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피그말리온 마법’…할리우드 애니에 생명을 불어넣다

겨울왕국 ‘엘사자매’ 빅히어로 ‘베이맥스’
한국인 애니메이터의 손끝에서 탄생
김상진씨 색맹 딛고 디즈니 수석자리에
심슨가족·스폰지밥은 RD코리아 솜씨
최근 애니어워즈서 대거 수상후보로
장인적 재능·근면·성실함이 큰 강점

“정말 훌륭한 세계를 손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런 대단한 직업이 또 있을까”(미야자키 하야오)

일생을 애니메이션과 함께 한 거장만의 자부심은 아니다. ‘토이스토리’, ‘카’ 등을 연출한 존 라세터 디즈니&픽사 CCO(최고창조책임자) 역시 “이런 재미난 걸 돈 받고 하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까지 그들의 숨은 노력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아이들에겐 꿈을 심어주고 성인들에겐 꿈을 추억하게 한다는 점에서, 애니메이션의 가치에 이처럼 자부심을 느끼는 건 당연해 보인다.

이 매력적인 분야에 최근 한국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극장가에 걸린 애니메이션 가운데 한국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작품이 없을 정도다. 남녀노소 ‘렛 잇 고’(Let it go)를 흥얼거리게 했던 ‘겨울왕국’의 엘사 자매, 사랑스러운 슈퍼 히어로 ‘베이맥스’( ‘빅 히어로’) 모두 한국인 애니메이터의 손 끝에서 탄생했다. 스크린 속 스폰지밥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 또한 한국인 애니메이터들이다.

디즈니 수석 애니메이터 김상진 씨가 디자인한‘ 빅 히어로’의 힐링로봇‘ 베이맥스’.

▶ ‘색맹’ 핸디캡 넘어 ‘겨울왕국’· ‘빅 히어로’ 연타석 홈런=지난 2013년 ‘겨울왕국’은 애니메이션으로선 전무후무한 흥행 기록을 세웠다.(누적 1029만 명) 매력적인 캐릭터와 독창적인 스토리, 중독성 있는 삽입곡은 세대를 초월해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특히 TV 프로그램에서 코스프레 열풍이 일 만큼, 주인공인 ‘엘사’와 ‘안나’ 자매는 큰 사랑을 받았다. 그들의 어린 시절을 그린 주인공은 한국인 최초의 디즈니 수석 애니메이터 김상진(캐릭터 디자인 슈퍼바이저) 씨다. 그는 앞서 ‘볼트’, ‘라푼젤’ 등의 주요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하기도 했다.

김상진 슈퍼바이저가 이번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로봇 캐릭터를 선보였다. ‘빅 히어로’의 힐링로봇 ‘베이맥스’는 마블 코믹스의 원작에선 금속 로봇이었다. 베이맥스는 그의 상상력을 거쳐 말랑말랑한 고무 소재에 넉넉한 살집, 뒤뚱뒤뚱 걸음걸이의 귀여운 히어로로 다시 태어났다. 덕분에 흥행 조짐도 심상치 않다. 개봉 2주 째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200만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고교시절 색약(적록색맹) 판정을 받고 화가의 꿈을 접었던 김상진 슈퍼바이저는 독학으로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다. 캐나다의 작은 TV 애니메이션 업체에 입사한 그는,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디즈니의 문을 두드렸다. 다행히 실력을 인정받아 입사에 성공, 20여 년 간 일하며 캐릭터 최고 디자이너 자리까지 올랐다.

“색맹이 큰 핸디캡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이 문제로 작업을 못 하는 일은 없었으니까요. 모두가 핸디캡 하나 쯤은 가지고 있잖아요. 선입견으로 사람의 잠재적 재능이 봉쇄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행히 디즈니에선 아티스트들의 잠재력을 끄집어내려 하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현재 디즈니에선 10여 명의 한국인들이 일하고 있고, 애니메이터는 4명 정도다. ‘빅 히어로’의 한국인 캐릭터 ‘고고’는 디즈니의 또 다른 한국인 애니메이터 김시윤 씨가 초기 디자인을 잡았다. 

RD코리아가 제작에 참여한 파라마운트 픽쳐스의‘ 스폰지밥 3D’

▶ ‘심슨가족’, ‘스폰지밥’ 등 유명 애니메이션의 숨은 한국인들=디즈니와 같은 할리우드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아니지만, 그들과 협업해 입지를 굳힌 한국인들도 있다. 바로 ‘라프드래프트 코리아’(이하 ‘RD 코리아’)의 직원들이다. 1992년 출발한 RD코리아는 그 해부터 ‘심슨가족’을 비롯해 ‘주만지’(1996), ‘파워퍼프 걸’(1998), ‘스폰지밥’(1998), ‘루니툰 쇼’(2010) 등 미국의 유명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와 극장용 영화에 참여해 왔다. 오는 18일 개봉하는 극장판 ‘스폰지밥 3D’(감독 폴 티비트)도 그들의 솜씨로 완성됐다.

RD코리아의 작업 과정은 대략 이렇다. ‘스폰지밥 3D’의 경우 기본 캐릭터와 스토리는 제작사인 파라마운트 픽쳐스로부터 전달받는다. 이후 RD코리아 측이 △화면에 보일 배경과 인물의 위치를 잡고(레이아웃) △타이밍에 맞게 캐릭터의 표정과 액션 등을 그린다.(원화) △원화가 움직이는 타이밍에 필요한 그림을 추가로 그리고(동화) △인물을 둘러싼 배경 등도 질감을 표현해 나타낸다. △작업한 이미지를 스캔해 디지털 파일로 만들고, 이를 동영상으로 전환한다. 틈틈이 파라마운트사의 피드백을 받고 수정 작업도 이뤄진다.

파라마운트사를 비롯한 유명 제작사들이 RD코리아를 찾는 이유는 뭘까. 정연화 RD코리아 차장은 ‘작품의 품질’과 ‘업체의 신뢰도’를 꼽았다.

“원작자 및 총감독과의 화상회의를 통해 원하는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최대한 파악하고, 제작사와 지속적으로 의사소통을 해요. 내부적으로는 아티스트들이 회의를 수시로 열어 작품 방향을 공유하고 올바른 판단을 위해 의견을 조율하죠. 영상을 납기일 내에 선적하는 것 또한 중요한데, RD코리아의 신용도 역시 작품의 품질 이상으로 높다는 것이 강점이죠.”

RD코리아의 실력은 화려한 수상 실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1995년 국내 최초의 컴퓨터 제작 창작 애니메이션인 ‘맥스’(THE MAXX)로 프랑스 애니메이션 페스티벌(Annecy Awards)에서 최우수감독상을 받았다. 이후 애니메이션 분야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에미 어워즈(Emmy Awards), 우수한 TV 광고방송과 프로그램 등을 선정하는 텔리 어워즈(Telly Awards) 등에서도 15차례나 트로피를 안았다.

▶ “한국인 애니메이터, 장인의 재능 있어”=지난 달 31일(현지시간) 열린 제42회 애니 어워즈(Annie Awards)에선 한국인 참여작이 대거 주요 부문 후보에 올랐다. ‘빅 히어로’와 블루스카이 스튜디오의 애니메이터 이상준 씨가 참여한 ‘리오2’는 최우수 캐릭터 디자인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한인 프로듀서 로이 리 씨가 제작한 ‘레고 무비’는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슈퍼바이저 에릭 오 씨가 활약한 ‘더 댐 키퍼’는 최우수 단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픽사의 켄 김 씨와 카툰 네트워크의 최은영 씨가 참여한 ‘토이스토리 댓 타임 포갓’과 ‘어드벤처 타임’은 각각 최우수 TV 캐릭터 애니메이션 부문과 TV 애니메이션 연출 부문 후보로 지명됐다. 드림웍스 애니메이터 윤지현 씨가 참여한 ‘미스터 피버디’는 최우수 특수효과 부문 후보에 올랐다.

이 가운데 ‘레고 무비’는 최종 수상의 영예까지 안았다.

한국인 애니메이터들이 전방위 활약하는 배경에 대해 정연화 차장은 “한국인은 손이 빠르고 미세한 차이까지 표현해내는 장인의 재능이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표정의 생동감이나 동작의 활력 등을 더하는 창의성까지 겸했다. 아울러 “무엇보다 한국인 애니메이터의 큰 강점은 근면함과 성실함”이라며 “같은 재능이 있어도 메인 프로덕션을 미국인 아티스트들이 해내지 못하는 이유도 그 차이 때문이다. 까다로운 작업 요청이 계속해서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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