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미의 무비 for U] 우리는 ‘약장수’보다 나은 자식인가요?

도덕적 양심과 생계 사이…‘약장수’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 하루 4시간씩 놀아주는 자식이 어딨어?”

홍보관 ‘떴다방’(노인들을 상대로 건강식품·생활용품 등을 비싼 값에 파는 곳)의 업무에 회의를 느끼는 일범(김인권 분)에게 점장 철중(박철민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일범은 항변하고 싶지만 할 말이 없습니다.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는 목적이지만, 홍보관 직원들은 자식 이상으로 노인들을 대합니다. 처음 보는 노인도 ‘엄마’라고 부르며 버선발로 맞이하고, 우스꽝스러운 춤과 노래로 이들의 시름을 달래줍니다. 번듯한 검사 아들을 뒀지만 가족의 무관심 속에 외롭게 살아가던 옥님(이주실 분)도 이 곳에서 웃음을 되찾습니다. 옥님은 아들의 빈 자리를 채워주는 홍보관 직원들이 고마워 비싼 물건을 사들이기도 합니다.

극 중 ‘떴다방’은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둥지 같은 곳입니다. 사회와 가족의 무관심, 냉대에 지친 이들은 이곳에서 서로의 온기로 체온을 덥힙니다. 가난한 가장 일범에겐 아픈 딸의 치료비를 마련할 수 있는 공간, 홀로 빈집을 지키던 옥님에겐 누군가와 웃고 떠드는 즐거움을 알게해 준 곳입니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죠. 일범은 노인들의 쌈짓돈을 축내며 자괴감에 시달리고, 옥님은 홍보관을 드나들며 주머니 사정이 나빠지자 시름이 깊어집니다. 


아마 ‘약장수’의 인물들을 뉴스에서 접했다면, 일범은 노인들 등쳐먹는 사기꾼에 불과하겠죠. 옥님은 홍보관의 상술에 당한 미련한 노인네일 뿐이고. 영화는 사건 단신기사에서나 언급될 법한 이들의 속사정에 주목하며, 그 책임이 오롯이 이들에게만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누군가는 일범처럼 먹고 사는 일 앞에 자존심과 양심을 내려놓습니다. 홍보관에 드나드는 노인들도 단지 무지해 상술에 넘어간 게 아니라, 잠시나마 외로움을 잊기 위해 비싼 물건을 떠안는지 모릅니다. 옥님이 자신의 생일에도 얼굴 도장만 찍고 돌아서는 아들에게 “언제 안 바쁠 때 두 시간만 어미랑 놀아주지 않을래?”라고 묻는 대목은 지독한 고독을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합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일범은 삐에로 분장을 한 채 노인들 앞에서 재롱을 부립니다. 그 얼굴은 웃는 지 우는 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겠죠. 그렇게 일범은 도적적 양심과 생계의 문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오늘도 노인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소외된 노인들의 발걸음도 여전히 홍보관으로 향하겠죠. 수많은 ‘일범’들의 양심이 더 무뎌지기 전에, 그보다 더 많은 ‘옥님’들이 상처입기 전에, 스스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약장수’보다 나은 자식인가요?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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