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걸핏하면 러브라인과 재벌 2, 3세가 나오는 드라마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재벌 2세가 나오고 연애하는 드라마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너무 자주 사용하다 보니 클리셰가 돼버렸다. ‘어셈블리’는 러브라인이 없다. 이 점에서 ‘추적자’나 ‘펀치’와 궤를 같이 한다. KBS가 과거 드라마를 답습하지 않고 새롭고 다른 드라마에 도전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어셈블리’가 매력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캐릭터들을 선악구도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당과 야당, 서민과 권력자의 이분법적 구도로 그리지 않는다. 정현민 작가는 10년간 국회의원 보좌관으로서 국회의 모습을 지켜봤기에 어떤 방향으로 그려나갈지에 대한 생각이 확고한 것 같다.
국회의 세세한 이면과 정치하는 사람들의 사실감 넘치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한국 정치의 단면을 가감 없이 그린다. 정치인들의 권력에 대한 욕망과 생존을 위해 힘을 얻기 위한 싸움을 현실감 있게 그리겠다는 의도는 현재까지 잘 유지되고 있다. 또한 “정치가 복잡한 것 같아도 머릿수 싸움이다. 당 대 당, 계파 대 계파..” 등과 같은 대사는 현실 정치를 잘 반영해준다.
정현민 작가의 전작 ‘정도전’이나, ‘정도전’의 후속극인 ‘징비록’도 당파와 계파와 상관 없이 인물과 인물간의 갈등, 주장과 주장간의 갈등 구조를 부각시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공감을 주었다. 마찬가지로 ‘어셈블리’도 인물과 인물간의 대결과 갈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캐릭터의 매력이 서서히 살아난다.
20부작 ‘어셈블리’는 대하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에 1~3회에서 캐릭터의 매력을 완전히 띄워야 한다. 하지만 1회는 노동자들의 농성, 2~3회는 국회의원 선거와 주인공인 진상필 의원(정재영)의 잠적으로 시종 무거운 분위기인데다 아직 극성이 살아날 단계가 아니었다. 4회부터는 캐릭터의 매력이 제대로 발견되고 있다. 정재영이 맡은 용접공출신 해고노동자 진상필은 야당이 아닌 여당 공천을 받아 국회로 입성했다.
강병택 CP는 “진상필이 야당으로 들어갔다면 드라마가 뻔해졌을 것이다. 여당내에서 야당하는 이야기, 그러면서 이뤄지는 에피소드가 많이 방송되고 있다”면서 “국회를 배경으로 하지만, 정치에 덜 초점이 맞춰졌으면 한다.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며, 어떤 일을 하는지 휴먼적인 부분을 그리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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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필이라는 캐릭터가 멋있는 것은 사람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판은 누가 누구를 믿는 동네가 아니다. 아군과 적군이 없다. 이해 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곳이다. 하지만 진상필은 한 발 더 나아가 투쟁, 꼴통 이미지도 있다. 당대표에게도 대든다. “추경예산이 감액되지 않으면 나는 여당이든 아니든 상관 없이 이 안건에 무조건 반대표를 찍겠다”고 말한다. 여기에 사람들이 반했다. 이런 ‘정치미생’ 캐릭터라면 비록 서툰 점이 있어도 얼마든지 환영한다는 대중 판타지다. 닳아빠진 정치계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진상필을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꿋꿋하게 산을 옮기는 우직함을 상징하는 ‘우공이산(愚公移山)’으로 비유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하지만 1년동안 꾸준히 작업하면 산이 옮겨진다.
진상필은 지금은 공천을 미끼로 한 여당의 실세 백도현(장현성)의 재갈에 물려 살생부에 이름이 올라있지만, 그의 바보 같고 외로운 투쟁이 국민과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구태정치라는 거대한 산을 옮길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난관과 장애가 놓여있다. 이를 해결하는 열쇠로 최인경 보좌관(송윤아)이 있다.
진상필은 지역구인 경제시에 비가 오면 개울에 다리가 없어 복지관에 가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손녀 소원 하나 들어줄 수 없다. 시장이 예산 타령을 하기 때문이다. 그게 현실이다. 진상필은 의원실 직원들과 직접 다리 만들기에 나섰다. 하지만 매사 이런 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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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경 보좌관은 정치 지식과 정무감각 등 정치공학에는 뛰어나지만 닳고닳은 정치판에서 진짜 정치를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다. 최 보좌관은 진짜 정치를 실현시켜줄 인물로 진상필이라는 사람을 찾았다. 그녀는 정재영에게 모자라는 딱 한가지(정치력)를 채워주고 있다.최인경은 진상필이 혼자 다리 건설에 나서자, 특유의 정치력을 발휘해 시청 공무원들을 동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최인경이 자신에게 정치를 가르쳐주었고 한때 ‘연모’의 감정까지 품었던 백도현과의 결별은 큰 의미를 갖는다. 송윤아가 “그사람(정재영)을 제대로 만들고 싶다. 국민에게 신뢰받는 국회의원으로”라고 말하고, 장현성은 송윤아에게 “선배로서 백도현과 적으로서 백도현은 전혀 다르다”고 송윤아에게 전쟁을 선포한 것 또한 앞으로의 흥미로운 상황을 예측케한다.
정치력은 없지만 순수한 마음을 지닌 진상필 의원과 진 의원의 결핍된 정치력을 채워주는 최인경 보좌관. 이렇듯 정재영과 송윤아는 서로 필요로 하는 존재다. 둘은 동지의식이라는 끈끈함으로 묶여진다. 그래서 ‘어셈블리’는 정재영과 송윤아 둘 다 성장하는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