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은 필요한데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휴양지로 훌쩍 떠나거나 값비싼 스파를 즐길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늘 있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이리저리 치인 마음을 잠시나마 다독이고 싶다면, 가까운 극장만 한 곳이 없습니다. 때마침 스크린에 ‘힐링 로봇’이 등장했습니다. 걸어다니는 마시멜로우를 떠올리게 하는 이 로봇은, 까칠한 관객조차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빅 히어로’는 천재공학도 형제 테디·히로가 만든 치료용 로봇 ‘베이맥스’가 의문의 마스크맨으로부터 도시를 구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뻔한 히어로 무비가 떠오릅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캐릭터부터 전투 동기까지 제법 새롭습니다.
우선 ‘로봇인 듯 로봇 아닌’ 베이맥스의 생김새부터 눈길을 끕니다. ‘로봇’ 하면 으레 떠올리는 차가운 금속 재질이 아닙니다.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힐링 로봇’이다보니, 치료 받는 이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말랑한 고무 소재에 둥글둥글한 몸매를 갖췄습니다. 마블의 원작 만화에선 금속 로봇이지만,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의 상상력을 거친 결과죠. 덕분에 베이백스는 마성의 매력을 뽐내던 마블의 히어로들과 달리,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매력을 뽐냅니다.
치료용 로봇이라 애당초 싸움은 할 줄 모릅니다. 베이맥스는 형 테디의 빈자리에 침울해진 히로의 정신 건강을 염려, 그의 회복을 돕기 위해 악당 마스크맨 추적에 나섭니다. 마스크맨의 공격으로부터 히로를 보호하기 위해 전투 로봇으로 거듭나게 되죠. 그렇다고 배트맨이나 아이언맨처럼 극적인 변신을 기대하는 건 무리입니다. 보호 장구를 하나하나 수동으로 착용하는데, 그 마저 올록볼록 삐져나온 살(?) 때문에 모양새가 빠집니다. 대신 ‘빅 히어로’의 귀여움은 배가 됩니다.
아직까지 애니메이션을 아이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어른들이 있다면, 이참에 선입견을 털어내길 바랍니다. ‘빅 히어로’는 화려한 볼거리에 웃음과 감동의 스토리까지 얹어 풍성한 상차림을 내놓습니다. 애니메이터 100여 명이 투입돼 그린 가상 도시는 놀라운 수준의 디테일을 자랑합니다. 히로가 베이맥스와 함께 도시를 활강하는 장면에선,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쾌감을 맛볼 수 있죠. 여기에 ‘허당 히어로’ 베이맥스의 슬랩스틱 유머, 히로가 형의 부재를 극복하는 과정이 주는 뭉클함은 웃음과 눈물을 함께 부릅니다.
‘빅 히어로’는 어느덧 관객 수 100만 명(28일 기준)을 넘어섰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애니메이션으로선 오랜만에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기도 했죠. ‘겨울왕국’의 흥행 신드롬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화제가 될 만한 스코어를 남길 것이라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옵니다. ‘빅 히어로’에 대한 이 같은 관심은, 많은 이들이 힐링을 갈구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