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직격탄 맞은 극장가, 관객 20% ↓=메르스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최근 극장 관객 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다수의 사람이 모인 공간을 기피하는 분위기인 데다, 에어컨이 가동되는 밀폐된 공간에서 바이러스 확산이 활발해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관객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 지난 2일(화)~4일(목) 관객 수는 68만9089명으로, 지난 주 같은 기간(5월 26일~28일) 87만2208명에 비해 20.9%(약 19만 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6월 5일~7일 주말 관객 수(154만4818명) 역시 지난 주말(5월 29일~31일) 196만7420명과 비교해 21.4%(약 42만 명) 가량 줄었다.
실제로 지난 7일 CGV 신촌아트레온의 경우, 이날 오후 3시를 기준으로 대다수 상영작의 잔여석이 충분했다. 불과 한 주 전,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흥행 가도를 달릴 때의 주말 풍경과는 온도차가 확연했다. 당시만 해도 화제작의 경우, 상영 시간이 임박하면 여석을 찾기 어려웠다. 이날 CGV 신촌아트레온에서 상영 시간을 한 시간 가량 남겨두고 한 자릿 수 여석을 기록한 것은 ‘샌 안드레아스’ 4DX 3D관 뿐이었다. CGV 용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상영 시작을 불과 30분~1시간 가량 남겨둔 영화 대다수가 100석 이상 좌석이 남은 상황이었다. 이 곳에서도 ‘샌 안드레아스’ 4DX 3D 버전 만이 유일하게 만석이었다.
물론 주말 극장가가 썰렁했던 이유가 메르스의 영향도 있지만, 볼 만한 영화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날 CGV 신촌아트레온에서 만난 한 관객은 “주말이면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오는데, 오늘은 친구들이 보고싶은 영화도 없는데 굳이 사람 많은 극장에 갈 이유가 없다고 해서 혼자 왔다”며 “아마 ‘어벤져스’나 ‘매드맥스’ 같은 기대작이 있었으면 왔을 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손님 빠진 극장가, 개봉 예정 영화들도 눈치보기=메르스 여파가 극장가를 덮치자, 영화 투자·배급사 NEW는 ‘연평해전’과 ‘뷰티 인사이드’의 개봉일을 미뤘다. 지난 5일 NEW 측은 메르스 사태에 따른 국민 정서를 고려해 ‘연평해전’의 개봉일을 기존 6월 10일에서 24일로 연기한다고 알렸다. 이에 따라 8일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서해 수호자 배지 수여식 및 해군 시사회도 잠정 연기됐고, 같은 날 예정됐던 VIP 시사회도 취소됐다. 이와 관련해 한 영화계 관계자는 “‘연평해전’의 경우 메르스 사태로 군 단체 관람이 어려워진 점을 의식하지 않았나 싶다. 또 연령대가 어느 정도 높은 관객이 주 타깃일 수 있기 때문에 메르스 사태에 더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미노 효과로 NEW의 다음 배급작인 ‘뷰티 인사이드’도 개봉 시기가 8월 이후로 조정됐다.
‘연평해전’과 갑자기 맞붙게 된 영화들은 당혹스러워 하는 눈치다. 25일 개봉하는 ‘메이드 인 차이나’의 경우엔 독립·예술영화관과 멀티플렉스 다양성영화관에서 상영될 것이 예상되면서 개봉관 수 확보에 직접적인 타격은 없을 전망이다. 반면 상업영화인 ‘나의 절친 악당들’과 ‘소수의견’은 ‘연평해전’이 가세하면서 치열한 스크린 싸움을 벌이게 됐다. 그럼에도 두 영화 모두 기존 개봉일을 고수한다는 입장이다. ‘나의 절친 악당들’ 홍보를 맡고 있는 지혜윤 이가영화사 실장은 “개봉일 변경은 계획이 없지만, 안전상의 문제로 행사 진행 여부는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영관을 배정해야 하는 극장 측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비슷한 화제성과 규모의 한국영화 3편(‘연평해전’, ‘나의 절친 악당들’, ‘소수의견’)이 동시기 개봉하면서 스크린을 배정할 일이 막막하다. 11일 ‘쥬라기 월드’, 18일 ‘극비수사’,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이 개봉한 가운데 남은 상영관을 배분해야 하니, 형평성에 맞게 한다고 해도 이런저런 말이 나올까 걱정된다”고 난색을 표시했다.
▶영화 촬영장은 잠잠, 군중 몰리는 행사는 ‘빨간불’=드라마 현장에선 경기도 지역 촬영이 취소되거나, 의학 드라마의 경우 장소 섭외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촬영 현장에선 아직까지 메르스 여파에 따른 이상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하반기 개봉 예정인 ‘루시드 드림’, ‘더 폰’, ‘판도라’ 등을 제공·배급하는 NEW 측은 “메르스 때문에 영화 촬영 스케줄이 변경되거나 그런 상황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전했다. ‘조선마술사’, ‘저널리스트’ 등을 맡고 있는 롯데엔터테인먼트 측도 “촬영 일정이 워낙 빠듯하게 굴러가다 보니 이번 사태로 일정이 취소되거나 미뤄지는 일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다수의 인파가 몰리는 행사의 경우엔 일정 조정이 불가피했다. 6월 8일부터 10일까지 제주 서귀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서귀포 신스틸러 페스티벌’은 9월 1일~3일로 연기됐다. 지난 1년여 간 영화·드라마 등에서 활약해 온 신스틸러(훌륭한 연기력과 독특한 개성으로 장면을 압도하는 조역)를 위한 축제로, 배우들에 대한 시상식과 레드카펫, 팬들과의 대화 등의 행사로 꾸며질 예정이었다. 축제 주최 측은 “정상적인 행사를 치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무엇보다 국민 건강이 최우선이라 판단했다”며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진정한 배우들의 축제를 보다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었던 배우 이준의 소속사 측은 “9월 행사의 참여 여부는 추후 재공지할 예정”이라며 “메르스 피해가 더이상 확산되지 않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