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과 종합편성채널이 쏟아낸 참신한 콘텐츠에선 새로운 스타들이 등장했다. 국내 방송 사상 전무후무한 투덜이(이서진)가 호감연예인으로 등극했고, ‘오디오까지 물려가며’ 토론을 벌이는 한국말 잘 하는 외국인들로 인해 방송가는 ‘외국인 예능’이 붐을 이뤘다. 하반기 최고 히트작 ‘미생’(tvN)의 배우들이 내민 ‘위로의 손’은 누구도 마다할 수 없었다.
웃을 날보다 울어야할 날들이 유독 많았던 2014년 대한민국에 잠시나마 쉴 틈을 내어준 스타들이 있었다. ‘고승희ㆍ정진영의 채널고정’에서는 2014년 방송가를 결산하는 마지막 편으로 예능, 드라마에 이어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은 ‘올해의 얼굴’을 선정했다. 거기엔 ‘동물의 왕’도 있다. 별점을 동반했던 ‘채널고정’이지만, 이번 편은 별 다섯 개로 ‘대동단결’이다.
▶ 남자 배우 ‘정도전’ㆍ ‘가족끼리 왜이래’ 유동근
고승희= ‘유동근’만이 ‘유동근’을 넘을 수 있다
정진영= 명필이 붓을 가리지 않듯, 명연기자도 작품을 가리지 않는다
케이블 채널 드라마에 밀려 줄줄이 부진의 늪에 빠진 올 한해 지상파 드라마들 가운데에서도 빛나는 작품은 있었다. 대하드라마 ‘정도전’과 주말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는 주말 안방극장의 시청자들을 끌어모아 KBS의 체면을 세워줬다. 그 중심에는 배우 유동근의 명연기가 있었다.
‘정도전’에 ‘이성계’ 역으로 출연한 유동근은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강인한 장수를 연기하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유동근의 열연에 힘입은 ‘정도전’은 퓨전 사극 열풍으로 인해 힘을 잃어가던 KBS 정통 사극의 부활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도전’의 성공은 KBS가 새로운 대하드라마 ‘징비록’을 편성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랬던 유동근이 곧바로 근엄한 이미지를 벗고 따뜻한 아버지로 변신한 것은 예상치 못한 행보였다. 유동근은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세 남매를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온 아버지 ‘차순봉’ 역을 맡아 절절한 부성애를 연기해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가족끼리 왜 이래’는 지난 21일 시청률 38.7%(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MBC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도 넘지 못한 ‘마의 시청률’ 40%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 여자 배우 MBC ‘왔다! 장보리’ 이유리
고승희= 민소희 패러디까지 완벽…당신의 ‘장인정신’에 감동했습니다
정진영= ‘막장’ 논란조차 무너뜨리고 주인공마저 잊게 만든 마성의 연기
‘조연의 설움’은 드라마 한 편으로 씻은 듯 사라졌다. 이미 전작(MBC ‘반짝반짝 빛나는’, tvN ‘노란 복수초’ 등)을 통해 독한 여자 캐릭터를 만났으나 이유리는 ‘왔다 장보리’(MBC)를 통해 ‘악역의 진화’를 보여줬다.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감정의 널뛰기를 하면서도, 지치지 않고 내달리는 악녀 연기는 칭송받아 마땅할 만큼 52부 내내 흐트러짐이 없었다. 악녀들의 주특기인 두 얼굴 연기에 시청자는 혀를 내둘렀고, 최종회에서 ‘민소희’(아내의 유혹)을 패러디하는 모습에선 13년차 배우의 장인정신이 빛을 발했다.
결과는 ‘잭팟’. 분노하고 싶어도 참아야 하는 날들을 사는 이들에게 연민정은 ‘감정의 배출구’ 역할을 하며 브라운관 밖의 열풍을 몰고 왔다. 드라마 이후 예능 프로그램(MBC ‘세바퀴’)의 안방마님 자리도 꿰찼고, 사상 초유의 악녀가 광고주의 마음도 훔쳐 네다섯 편의 CF를 찍었다.
지금 이유리는 이 드라마 한 편으로 MBC 연말 시상식의 귀빈이 됐다. 연기대상에선 대상 후보로, ‘방송연예대상’에는 예능인의 자격으로, ‘가요대제전’에선 MC로 참석한다. 가장 뜨거운 연말을 보낼 이유리는 이날들을 위해 네 벌의 드레스를 준비했다. 시청자 투표로 전환한 ‘2014 MBC 연기대상’은 이유리의 손을 들어줄까. 일단 두 표는 확정이다.
▶ ‘동물의 왕’ tvN ‘삼시세끼’ 밍키
고승희= 너저분한 인간세상에 내려온 깜찍이…‘밍키적’이 전부라도 말 많은 사람보다 낫다
정진영= 잘 키운 동물 출연자, 열 게스트 부럽지 않다
지난달 21일 tvN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에 게스트로 출연한 배우 고아라는 고정 출연자들을 제쳐두고 강아지 ‘밍키’부터 찾아 눈길을 끌었다. ‘삼시세끼’에 투입된 동물들은 이미 고정 출연자인 이서진과 옥택연에 버금가는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제작진은 ‘밍키’를 비롯해 동네 개 ‘해롤드’, 염소 ‘잭슨’, 고양이 ‘멀랜다’, 닭 다섯 마리(소피아, 그레이스, 올리비아, 엘리자베스, 마틸다)를 투입, 이들의 움직임을 포착해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장난이 도가 지나쳐 시작”(나영석 PD)된 동물 이름짓기 놀이는 프로그램의 따뜻한 정서를 만드는 한 축이 됐다.
나영석 PD는 “시작은 이서진, 택연 둘이었지만 이들의 세계가 조금씩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이며 인격을 부여하는 순간 이들은 식구가 되고, 식구가 되는 순간 따뜻함이 느껴지게 된다. 그런 정서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 중 밍키는 나 PD 스스로도 인기요인으로 꼽을 만큼 대세 동물이 됐다. 특별히 하는 것 없이 ‘밍키적’(밍기적의 ‘밍키’식 표현)거리는 것만으로도 최강의 귀여움을 뽐내는 ‘밍키’ 덕분에 많은 시청자들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옥순봉’ 계급서열도가 말해주듯 두 노예를 추월한 상위계급 ‘밍키’는 열 게스트 부럽지 않은 ‘미친 존재감’을 보여준 ‘삼시세끼’의 스타다.
▶ 남자 예능인 JTBC ‘비정상회담’ 외국인 패널들
고승희= 1명의 힘이 아니다…10명의 공든 탑에 누가 돌을 던지랴
정진영= ‘외국인 필터’로 들여다 본 대한민국, 얼마나 날카롭고 유쾌한가
등장부터 뜨거웠고, 식지 않는 관심만큼 악재마저 ‘사이즈’가 달랐다. ‘기미가요’와 에네스 카야의 사생활 논란으로 2연타를 맞은 것이 내우외환,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 인기의 일등공신 삼둥이와 막판까지 경합을 벌인 것도 이 때문이다.
‘터키 유생’으로 인기를 모았던 에네스 카야 1인이 프로그램의 초반 관심을 불러온 건 사실이지만 다른 10명(하차한 호주 다니엘 포함)의 외국인이 보여준 면면에 시청자는 반응했다. 한국의 역사, 정치, 문화에 해박한 미국 출신 타일러 라시, 중국인 본연의 가치관도 솔직함으로 비치자 호감멤버로 등극한 장위안, 자기 주장을 펴면서도 상대를 불편하지 않게 하는 화법의 알베르토 몬디부터 ‘섬섬옥수’ 타쿠야, ‘프랑스 꽃미남’ 로빈 데이아나, ‘예능대세’ 샘 오취리, 품격있는 독일인 ‘다니엘 린데만’까지 이들 간의 호흡과 조화에 버릴 사람은 없었다.‘벨기에 전현무’로 입이 쉴 날이 없어도 상대의 의견을 포용할 줄 아는 줄리안은 공감능력 1인자이고, ‘푸른 눈의 전사’로 불렸던 프로게이 기욤 패트리는 부족한 어학실력을 꾸준히 채운 덕에 희대의 명언을 남겼다. 전현무를 향한 외마디, “무정한 사람!”이다.
김희정 PD는 “출연자들의 한국어 실력이 늘수록 프로그램의 참신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웃지 못할 농담도 하지만 그들에겐 아직 할 이야기가 많다. 시청자는 더이상 말 잘 하는 외국인을 신기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우리를 돌아볼 뿐이다.
▶ 여자 예능인 지상파-케이블 종횡무진 이국주
고승희= ‘K-팝’보다 착착 감기는 ‘식탐송’…명실상부 ‘대세’였다
정진영= 물 오른 능청 앞에서 비호감 이미지도 “호로록 호로록! 마무으리~”
대표 ‘비호감’ 연예인에서 묵직한 ‘대세’가 됐다. 개그우먼 이국주는 지난 2006년 MBC 15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데뷔년도가 말해주듯, 이국주의 무명시절은 길었다. 오랜 시간 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에게 2014년은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게 만든 전환점이었다. tvN 예능프로그램 ‘코미디빅리그’에 ‘식탐녀’로 등장해 인기몰이를 시작한 그는 ‘의리남’ 배우 김보성을 패러디한 ‘보성댁’ 연기로 전국에 ‘의리’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의리’ 열풍 덕분에 원조인 김보성까지 덩달아 인기몰이를 했다. 또한 그는 ‘코미디 빅리그’에서 다양한 ‘식탐송’을 선보이며 “호로록 호로록”이라는 유행어도 탄생시켰다.
그간 뚱뚱한 몸매를 소재로 삼았던 개그는 자학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국주는 뚱뚱한 몸매를 긍정하는 개그로 밝고 유쾌한 웃음을 전하며 그간의 개그와 차별화를 보여줬다.
이후 이국주의 행보는 파죽지세였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의 고정 패널을 꿰찬 이국주는 뮤지컬에도 출연하며 활동의 보폭을 넓혔다. 또한 그는 여성 연예인들의 꿈인 화장품 광고까지 접수하며 광고계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