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에도 ‘갑질’ 많다

연말 최대의 이슈는 뭐니뭐니해도 ‘땅콩’이다. 대한항공 전 조현아 부사장의 ‘수퍼갑질’은 한국을 넘어서 해외토픽감으로 세계인의 입질에 올랐다.

문제의 ‘땅콩’은 때아닌 호황을 맞았고 ‘둘이 먹다가 하나가 내려도 모를 땅콩’ ‘집 나간 비행기도 돌아오게 만드는 조카다미아’ 등 인터넷에는 수많은 패러디 물이 쏟아진다.

이를 지켜보는 세상의 무수한 ‘을’들은 그야말로 시쳇말로 웃프다.

그런데 부뚜막에 올라간 못된 송아지를 보여 혀만 찰 일이 아니다.

돌아보면 좁디 좁은 한인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갑’이며 또 ‘을’이었다.

갑질

한인사회에 만연한 ‘수퍼갑질’

#서류미비 노동자 박 모씨서류미비자? 그렇게 부른다고 뭐 달라지는 것이 있나? 그냥 쉽게 불법체류자라고 하라.

사장에게 우리는 쉽게 쓰고 버릴 수 있는 일회용 노동자들이다.

경기가 안 좋아 캐시를 받고 일할 수 있는 곳도 많지 않으니 그저 일할 수 있게 해준 것만으로 감사하라지만…… 타임카드도 못 찍으니 하루 10시간 12시간을 일해도 오버타임을 요구할 수도 없다. 그런 일도 사장과 얼굴 붉혀봤자 나만 손해다. 억울해도 그냥 가는 거다.

몸이 아파 쉬고 싶어도 쉴 수 없고 1년 365일 휴가 얘기도 못 꺼낸다. 툭하면 하는 말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이다. 그저 입다물고 일할 수 밖에. 사장 말대로 매상이 떨어질수록 나는 해고 일순위다…

카트 영화

#S바베큐 웨이추레스 미세스 리하루 종일 가위질에 손목이 끊어질 듯 아프다. 그런데 속은 손목보다 더 쓰리고 아프다.

끝까지 참았어야 하는데 결국 손님에게 말 한마디 했다가 욕은 욕대로 먹었다.

또 그 진상가족이었다. 노부부에 아들, 며느리, 손주까지 총출동이다. 할머니는 늘 소화가 안되 안 먹을 거라며 무제한 4인분만 시킨다. 8살은 족히 되어 보이는 아이는 올해도 5살이란다. 무제한 3인분 오더에 5식구가 늘 포식을 한다. 계속되는 고기추가에도 웃는 얼굴로 꾹꾹 참았는데 고기는 역시 예쁜 여자가 잘라줘야 맛있다는 할아버지 말에 참았던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손님~ 고기 드실 거면 4인 오더 하셔야 합니다”순간 사장 나오라며 소리를 치며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친구 아버지라는 이유로 사장도 나보고 사과하란다. 결국 내가 머리를 조아렸다…… 팁? 팁 같은 소리 하신다.

#영주권 신청 1년 차 한과장그 놈의 ‘그린카드’가 뭐길래. 스폰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그만 뒀을 것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곳이다. 주인은 타운에서 덕망 있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영주권 스폰을 해주는 대신 돈을 요구했고 나는 말도 안 되는 임금으로 일하고 있다.

영주권만 나와봐라. 그 날로 문을 박차고 나올 것이다. 그리고 보란 듯이 내 사업을 시작할거다.

그땐 신분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 다 도와줄 요량이다. 나는 기필코 좋은 사장이 되리라!

패러디

#대형마켓 납품업체 O식품 김사장작은 식품회사에서 대형마켓에 납품하게 되었으니 성공했다는 칭찬도 다 빛 좋은 개살구다.

납품 결제대금을 2,3개월씩 미루는 것은 이 바닥에서는 공공연한 일이고 우리 같은 영세업체는 주는 날이 받는 날이다. 요즘같이 경기가 안 좋을 때는 6개월도 참고 기다려야 한다.

뿐인가. 지점마다 요구사항도 제 각각이다. 계절마다 시즌마다 판촉행사나 할인이벤트를 끊임 없이강요 당한다.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 몫이다. 싫다고 할 수 있나? 당장 물건을 빼라고 험한 소리를하기 일수고 눈에 안 띄는 구석자리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한인매체 광고 영업사원 이부장오죽하면 광고’주님’이라고 할까.

오로지 실적에 죽고 사는 영업사원들에게 업소 사장님들은 그야말로 ‘갑 중의 갑’이 아닐 수 없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주님’ 모시기는 그야말로 살얼음 걷기다.

얼굴 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 한 두 시간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고 바람맞는 것은 기본에 눈 앞에 보이는 데도 출근 안 하셨단다. 상냥한 얼굴로 TV광고에 등장하는 유명 여자 한의사는 자기한테 말 붙이지 말라며 야멸차게 쏘아 붙인다. 병원 입구에는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성경 문구가 걸려있다. 내가 이래서 교회에 안 다닌다….

우리 안에 ‘조현아’ 있다

계약관계의 ‘갑’과 ‘을’에서 파생된 단어인 ‘갑’의 횡포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패러디2

아버지 벌의 대리점 사장에게 막말을 퍼부은 N유업 직원, 승무원에게 폭행을 행사한 라면상무, 주민들의 인간적인 모욕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아파트 경비원 등 갑의 횡포에 피해 입은 을의 이야기를 우리는 무수히 알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격양된 목소리 혹은 체념한 듯 털어놓던 박모씨, 미세스 리, 한과장, 김사장, 이부장은 모두 실제 인물들이다.

“이것만 갑질인가? 식당에서 아줌마에게 반말하고, 마트 캐셔를 함부로 대하고, 택배기사를 무시하고, 다들 그렇게 살지 마라. 조현아가 바로 너희들이다.”

지난 13일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뽑은 베스트 댓글이다.

우리 모두가 식당 아줌마나 마트 캐셔, 택배기사뿐만 아니라 전화상담사나 경비원 등 서비스 업종에 종사자들에게 무심코 갑질을 해댄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의 의미가 담겨있다.

실제로 한 설문조사 기간의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5명이 ‘갑질’을 한 적이 있다고 대답한 반면 10명 중 9명이 ‘갑질’을 당했다고 대답했다. 내가 하는 ‘갑질’은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혹, 마음 한 구석에 나의 ‘갑질’로 비행기에서 내쫓은 ‘을’이 떠오른다면 용서를 구하자.

더 늦기 전에. 진심으로.

하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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