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희ㆍ정진영 기자의 채널고정 어워드> ‘미생’에 공감하고 ‘정도전’에게 배우고 ‘별그대’와 꿈꾼 2014

‘드라마 공화국’의 위엄은 여전했다. 지상파 방송3사와 케이블 채널, 종합편성채널을 통틀어 줄 잡아 100여편의 드라마가 홍수처럼 쏟아졌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의 입맛을 맞춘 드라마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올 상반기 ‘별에서 온 그대’(SBS)가 한국과 중국을 아울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후 지상파 주중 미니시리즈는 사상 유례없는 부진을 겪었다. 재벌2세와 신데렐라의 러브스토리에 열광했던 시청자들은 흔해빠진, 하지만 현실 불가능한 멜로 공식에 금세 싫증을 냈다. 그 틈새로 쏟아진 판타지 로맨스가 새로운 ‘왕자님’을 등장시키며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속가능할 수 있었던 신(新) 흥행 공식은 대한민국 하늘 아래 빚어진 비극적인 참사 앞에 무참히 가라앉았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비극이 산재한 사회를 살아가는 대중에게 안방 드라마의 고질병(멜로, 출생의 비밀, 재벌2세 등)을 답습하는 콘텐츠는 허망하기 그지 없었다. 상반기 반짝 쏟아진 몇 편의 볼 만한 드라마를 떠나보내니 길고 지루한 ‘드라마 암흑기’가 왔다. 하반기가 돼서야 보통의 삶을 사는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케이블 채널 tvN ‘미생’의 등장으로 시청자는 그나마 위안을 얻었다. 그 때 지상파 드라마는 여전히 상투적인 작법을 버리지 못하고 시청자에게 외면당했다.
‘고승희ㆍ정진영 기자의 채널고정’은 올 한 해 드라마를 결산해 ‘최고’와 ‘최악’의 프로그램을 평가해봤다. 해마다 드라마 편수는 늘고 있지만, 열악한 제작환경과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와 스타작가의 공백을 메울 신인들의 부재를 고스란히 반영하듯 ‘최고의 드라마’와 ‘최악의 드라마’가 선명하게 갈렸다.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던 진기한 드라마도 등장했다.

▶ 최고의 드라마


1. tvN 미생

고승희= 우리 모두의 이야기…드라마 시장의 판을 바꿨다 ★★★★☆
정진영= 조용한 것처럼 보이나 그 어느 드라마보다 뜨거웠다 ★★★★★

똑같은 일상에 매달리는 ‘우리’에겐 위로가 필요했다. 업무 과부하에 시달리면 ‘노예’였고, 일 부족에 허덕이면 ‘월급도둑’이 돼버리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하반기 대중문화를 이끌었다.
케이블 채널 tvN ‘미생’은 지상파 드라마가 90년대 회귀 본능을 발휘할 때 그 흔한 ‘출생의 비밀’과 ‘멜로’ 없이도 안방극장을 평정했다.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을 드라마로 옮기기 위한 제작진의 ‘현실화 작업’에 공감은 커졌고, 그 흔한 클리셰 하나 없었던 ‘미생’으로 인해 드라마 시장엔 새로운 공식 하나가 작성됐다. “기존질서를 따르지 않은 드라마의 성공사례”(윤태호 작가)인 셈이다. 지난 10월 17일 1.6%로 출발한 드라마는 13일 방송된 18화에서 평균 8.0%, 최고 9.5%를 기록했다. TV 고령화 시대에 브라운관 앞을 떠난 젊은 직장인 사이(남자 3040, 여자 2030 세대)에선 지상파 포함 동시간대 1위를 기록 중이다.
상사와 부하직원, 정규직과 비정규직, 공채와 경력사원, 남자와 여자 사원의 서로 다른 직장 내 생활방식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단면을 투사했고, 하찮고 부질없어 보였던 월급쟁이의 삶을 비로소 특별하게 매만진 위로와 공감의 콘텐츠였다.
다만 종영을 향해가자 ‘미생’에도 아쉬움이 나온다. 간접광고 10억 신화를 달성하고도 지극히 현실적인 PPL로 디테일을 살렸던 ‘미생’도 결국 일을 냈다. ‘토끼눈’ 오 차장이 들어올린 안약 탓에 시청자의 눈에선 피눈물이 흘렀고, 빈약했던 캐릭터를 확장한 탓에 안영이의 개인사는 자못 지루하기까지 했다. 안영이와 그의 아버지를 뒤쫓아간 장백기는 이 시대의 진정한 ‘오지라퍼’였다.

2. KBS1 ‘정도전’


고승희=리더십 부재 사회에 던진 600년 전 인물들의 신념…오늘을 돌아보고 미래를 희망했다 ★★★★☆
정진영= 정통사극을 본방사수하는 내 모습이 무섭고도 놀라웠다 ★★★★

한동안 사극의 대세는 ‘구가의 서’와 ‘기황후’ 같은 퓨전사극이었다. 100부작 이상의 긴 호흡으로 내용을 끌고 가는 정통사극은 떨어지는 속도감 때문에 젊은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또한 정통사극은 제작에 막대한 비용이 들다보니 방송사 역시 제작에 나서는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도전’은 미니시리즈를 방불케 하는 속도감 있는 전개로 주목을 받았다. 우선 ‘정도전’은 빠른 전개를 위해 50부작으로 편성됐다. 또한 주연을 맡은 배우 조재현을 비롯해 유동근, 임호, 박영규 등은 탁월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수많은 명대사들을 쏟아냈다. 10%대 초반으로 시작한 시청률은 종영 무렵에는 그 2배인 19%(닐슨코리아 제공)로 뛰어올랐다. ‘정도전’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으며 정통사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전 세대에 걸친 사랑을 받았다.

3. SBS ‘별에서 온 그대’


고승희= 두 달 반, 울고 웃었다…2014년 마지막 판타지 ★★★★
정진영= 이런 소재로도 설레는 판타지 로맨스가 가능하다니 ★★★★

‘별그대’로 시작한 2014년 지상파 드라마의 활화산 같던 인기는 ‘별그대’가 퇴장하며 성급하게 막을 내렸다. 지난 2월 종영한 드라마의 최고 시청률은 28.1%, 올 한 해 지상파 3사 미니시리즈는 단 한 편도 ‘별그대’의 숫자를 넘지 못했다. 단언컨대 ‘별그대’는 2014년 한중을 통틀어 최고의 히트상품이었다.
400년 전 지구에 불시착한 완벽한 외계인 도민준(김수현 분)은 그 숱한 ‘백마 탄 왕자님’의 공식을 다시 썼고, 백치미를 등에 업은톱스타 천송이(전지현 분)는 코트와 립스틱, 심지어 치킨까지 불티나게 팔아치웠다.
국내에서의 현상이 아니었다. ‘별그대’를 통해 신한류 4대천황(김수현, 이민호, 김우빈, 이종석)으로 거듭난 김수현은 중국의 국빈이 됐다. 심지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는 “시 주석이 젊은 시절 도민준과 똑같았다”고 말해 국내에선 시 주석의 젊은 시절 사진이 방송뉴스를 통해 도배됐다.
중국 내 한류드라마의 인기도 재점화했다. 드라마는 회당 3만5000달러에 판권이 판매됐고, ‘별그대’의 흥행은 다른 드라마에 대한 관심으로 향했다. SBS ‘쓰리데이즈’가 기존 드라마의 평균 판매 금액 8배에 달하는 금액으로 판권이 팔렸고, ‘ 피노키오’로 넘어오며 판권 가격은 회당 28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지난해부터 불었던 로맨틱판타지 드라마 중 2014년에 유일하게 사랑받은 드라마로, 한중 시청자는 올 상반기 ‘별그대’의 판타지로 끝내는 이루지 못할 마지막 꿈을 꿨다. ‘웜홀’ 이론을 향한 대중의 지적 욕망을 충족한 건 ‘인터스텔라’ 이전에 ‘별그대’였다.

▶ 최악의 드라마

1. SBS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고승희= 스타 캐스팅ㆍ진부한 멜로ㆍ뻔한 스토리…안일한 지상파 드라마의 대참사(별 없음)
정진영= 시청자를 너무 얕봤다. 부족한 콘텐츠 앞에 아량 따위는 없다(별 없음)

안일한 지상파 드라마의 ‘끝판왕’이었다. 월드스타 비와 걸그룹 f(x)의 크리스탈을 필두로 아이돌그룹 멤버들이 총출동했다. 가요계를 다룬다며 그들의 생활을 가장 잘 아는 배우들을 캐스팅했다는 제작진의 이야기는 첫 방송과 동시에 설득력을 잃었다.
지난 9월 17일 첫 방송돼 11월 6일 막을 내린 드라마는 가수 비의 군 제대 후 복귀작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애초부터 ‘키다리 아저씨’ 스토리를 들고 나온 드라마는 구태의연한 지상파 드라마의 난제를 모조리 끌어안았다. 돈 많은 남자, 예쁘고 착한 데다 매사에 열심인 캔디녀는 처음엔 앙숙이었지만 이내 사랑을 키운다. 연애를 가로막는 사소한 난관과 둘 사이의 오해, 남녀 주인공의 앞길에 파놓은 함정은 오직 ‘기승전연애’의 방식을 따르기 위한 진부한 설정에 불과했다. 보고 또 봤던 소재들이 조악하게 뒤섞여 버릴게 더 많았던 이 드라마의 가장 큰 테러는 가수들의 연기였다. 연기의 기본도 안 된 아이돌 가수들의 대사 전달력은 수준미달이라 국어책을 읽는 것보다도 못했으며, 가만히 서있는 모습만으로 오글거리는 연기적 디테일을 완성하는 놀라운 장기를 보여줬다. 동화같은 감성의 음악드라마라는데 비디오 가수들이 집결하니 ‘음악의 힘’도 증발했다.
기존의 방식을 답습한 뻔뻔한 스토리를 스타 캐스팅으로 위장한 ‘내그녀’는 한 마디로 ‘속 빈 강정’이었다. 외형만 트렌디하게 꾸몄을 뿐 구태의연함으로 빼곡히 채우니 잘 나가던 한류드라마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방영 당시 역대 최고가인 회당 20만 달러(약 2억원)에 판권이 팔렸으나 중국에선 “한국드라마의 3대 클리셰(교통사고, 암, 치료 불가)를 모아놨다”고 비꼬았다.

2. KBS2 ‘태양은 가득히’


고승희= 복수극도 멜로극도 아닌 그저 그런 신파…애국가 시청률이 말해준다 (별 없음)
정진영= 밖에서 문제점이 확실히 보이는데 귀를 닫은 것인가? 눈을 감은 것인가? (별 없음)

KBS2 수목드라마 ‘태양은 가득히’는 소리 소문 없이 안방극장에서 퇴장했으나, 길이 남을 기록 하나는 세웠다. 일단 첫 방송부터 저조했다. 3.7%로 지난 2월 출발한 드라마는 14회분에서 2.2%(닐슨코리아 집계, 전국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2000년 방송된 KBS2 ‘바보같은 사랑’(1.8%), 2007년 방송된 KBS2 ‘사육신’(1.9%)에 이어 역대 드라마 최저시청률 3위에 해당하는 부끄러운 수치다. 지상파에선 MBC ‘기황후’가, 종편에선 JTBC ‘밀회’가 버텼으니 대진운이 비극이었다는 변명을 내놓기엔 진부한 복수극 ‘태양은 가득히’의 퀄리티는 너무도 머쓱하다.
드라마는 알랭 드롱이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 제목을 따왔다. 스토리는 전혀 다르지만, 모티브는 유사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한 남자는 오로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삶의 이유을 쓴다. 숨을 쉬는 매순간 야만적인 자본주의에 치여 크고 작은 부조리를 감내해야 하는 남주인공의 스토리는 대한민국 사회 전체의 시스템을 저격하는 듯 보였으나, 그게 끝이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드라마는 진부한 복수극에 긴장감 없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에 불과했다. 지난해 ‘상속자들’을 잡은 지성 황정음 주연의 복수극 ‘비밀’의 대반격으로 짜릿 반전을 맛 봤던 KBS의 반복학습은 완전한 실패였다. 시청자들은 이미 껑충 앞서가 있는데 ‘복수’도 ‘사랑’도 치열하지 않았던 신파극에 아까운 70분을 내줄 시청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3. KBS2 ‘내일도 칸타빌레’


고승희= 넘치니 오글거리고, 덜어내니 슬펐다…엑스맨은 제작진(배우들 노고에 별 반 개 준다) ☆
정진영= 부족한 연출 역량과 산으로 가는 극본 앞에 심은경도 소용 없었다 (★☆)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다. 원작의 느낌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연출 앞에서 주연배우 심은경의 고군분투는 ‘오버’로 보일 뿐이었다. 또한 ‘내일도 칸타빌레’는 음악을 주제로 다룬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실책을 범하며 어정쩡한 로맨틱 코메디물로 남았다. 배우들의 연기와 표정이 따로 노는 연주 장면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이는 로맨스보다 클래식 음악을 심도 있게 다뤘던 원작과 결정적인 차이다. 여기에 지상파 드라마들이 어리석게 집착하는 주인공들의 삼각관계는 더더욱 ‘내일도 칸타빌레’를 원작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여주인공 캐스팅 논란까지 빚으며 원작 팬들의 관심을 모았던 ‘내일도 칸타빌레’는 결국 동시간대 시청률 꼴찌로 종영했다. 앞으로도 ‘내일도 칸타빌레’는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릴 것이다. 리메이크 드라마의 ‘나쁜 예’로.

4. MBC ‘야경꾼일지’

고승희=이 드라마 시작이 뭐였더라 ☆
정진영=시청자도 답답했지만 스태프들도 답답했을 것이다. ★

퓨전사극 ‘야경꾼일지’는 조선시대 판 야근 경찰인 ‘야경꾼’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야경꾼일지’는 배우들의 연기력 논란과 미흡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첫 회에 등장한 어설픈 ‘이무기’ 컴퓨터 그래픽에선 한숨만 흘러나왔다. ‘야경꾼일지’는 두터운 팬덤을 가진 한류스타들이 주연을 맡아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체면치레를 했지만 결코 압도적이진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연출이었다. 드라마의 주된 소재인 ‘야경꾼’에 대한 내용은 양념 수준이었고, 내용의 대부분은 갈등을 위한 갈등과 지상파 드라마 특유의 억지 로맨스로 채워졌다. 모든 갈등을 마지막 회 한 회만에 봉합하며 해피엔딩으로 마친 연출은 역량의 한계를 드러내며 시청자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동시간대 시청률 1위는 결코 훈장이 아니다.

▶ 최고와 최악 사이 “넌 누구냐?”

MBC ‘왔다 장보리’

고승희= 그래봤자 ‘막장’, 그런데도 푹 빠졌다(머리는 아니라 하는데 자꾸만…) ☆
정진영= 결과만 좋으면 ‘막장’이 ‘명품’이 되는 세상이 과연 정의로운가(별 없음)

올해 주말 안방극장은 ‘왔다! 장보리’ 없이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다. 지난 4월 첫 방송에서 9.8%의 시청률로 시작한 ‘왔다! 장보리’는 극 후반부에 이르러 시청률 30%를 돌파하며 ‘국민드라마’ 반열에 올랐다.
‘왔다! 장보리’는 ‘막장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출생의 비밀’이라는 자극적인 설정을 기반으로 권선징악을 그려냈다. 여기에 불륜, 음모, 복수, 범죄, 신데렐라 스토리 등 ‘막장드라마’에 등장할 수 있는 모든 소재들이 동원됐다. ‘막장드라마’라는 곱지 않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왔다! 장보리’는 시청자를 잡아끄는 탄탄한 극본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올해 최고의 흥행 드라마가 됐다. ‘막장드라마’의 정체성을 가진 ‘왔다! 장보리’를 한 쪽으로 치우쳐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특히 이유리가 연기한 악녀 ‘연민정’은 드라마의 주인공인 ‘장보리’를 압도하는 존재감으로 방송 내내 화제를 모았다. 출세를 위해 남자친구를 배신하고 자신의 아이까지 버린 ‘연민정’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장보리’를 괴롭히며 시청자들의 욕을 먹었다. 먹은 욕은 고스란히 시청률 상승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드라마 제목을 ‘왔다! 연민정’으로 바꿔야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왔다! 장보리’에 대한 평가는 ‘막장드라마’와 ‘명품드라마’ 양극단으로 갈렸다. 내용은 ‘막장’인데 연기가 ‘명품’인 드라마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왔다! 장보리’는 꽤 어려운 숙제를 남겼다.

고승희ㆍ정진영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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