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알려주마] 중국인들은 왜 한국 예능을 좋아할까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지난 몇 달 사이 한국 포맷으로 만들어진 이른바 ‘중국판 OOO’의 숫자는 부쩍 늘었다. 케이블 채널 tvN ‘꽃보다 누나’ 중국판인 ‘화양저저(花樣姐姐)’는 린즈링 리츠팉 등 중화권 인기 스타와 에프엑스(f(x))의 빅토리아가 합류, 지난 3월 15일 동방위성TV를 통해 첫 방송됐다. MBC ‘우리 결혼했어요’의 중국판인 장쑤위성TV ‘우리 서로 사랑해요(我們相愛), JTBC ’비정상회담‘의 중국판인 장쑤위성TV의 ’세계청년설‘(世界靑年說,), MBC ’진짜 사나이‘의 중국판인 후난위성TV ’진정남자한‘(眞正男子漢)도 4월 첫 방송됐다.

2015년 유독 가시적인 성과를 낸 중국판 한국 예능은 단연 SBS ‘런닝맨’이다. 저장위성TV에서 방영 중인 ’달려라 형제‘는 한국판의 범아시아적 인기에 힘 입어 시즌1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현재 방영 중인 시즌2 역시 높은 성과를 내고 있다. 중국 방송가에선 ’기적같은 시청률‘에 해당하는 5%대를 기록하며 그간 중국에 진출한 한국 포맷 예능 시청률의 역사도 새로 썼다. SBS에 따르면 이날 방송분은 중국 CSM50 기준 5.002%(광고 포함), 5.17%(광고 제외)를 기록, 지난 4월 24일 방송분(광고 제외 5.008%ㆍ광고 포함 4.886%) 이후 두 번째로 5%의 벽을 넘었다. 시즌1, 2를 통틀어도 최고 기록이다. 


국내 예능 포맷 수출이 활발한 지역도 중국이다. 몇 편의 예능이 국민적 인기를 모으자 나날이 수출 편수가 늘어난다. ‘무형식의 형식’으로 지난 10년간 안방 정상을 지킨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었으면서 유독 수출 소식이 들리지 않았던 MBC ‘무한도전’은 마침내 ‘중국판 무도’의 탄생을 알렸다. ‘캐릭터 플레이’에 기발한 아이템으로 매주 새로운 형식의 방송을 선보였던 ‘무한도전’ 중국판은 현지 유명 제작사인 앙시 창조 미디어, 찬싱 프로덕션과 공동제작, 총 12회 분량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케이블 채널 tvN ‘시간탐험대’는 최근 중국으로 포맷이 수출, 현지 대형제작사인 3C 미디어와 tvN이 공동제작해 오는 7월 쓰촨위성 TV를 통해 첫 방송된다. JTBC 역시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의 포맷을 수출, 연출을 맡았던 오윤환 PD와 스태프가 중국으로 건너가 제작에 참여해 촬영을 시작했다. 현재 방송관계자들은 “어림잡아 예능 프로그램 10편 중 7편은 수출된다”고 말할 정도로 활발한 시장이다.

인기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인 KBS2 ‘개그콘서트’가 동방위성과 공동제작으로 중국판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형식의 프로그램으로 포맷 수출의 저변이 확장되고 있지만, 예능한류의 중심에 선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진정성을 강조한 ‘리얼 버라이어티’가 여전히 인기가 높다.

황진우 CJ E&M 방송글로벌개발팀장은 ”진정성(Sincerity)을 반영한 포맷, 콘텐츠가 최고의 상품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반영한 리얼 버라이어티는 높은 경쟁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포맷수출과 성공을 위해서는 콘텐츠의 창의성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 지역ㆍ인종ㆍ문화를 초월한 보편성, 시즌을 거듭해도 변치않는 반복성, 국가별 시장환경에 맞게 조정할 수 있는 규모성”을 강조한다. 지난해 상하이 동방위성TV에 ‘화양예예(花样爷爷)’라는 이름으로 나영석PD와 동방위성TV가 공동 제작해 방송된 ‘꽃보다 할배‘처럼 중국을 넘어 국내 예능 프로그램 사상 최초로 미국 지상파 채널(NBC)에 포맷을 판매한 사례가 그렇다. ”어른에 대한 공경심과 노년의 우정, 버킷리스트 등은 만국 공통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런닝맨’의 성공사례는 특히 놀랍다. 한국판의 범아시아적 인기에 당초 중국판 제작설이 무르익을 당시 중국의 대형 포털사이트에서는 독특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중국판 런닝맨 제작에 찬성하느냐”는 설문이었다. 응답자의 90% 이상이 반대에 표를 던진 결과가 나왔다. 설문자들은 그 이유로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유재석을 비롯한 멤버들의 캐릭터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꼽았다.


하지만 국내 제작진의 노하우를 총집결해 중국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접목시켜 다시 태어난 ‘런닝맨’은 통했다. 국내에선 상상할 수 없는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해 톱스타들을 줄줄이 캐스팅했다. 시즌1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웃기자고 하는 예능 프로그램인데, 리얼 버라이어티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몸으로 해야하는 미션이 많은 ‘런닝맨’은 초반 한 편의 스포츠가 됐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부상을 입은 경우도 발생했다. 한국 제작진이 이 분위기를 바꿔 중국 톱스타급 연예인들에게 망가지는 모습을 끌어내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이 관계자는 “한 번도 엉망진창이 된 모습을 보여준 적 없던 중국의 톱스타들이 자신을 내려놓고 망가지자 시청자들이 친근하게 바라보게 됐다”고 말했다.

히트예능의 이유를 살펴보면 결국 두 가지를 갖췄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가치나 요소를 갖추면서 새로움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중국판 ‘아빠! 어디가?’가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연예인의 집과 가족을 보여주며 부자관계를 밀착”(김영희 PD)해 인기를 모았던 것처럼 ‘런닝맨’ 역시 연예인들의 새로운 모습을 끌어낸 점, 어떤 문화적 환경에서도 적용되는 ‘게임’에 바탕했다는 점이 중국인들이 사랑한 이유였다.

shee@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