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투더 뮤직차트] 30년 전 이맘 때 치열했던 ‘가왕’과 ‘바람’의 대결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가왕’ 조용필은 80년대 가요계를 지배했던 절대자였다. 그가 앨범을 발표하면 방송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연말 시상식의 마지막 무대와 ‘가수왕’ 상은 늘 그의 차지였다. 심지어 한 연말 ‘가수왕’ 시상식에선 그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발표해야 하는 우스운 일도 벌어졌었다. 조용필이 지난 1987년 방송사 연말 ‘가수왕’ 수상 거부를 선언한 일은 당시 그의 위상을 잘 보여준 사건이다.

절대자에겐 늘 도전자도 존재하는 법이다. 길진 않지만 ‘가왕’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가수들도 없지 않았다. 30년 전 이맘 때 가요계에선 ‘가왕’과 이에 도전하는 자신만만한 신인의 일대 격돌이 벌어졌었다.


1985년 6월 셋째 주 KBS ‘가요톱10’의 1위를 차지한 곡은 조용필의 ‘어제 오늘 그리고’였다. 이 곡이 수록된 조용필의 7집은 그야말로 젊음의 에너지로 꿈틀거리는 앨범이었다. ‘어제 오늘 그리고’를 비롯해 ‘여행을 떠나요’ ‘미지의 세계’ ‘아시아의 불꽃’ 등 강렬한 록이 담긴 이 앨범은 조용필 음악 인생에서 가장 젊은 앨범으로 꼽힌다.

기쁨도 잠시 바로 다음 주 신인가수 김범룡의 ‘바람 바람 바람’이 ‘가왕’을 끌어내리는 반란이 일어났다. 일격을 맞은 ‘가왕’은 이후 7월 둘째 주에 다시 1위로 복귀, 8월 첫째 주까지 5주 연속 1위를 차지한 뒤 ‘골든컵(‘가요톱텐’이 5주 이상 1위를 차지한 곡에 선사하는 상)’을 받아들며 자존심을 지켰다. 그러나 김범룡의 바람도 거셌다. ‘바람바람바람’은 8월 넷째 주 1위로 다시 복귀한 뒤 내리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김범룡에게 ‘골든컵’을 안겼다. 그야말로 용호상박(龍虎相搏)이었다.

시간 단위로 요동치는 디지털 음원 차트에선 이 같은 과거의 진풍경을 구경하기 힘들어졌다. 이는 그만큼 노래들의 수명이 짧아졌음을 방증한다. 대중은 이제 30년 전은 커녕 지난 해 이맘 때의 히트곡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당시 대결을 벌였던 ‘어제 오늘 그리고’와 ‘바람바람바람’은 여전히 많은 중장년층의 애창곡으로 남아있다. 씁쓸한 변화이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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