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조연시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존재감, ‘양익준’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여전히 양익준(40)을 배우로만 알고 있는 이들도 많다. 이는 곧 양익준이 영화감독을 겸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매 작품마다 출중한 연기력을 뽐내왔다는 얘기가 된다. 그는 역할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몇 안 되는 존재감의 배우다. 욕설과 폭력이 생활화 된 용역깡패(‘똥파리’)부터, 밀수조직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감격시대: 투신의 탄생’), 불행한 가정사를 겪으며 머리가 하얗게 센 살인 복역수(‘괜찮아 사랑이야’)까지 매번 새롭고 강렬했다.

심지어 새 영화 ‘나의 절친 악당들’(감독 임상수ㆍ제작 ㈜휠므빠말,폭스 인터내셔널 프러덕션 (코리아))에선 국적마저 초월했다. 돈만 주면 어떤 일이든 하는 아프리카계 범죄 조직의 보스 ‘음부키’ 역을 맡아 국적을 알아볼 수 없는 외모로 변신했다. 레게머리와 번쩍이는 보철물 등을 동원한 파격 분장은 그의 아이디어다. 말투까지 바꿨다. 아프리카어와 한국어, 서툰 영어를 뒤섞어 구사하는 그는, 능글맞은 말투와 어색한 문법으로 웃음을 주며 영화의 감칠맛을 더한다. 


앞서 ‘똥파리’(2008)가 독립영화로선 이례적인 반향을 일으켜 주목 받으면서, 양익준은 감독으로 먼저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는 듯 보였다. 사실 그에겐 ‘배우’라는 수식어가 먼저 붙는 것이 맞다. 영화 ‘품행제로’(2002), ‘아라한 장풍 대작전’(2004) 등의 단역을 시작으로, ‘파출부, 아니다’(2004), ‘인간적으로 정이 안가는 인간’, ‘낙원’(2005) 등 다수의 단편 독립영화에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그다. 자신의 연출작인 ‘바라만 본다’(2005)와 ‘똥파리’ 등에서도 직접 카메라 앞에 섰다.

한편으론 양익준을 ‘조연시대’라는 코너에 집어넣는 것이 애매했다. 그는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과 ‘사이비’(2013)의 목소리 연기를 비롯해, ‘집 나온 남자들’(2010), ‘가족의 나라’(2012) 등의 다수의 영화에서 주역을 맡았다. 그럼에도 그가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작품들(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 ‘괜찮아 사랑이야’) 등에서 주연 못지 않은 존재감의 조연으로 눈도장을 찍었다는 점에서 그를 ‘조연시대’의 주인공으로 지목한 것도 일리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배우 양익준이 어떤 작품에서도 돋보일 수 밖에 없는 특별한 무기는 뭘까. 전매특허인 사실적인 연기가 그의 가장 돋보이는 재능일 것이다. 그가 출연한 몇몇 영화를 보고 있자면 ‘인간극장’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나른한 말투로 대사를 읊조리다가, 간혹 극한의 감정을 분출할 때는 거의 동물적으로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수더분한 외모 또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기에 최적화 됐다.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이 된다. 그간 깡패, 범죄자 등 강렬한 역할만 맡아서 악역 전문 배우가 아닌가 싶지만, ‘집 나온 남자들’에선 제 옷 입은 것처럼 어리바리하면서도 귀여운 가출남을 연기했다. 


그렇게 양익준은 방송계와 영화계 모두 탐내는 배우로 자리잡았다. ‘나의 절친 악당들’의 임상수 감독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양익준에 대해 “꼭 한 번 같이 작업하고 싶었던 배우”라고 말했다.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서도 임 감독은 “화면 안에 있기만 해도 뿜어내는 존재감이 강렬하다고 느껴 꼭 함께 작업해 보고 싶었다”고 양익준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이보다 앞서 ‘가족의 나라’ 양영희 감독 역시 “내 기억보다 더 깊은 곳을 이해하며 연기하는 것을 보는 것은 아주 신기한 체험이었다”고 양익준의 연기력을 극찬했다. 

물론, 양익준을 감독으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영화 팬들도 많다. ‘똥파리’를 ‘인생의 영화’로 꼽는 팬들은, 그를 향해 ‘영화 좀 만들어달라’고 아우성이다. 재주꾼은 쉴 틈이 없다.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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