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경험, ‘쌍천만감독’을 만들다=‘윤제균’이란 이름 석 자를 처음 알린 영화는 조폭 코미디 ‘두사부일체’(2001)다. 모자란 학업을 채우기 위해 조폭이 학교로 돌아가는 설정은 참신했고, 다 큰 건달들의 좌충우돌 학교생활은 포복절도할 에피소드로 가득했다. 300만이 넘는 흥행에 힘입어 ‘두사부일체’ 시리즈는 3편까지 이어졌다.
2002년 영화 ‘색즉시공’은 전작을 능가하는 성공을 거뒀다. ‘색즉시공’은 한 마디로 ‘센세이셔널’이었다. 섹시코미디라는 장르가 낯설었던 당시, 노골적이지만 밉살스럽지 않은 ‘19금’ 에피소드는 400만 관객의 웃음과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후 ‘제2의 색즉시공’을 꿈꾸는 섹시코미디가 쏟아졌지만 원조의 아성을 넘진 못했다.
‘1번가의 기적’(2007)은 윤제균 감독의 스펙트럼을 한층 넓혔다. 코미디 장르에 특화된 듯 보였던 그가 휴먼드라마 장르에도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이는 재난 블록버스터 ‘해운대’(2009)로 이어졌다. 소재는 묵직해지고 스케일은 커졌지만, 윤제균 특유의 코믹 정서와 눈물 뽑는 이야기는 여전했다.
그에게도 흥행실패의 경험이 있다. ‘낭만자객’(2003)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철저히 ‘머리로 만든 영화’였다. 대중적 성공을 위해 이런저런 계산을 한 영화가 오히려 100만 명도 채 모으지 못했다. 참혹한 흥행 성적표를 받아든 그는 관객과의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심기일전할 수 있었다.
‘국제시장’이 개봉 28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겪어낸 우리시대 아버지의 일대기를 통해 중장년 관객 층의 향수와 젊은 관객 층의 감동을 이끌어냈다. |
▶“예상치 못한 이념 논란, 속상하지만 이해하죠”=‘국제시장’은 흥행의 폭발력 만큼이나 잡음도 많았다. 윤 감독의 연출 의도와는 별개로 영화는 개봉전부터 보수와 진보 네티즌의 이념 공방으로 주목받았다. 산업화 시대를 살았던 우리시대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점에서 보수 네티즌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높은 평점을 몰아줬다. 반대로 진보 성향의 일부 네티즌들은 평점 깎기로 맞불을 놨다.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극과 극 평점이 경쟁하듯 올라오는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윤 감독 입장에선 억울할 법 했다. 이념 공방을 피하기 위해 민감한 정치적 이슈를 걸러냈고, 지역·민족·세대의 화합을 상징하는 설정을 더했는데도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으니 말이다.
“일부 평론가와 언론, 정치계에서 논란이 된 거잖아요. 제가 만나본 일반 관객들은 ‘정치색과 관련이 없는 영화인데 왜 그런 논란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을 주셨어요. 제 의도를 일각에서 다르게 해석하고 평가한 부분은 속상하지만, 영화라는 게 의도와 해석의 차이는 있는 거니까 이해해요.”
‘국제시장’이 개봉 28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겪어낸 우리시대 아버지의 일대기를 통해 중장년 관객 층의 향수와 젊은 관객 층의 감동을 이끌어냈다. |
▶‘20년 연기내공’ 황정민 김윤진 오달수의 앙상블=‘국제시장’흥행의 수혜자는 윤제균 감독 만이 아니다. 황정민과 김윤진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처음 ‘1000만영화’를 써넣을 수 있었다. 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황정민에게 종전까지 최고 흥행작은 468만 관객을 모은 ‘신세계’. 김윤진은 1998년 영화 ‘쉬리’(582만 명)였다. 두 배우 모두 ‘국제시장’으로 데뷔 20여 년 만에 ‘1000만 배우’ 수식어를 달았다. ‘국제시장’으로 개인 통산 누적 관객 수 1억 명을 돌파한 오달수에게도 작품의 의미는 남다르다.
황정민 김윤진 오달수, 세 배우 모두 윤제균 감독의 캐스팅 1순위였다. 윤 감독은 ‘덕수’ 역으로 황정민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고, ‘달구’ 역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오달수를 모델로 캐릭터를 만들었다. ‘영자’ 역의 김윤진 역시 윤제균의 부름을 받고 시나리오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합류를 결정했다.
▶150미터 세트, 의상 1만 벌, 분장만 4시간…=‘국제시장’ 팀은 1950년대 한국전쟁 피란민들의 터전 국제시장부터 1960년대 파독광부들이 일한 독일 함보르 광산, 1970년대 국내 기술근로자들이 외화벌이에 나선 베트남 등을 담기 위해 부산부터 체코 탄광박물관, 태국 등 3개국 로케이션을 감행했다. 로케이션 비용은 20여 억 원. 베트남 신에서는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차량 등 소품들을 직접 베트남에서 공수해 촬영하기도 했다.
미술팀은 국제시장의 시대별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부산 기장군에서 100여 일에 걸쳐 직선 길이 150m의 대규모 세트를 지었다. 일산과 부산 기장군의 실내 세트엔 약 20억 원이 투입됐다. 의상팀은 현대사가 배경인 영화의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 시대별로 2000벌씩 총 1만 벌에 가까운 의상을 준비했다.
윤제균 감독은 배우들이 대역없이 20대부터 70대까지를 소화하길 원했다. 이 때문에 청년의 얼굴은 CG를, 노년의 얼굴은 특수분장의 도움을 받았다. CG 작업은 일본의 에이지 리덕션 전문 CG 업체 포톤 등 국내외 4개 업체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이는 한국영화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사례로, 총 20억 여 원이 소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