라고 설명했다.

9와숫자들은 복고적이되 낡은 느낌을 주지 않는 음악을 들려주는 밴드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9와숫자들은 이 같은 평가 중 ‘복고’라는 단어에 대해 고개를 저으며 자신 만의 음악관을 피력했다.

송재경은 “최근 각광 받고 있는 화이트 라이즈(White Lies)의 음악도 과거 디페쉬 모드(Depeche Mode),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음악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현한 것이듯, 문화는 연속성과 전수를 통해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어느 것도 복고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며 “영국의 어떤 신예 밴드들도 결국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펄프(Pulp), 스웨이드(Suede) 등의 음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문화의 발전은 결국 과거 문화의 정수를 파악해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표현해내는 것이고 우리의 방법론 역시 그러하다”고 강조했다.

9와숫자들은 오는 27~28일 서울 서교동 벨로주에서 단독 콘서트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보다 앞서 9와숫자들은 13일 제주시의 복합문화공간 ‘겟 스페이스(Get Space)’ 개관 기념 콘서트, 20일 서울 광장동 악스코리아에서 열리는 ‘뉴 이어 월드락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다.

송재경은 “우리의 음악적 중심만 확실하다면 어떤 음악을 들려줘도 청자의 공감대 형성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어떤 방향에서 바라보아도 뿌리가 보이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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