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진행된 ‘마이 리틀 텔레비전’(MBC)의 온라인 생방송 이후 일주일간 김영만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의 주인공이 됐다. 18일 방송에선 무려 34.6% 이상의 점유율로 6만921명의 접속자를 불러오며 인간계 1위에 올랐다. ‘절대강자’ 백종원과 ‘대항마’ 김영만에게선 지상파 방송 최초로 인터넷을 연계, 시청자의 참여를 요구하는 ‘마리텔’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공통된 성공법칙이 발견된다. 거기에 차별점이 더해진다. 그게 김영만의 강력한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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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접기’라는 자신만의 콘텐츠를 보유한 김영만 [사진제공=MBC] |
▶공통점 하나:자기만의 콘텐츠, ‘요리’ vs ‘종이접기’=3시간 분량의 인터넷 방송에서 클릭 한 번으로 이탈할 수 있는 갈대 같은 시청자를 붙잡기 위해선 출연자가 보여줘야 하는 콘텐츠가 분명해야 한다.
연출을 맡은 박진경 PD는 “시청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보고 있는 방송에서 무언가를 얻어가려고 한다. 그건 요리 레시피가 될 수도 있고, 입담이 될 수도 있으며, 남성 시청자에겐 여성 출연자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백종원과 김영만은 ‘자기만의 콘텐츠’를 가졌다. TV를 ‘시간 때우기용’으로 접하지 않는 요즘의 시청자들에겐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유익한 출연자인 셈이다.
‘쿡방’(요리하는 방송) 스타 백종원은 프로그램을 통해 “바로 써먹을 수 있거나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백종원) 요리를 선보인다. 특히 “설탕 몇 스푼 간장 몇 스푼”이라는 애매한 조리법 대신 종이컵을 활용, “반 컵, 한 컵, 두 컵”이라고 알려주니 이보다 쉬울 수가 없다.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 원장의 콘텐츠는 종이접기다. 준비물은 준비해두면 좋다. 색종이와 딱풀, 색도화지, 가위, 색종이컵이다. 형형색색의 종이를 자르고 붙이며 진기한 종이공예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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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라는 자신만의 콘텐츠를 보유한 백종원이‘ 마리텔’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사진제공=MBC] |
▶공통점 둘:소통의 달인들 ‘유행어’ vs ‘어록’=끊임없이 쏟아지는 채팅창의 대화를 놓치지 않아야 인터넷 방송에서 살아남는다.
백종원은 TV 출연 방송인 최초로 시청자와의 경계를 완벽하게 허물며 친근하게 다가선 소통의 신이다. ‘마리텔’에서 그는 요리 때마다 아낌없이 설탕을 뿌려넣어 ‘슈가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네티즌의 선물이다. ‘애플보이’ 역시 마찬가지다. 채팅장에서 쏟아지는 지적성 발언에 백종원은 충청도 사투리로 일일이 응대했다. 50대 외식사업가가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에 급기야 네티즌은 끊임없이 요리재료에 사과를 요구한다. 백종원은 그걸 또 한다. “저는 진짜 OO님에게 악감정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백종원은 이 프로그램에서 채팅창을 능숙하게 읽으며 소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와우(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단련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백종원의 소통력에 그의 말은 유행어가 된다. “그럴싸하쥬?”가 대표적이다. tvN ‘집밥백선생’의 고민구 PD는 “하는 말마다 유행어다. 심형래 이후 이런 분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김영만의 소통력도 대단했다. 첫 등장부터 “친구들, 안녕하세요!”라며 등장한 그는 종이접기를 하면서도 채팅창을 놓치지 않았다. “종이접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에 “어린이 친구들 이제 어른이죠? 어른이 됐으니 잘할 거예요”라고 응원한다. 종이컵 인형을 만들며 눈을 노란색으로 붙이자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인형 눈이 황달”이라는 네티즌의 ‘드립’(애드리브)이다. 그러자 김영만은 “여러분 어렸을 땐 코를 파랗게 하고 빨갛게 해도 아무런 말이 없었는데, 여러분 이제 다 컸구나, 어른이 다 됐네. 그런 눈과 마음으로 앞으로 사회생활 열심히 하는 거예요”라고 한다. “어려우면 엄마한테 부탁해보세요”라는 김영만의 이야기에 “엄마가 환갑”이라고 네티즌이 반응하자 “환갑이신 어머니께 ‘테이프 좀 붙여주세요’ 해보세요. 얼마나 좋아하시겠어요”라고 말한다. 이 말들은 채팅창은 눈물바다로 만든 김영만의 3대 어록으로도 꼽힌다.
▶차이점 : 추억의 공유=김영만이 백종원을 위협할 수 있었던 것은 딱 하나를 더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주 시청층과 추억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추억’은 지난 몇 년간 꾸준히 대중문화계의 인기코드였다.
김영만이 처음 등장한 1988년, 어린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세대는 이제는 다 자라 20~30대가 됐다. 1982년생인 박진경 PD는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자랐고, 네티즌의 요청이 줄을 잇자 김영만을 섭외했다.
이들 세대의 삶도 만만치는 않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기에,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투정을 부리는 것도 부모 덕에 잘 살았던 이 세대에겐 배 부른 사치다. 취업은 물론 연애도 결혼도 포기하는 세대는 어른들의 세계에 편입하기 위해 입을 꾹 다문채 달려가야만 했다. “종이접기가 제일 어려웠던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됐는데도 “세상살이는 여전히 힘들다”.
김영만의 등장은 이들 세대에게 위로였다. 그 때에도 지금도 이 세대를 ‘코딱지’라 부르는 그는 다 자란 아이들이 실수를 해도, 조금 늦어도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준다. “괜찮다”, “잘 할 수 있을 거다” 라고 위로했다.
진심이 담긴 말 한 마디는 이들이 참았던 감정이 쏟아지는 계기가 됐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단지 종이접기만 어려웠던 유년의 기억을 공유하며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추진력이 됐다. 방송 이후엔 자신의 페이스북에 함께 해준 코딱지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코딱지 여러분. 저는 봤습니다. 녹화장에서의 다른 코딱지들. 그 무거운 케이블선을 옮기고 작가분들 동분서주하고 카메라 감독님들 앵글쟁탈전. 그외 많은 스태프들. 저는 보았습니다. 바로 현재의 젊은이라는 것을요. 이 모든 땀과 보이지 않는 열기가 우리 친구들한테도 있다는 것을요.”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