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의 ‘좋은 날’ ‘잔소리’ ‘너랑 나’,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가인의 ‘PARADISE LOST’, 이선희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 조용필의 ‘걷고 싶다’, 에일리의 ‘저녁하늘’, 이효리의 ‘천하무적 이효리’ 등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그의 곡이 300곡이나 된다.

올해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에서 2만여 명의 등록 회원중 저작권료 수입 1위인 작사가에게 수여하는 작사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2012~14년 가온차트 K-POP 어워드에서도 3년 연속 올해의 작사가상도 받았다. 최근 그가 에세이 형식으로 쓴 ‘김이나의 작사법’(문학동네)은 이미 대학교 실용음악과 학생들 사이에서 교과서가 됐다.
작사가 김이나에 대해 김용택 시인은 “처연한 저녁하늘이 노래가사가 되고, 쓸쓸한 길고양이의 이야기를 노랫말로 만들고야 마는 김이나는 그저 영민한 상업작사가라고 하기보다, 우리의 마음을 오래 붙들어놓는 시인”이라고 했다. 그것이 김이나를 대중성 있는 작사가로뿐만 아니라 자신의 색채를 분명히 가지고 있는 작사가로도 불리게 했다. 김 시인은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의 기적에 대해 김이나가 썼던, 이선희의 노래 한 구절을 들으며 정신이 번쩍 들던 때를 기억해낸다.

또 작곡가 김형석은 “김이나는 작사가로서 다양한 장르를 최고로 소화할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여는 마스터키를 가진 작사가”라면서 “감성과 이성을 잘 활용하는 멋진 작사가”라고 평한다.
김이나가 지은 노랫말과 책 내용을 보면, 노래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제시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가졌음을 알게된다. 아마 그는 광고회사에 근무해도 뛰어난 크리에이티브가 됐을 것이다. 노래의 포인트와 소구점 등 마케팅 포인트를 찾아내고, 이를 키워드로 적확하게제시하는데 능하다. 남녀간의 만남, 사랑, 이별 등 감정의 흐름을 쪼개서 노랫말로 만들어내는 그 방법론이 궁금했다.
“화자인 가수가 할 법한 말, 가수에게 어울리는 말을 찾는 거죠. 허상이나 픽션 부분이 있죠. 스토리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내 감정도일부 동원하면서 실제 그 사람이 쓴 것 처럼 하는 페이크 다큐적인 느낌이랄까요.”
‘내가 하는 이야기’와 ‘내가 아닌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미세하면서도 큰 차이를 낳기 때문에 이 작업은 결코 만만치 않다. 김이나 작사가에게 좋은 가사란 어떤 것인지도 물어봤다.
“곡의 매력을 100% 다 표현할 수 있는 노랫말 아닐까요. 발라드일때는 발라드 특유의 깊이 있는 감정을 드러내고, 댄스는 댄스 특유의 경쾌함을 보여주는 가사겠죠. 그런데 100점 짜리 가사가 붙어 아이덴터티가 생기는 노래도 있지만 댄스는 100% 살리기 힘들어요. 가사만으로 리듬감을 완벽하게 살려내는 데는 한계가 있죠.”
김이나 작사가에게 좋은 가사를 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또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도 궁금했다.
“가요를 엄청 많이 들어요. 많이 안듣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는 많이 들어요. 좋아서 하는 게 축적되는 거죠. 평소에 특별히 훈련하는 건 없어요.“
김이나는 가수에 대한 취재도 별로 안한다고 했다. 보편적인 특성들을 잘 활용하는 식이다. 가령, “고집이 있지만 실제로는 여리지 않니?”라거나 “자유로우면서도 보수적인 면도 있지?”라는 식이다. 가수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몰라도 이별이나 짝사랑 등의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할 것인지에 대해 선택하도록 해준다.
300곡이나 등록된 작사가에게 ‘김이나표 노랫말‘이란 어떤 것인지를 묻자 “이걸 알면 안되요. 김이나식을 인지 하기 시작하면 무의식적으로 그것으로 기준을 삼게 되기 때문이죠”라고 말한다. 또 가장 많은 저작권료가 나오는 노래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추정인데, 아이유의 ‘좋은 날’인 것 같아요. ‘아브라카다브라’도 예능 자막으로 쓰일 때 좋지만, 노래방에서 순간화력이 높은 노래는 ‘좋은 날‘인 것 같아요”라고 했다.
작사가는 작곡가만큼은 부각되지 않는 직업이다. 하지만 김이나 작사가가 대단한 존재로 생각하는 선배 작사가들이 있다. 윤종신도극찬한 적이 있는 박주연과 신승훈의 노래를 많이 쓴 양재선이다. “이 분들은 재능이 엄청나요. 저는 후천적으로 노력해서 쓰고 있다면 이 두 분은 별 작전 없이 쓰는데도 바이블 같은 게 되어버리는, 태생적으로 저와 다른 사람들이에요. ‘입영 열차 안에서’의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긴 싫었어. 손 흔드는 사람들 속에 그댈 남겨두긴 싫어’에서는 이 남자의 생각과 성품이 오롯이 드러나요. ‘오래전 그날’의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만났던 너 그 때가 너도 가끔 생각나니‘는 별도의 상황 설명 없이 단 두 줄로 끝난 거죠. 감성과 이성을 확실하게 어필하죠.”
김이나는 평이하게 써내려가면서도 내면을 세밀하게 그려내는 스타일을 추구하는 듯 했다. 그는 “이 일도 인정욕구가 없으면 못해요. 유명인이 된다거나 대의, 이런 것보다는 칭찬받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입장을 열심히 생각해보는 게 가사를 쓸때 많은 도움이 되요”라는 말도 했다.
김이나는 작사란 스킬을 배우려고 하기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는게 좋다고 말한다. 자신의 관점에서 장단점을 써보라는 것이다. 남의 관점(프로듀서 마인드나 A&R 마인드)으로 바라보려고 하는데, 사실 구체적으로 자기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글을 잘 쓴다는 게 이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감정을 바라볼 줄 알고, 노희경 작가처럼 플러스 알파 요소가 있으면 더 좋겠죠. 자기를 제대로 바라보고 쓴 가사에는 울림이 있어요.”
김이나는 작사가 지망생에게도 조언을 해달라는 주문에 망설이면서도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충실히 하면서(학생이라면 공부) 서서히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확한 과정과 루트가 있는 직종이 아니에요. 그래서 올인하는 건 위험해요. 오히려 올인하다가는 좋아하는 일을 못하게 될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김이나는 요즘 유명인이 됐다. ‘나는 가수다‘ 음악감상실에도 나왔고, 그의 남편이 로엔 사장이라는 오보(誤報)도 나왔다. 일종의 유명세다.
“한동안 들떠 있었어요. 나를 찾아주는 곳이 있고, 남들이 잘해주니 헷갈릴 때도 있었어요. 조금 정신을 차리는 시기로 돌아와야 해요. 책을 내기 전의 일상들도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운(運)은 나눠써야하거든요.”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