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희= ‘제작비=협찬’…방송이 될 수가 없지
드라마 못지 않게 간접광고(PPL)가 활개를 치는 동네가 있다. 홈쇼핑이 아닌데도 매출을 보장한다. 알려주려고 작정하고 등장한 탓에 상표를 가리면 도리어 궁금하다. 가린다 해도 대부분 쉽게 알 수 있고, 어지간하면 가리지도 않아 지적을 당하기 일쑤다.
지난 9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두 편의 뷰티 정보 프로그램에 징계조치를 내렸다.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의 ‘겟 잇 뷰티 2015’(5월 20일 방송분ㆍ주의)와 패션앤의 ‘팔로우미 시즌5’(5월 30일 방송분ㆍ관계자 징계)다. 간접광고주의 제품을 노출하며, 자막과 출연자 대화로 광고에 가까운 정보를 전달한 것이 문제가 됐다.
간접광고는 TV프로그램 구성의 필수조건이 됐다. 나날이 치솟는 제작비를 감당하기 위해 각 채널에선 대형 협찬주를 모셔야만 하는 상황이다. 프로그램의 몰입을 방해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시청자도 참고 봐줄 수 있는 포용력이 생겼다. 연출자의 역량이 더해져 보다 세련되고 품위있는 PPL이 완성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
뷰티 정보 프로그램은 사정이 다르다. 세련된 연출력은 남의 얘기다. 태생 자체가 남다르다. 케이블 채널의 한 PD는 “뷰티, 라이프 스타일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애초에 협찬이 있어야 프로그램이 기획되는 경우도 많다. 일단 협찬이 있어야 프로그램이 굴러갈 수 있고, 협찬이 들어오지 않으면 프로그램이 예정보다 빠르게 막을 내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동네 역시 인기에 따라 협찬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빚어진다.
그 협찬의 크기라는 것이 어마어마하다. 뷰티 정보 프로그램의 경우 제작비는 채널마다 다르지만, 적당히 이름 있는 스타들의 조합으로 MC를 꾸린 경우 회당 3000만원이 평균치다. 회당 제작비는 대형 광고주 하나가 들어오면 해결된다. 한 회분 제작비가 협찬으로 충당되니, 해당 브랜드에 대해 프로그램에선 보다 심도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홈쇼핑 수준의 자화자찬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심지어 뻔한 장삿속이 들여다보이는 경우도 있다. CJ 계열 콘텐츠 기업 CJ E&M이 보유한 채널 온스타일의 ‘겟 잇 뷰티’다. 이 프로그램에서 노출됐던 다양한 제품들은 CJ가 운영하는 헬스 앤 뷰티 스토어 올리브영에 가면 ‘겟잇뷰티 1위 상품’이라며 판매 중이다. 유통망을 갖춘 대기업이 공공재를 사용할 때, 방송이 얼마나 상업적으로 변모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올리브 채널에서 시작해 2010년 온스타일로 옮긴 ‘겟잇뷰티’의 성공으로 케이블 채널에선 유사 뷰티 정보 프로그램이 쏟아졌다. 이젠 뷰티에만 국한하지 않고, 라이프 스타일 전반으로 확장한다. 한 방송 관계자는 “제작이 쉽고, 빠른 시일에 특정 시청층, 즉 2030 여성 시청자들을 확보할 수 있어 인지도가 낮은 채널의 경우 꾸준히 제작한다”고 말했다. 보여주는 정보는 이미 한 발 앞서 SNS가 알려줬는데도 프로그램들은 너나 없이 ‘신상정보’를 강조한다. 워너비 스타MC들은 그것이 마치 여성들의 삶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줄 것처럼 이야기한다. 시청자는 종종 알면서도 속는다. 그러니 이제 밖으로 나가 지갑만 열면 된다. 짜고 치는 정보만 한 가득 얻은 채로 말이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