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미안해요…. 그치만 사랑해요.” 이 시대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강심이를 연기한 딸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김현주에게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쉽고 흔한 말, 하지만 쉽게 하지 못하는 말을 꺼내놓자 김현주의 눈에선 드라마처럼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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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에스박스미디어 |
4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한 KBS 2TV 주말드라마 ‘가족끼리 왜이래’는 시한부를 사는 아버지의 절절한 부성애와 삼남매의 이야기로 내내 안방을 울렸다. 김현주와 차강심은 성격도 환경도 닮은 점이 적지 않았다.
“부모님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어주는 존재는 아니잖아요. 누구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담은 드라마였어요. 오히려 감춰두려고 애를 썼죠. 강심이와 비슷한 감정이었지만, 제 감정이 들어가면 넘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의 감정을 끌어오진 않았어요.”
김현주의 아버지는 지난 2010년 오랜 투병 중 돌아가셨다. 촬영을 하며 문득 떠오르는 부모님 생각에 많이도 울었다. 드라마에서 입원한 아버지를 찾아가 “아무 일도 없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던 장면은 김현주의 마음이기도 했다. 다 자란 딸과 아버지의 관계가 대체로 그러하듯, 무심했던 딸에게도 후회의 시간은 찾아온다. 베테랑 연예인답게 인터뷰 도중 몇 번을 참아냈던 김현주의 눈물엔 지난 많은 시간들이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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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드라마로는 2년 만에 안방을 찾은 김현주는 ‘가족끼리 왜이래’로 오랜만에 흥행에 성공했다. 1996년 가수 김현철의 뮤직비디오(‘일생을’)를 통해 데뷔한 이후 2년 만에 초고속 성장을 했던 당시의 그는 당대 최고의 브라운관 스타였다. 그 흔한 연기력 논란도 없었다. 스스로는 “안 예쁘다는 건 아니지만, 외모보다는 연기로 승부를 보는 배우”라며 웃기도 한다. “찾는 데가 너무 많았고, 멋 모르고 덤벼들던” 시기였다. ‘덕이(2000)’에서의 술술 감기는 사투리 연기로 CF스타의 이미지를 지우고, 사극 ‘상도(2001)’로 입지를 다졌다. ‘그 여자네 집(2001)’을 통해 청춘스타로 부상했고, 강은경 작가와 처음 만났던 ‘유리구두(2002)’를 통해 연기 잘 하는 배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톱여배우들이 거쳐갔던 ‘토지’(2004)의 최서희로 꽤 호평을 들었지만, 김현주의 슬럼프는 이 드라마 이후 찾아왔다. 그 때가 10년 전, 스물아홉이었다.
“다이어리를 본 적이 있는데, 신인 때부터 하루도 쉰 적이 없더라고요. 광고, 뮤직비디오, 드라마, 영화, 예능까지 안 나가는 데가 없었죠. 그렇게 4, 5년을 하다 보니 로보트 같았어요. 스케줄에 치여 조금씩 늦으니 욕도 많이 먹었죠. 그러면서 드라마는 하향세에 놓이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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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울 것 없이 고공행진하던 여배우는 업계에서 인심을 잃었다. “쉬고 싶어 쉬었더니” 찾는 곳은 나날이 줄었다. 그 시간들을 김현주는 우울증이었다고 기억한다.
“제가 톱이요? 글쎄요. 그럴 때가 있었나요. 저를 좋아할 수 없던 시기가 있었어요. 거울 속 제 모습이 너무 이상해보였어요.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때였죠. 그 시간을 건강하게 지나온 건 다행이지만, 한창 활동했어야할 때에 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어요.”
“나는 예쁘다”, “괜찮다”고 무수히 최면을 걸었고, 연예계 생활 18년, 유일한 친구였던 고 유채영의 무한한 애정과 응원에 “길고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김현주는 자신의 주문이 첫 장면에 대사로 적힌 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2007)를 만나며 긴 공백기를 깼다. 그 뒤로 잊혀지지 않을 만큼의 숫자의 작품에 출연했다. 세간에선 지금의 김현주를 ‘제2의 전성기’라고도 한다. 많은 날들을 보낸 김현주에게 이런 호평이 대단한 상여는 아니다. “30대 후반 여배우가 다양성이 줄어든 드라마 환경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쉽지 않을 거에요. 예전엔 저와 비슷한 성공을 한 누군가를 볼 때 배가 아프게만 느껴졌는데, 지금은 방향을 전향하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배우로서 큰 계획은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해나가면 될 것 같아요. 그보다는 인간 김현주로서 지향하는 삶을 더 많이 생각해요. 내 안에서 평화로웠으면 좋겠고, 자연스러웠으면, 욕심이 없었으면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