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미의 무비 for U] 평범한 ‘미생’이 어떻게 괴물이 되는가, ‘오피스’

“절대 그런 일을 저지를 분이 아니예요.” 선량하고 성실하기로 정평이 난 김병국 과장(배성우 분)이 자신의 일가족을 살해하고 잠적합니다. 끔찍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사무실은 술렁이죠. 유독 김 과장을 따랐던 인턴 직원 미례(고아성 분)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어느날 사라진 김 과장이 회사 CCTV에 포착되고, 그와 함께 일했던 영업2팀 직원들은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영화 ‘오피스’(감독 홍원찬, 제작 영화사 꽃)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 ‘미생’의 스릴러 버전입니다. 정규직 채용을 오매불망 바라는 미례에겐 출근길부터 전쟁입니다. 제 시간에 출근도장을 찍기 위해 ‘지옥철’에 꾸역꾸역 몸을 밀어넣고, 하이힐을 신은 채 맹렬하게 달립니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출근길을 담은 오프닝은, 긴박함을 살린 편집과 음향효과 만으로도 의외의 긴장감을 줍니다. 


순탄해 보였던 미례의 인턴 생활은 영화가 진행될 수록 균열을 드러냅니다. 동시에 평범하기만 했던 김 과장이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그 비밀에도 점점 가까워집니다. 미례의 팀 선배는 그녀에게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묵묵히 제 일을 하는 것보다, 눈치껏 일하며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능력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죠. 그저 열심히만 일하는 것이 되려 시기와 비난을 사기도 합니다. 성실함이 미덕이 아닌 사회는 평범한 미생들에겐 절망의 다른 말일 뿐입니다. 열심히 일한 만큼 인정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없는 공간, 그만큼 공포스러운 곳이 또 있을까요. 영화는 일상적인 풍경을 가장한 비정하고 모순적인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해냅니다.

결국 ‘오피스’가 보여주고자 하는 건, 성실한 보통 사람들이 ‘열심히 하면 된다’는 믿음으로부터 배반 당했을 때의 분노입니다. 김 과장이 살인을 저지르기 전, 미례는 그의 책상 서랍에서 날이 시퍼런 회칼을 발견합니다. 화들짝 놀란 미례에게 김 과장은 천진한 표정으로 말하죠. 이 칼이 자신에겐 부적이나 묵주와 같은 거라고. 그래서 칼자루를 쥐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해진다고. 권력도 재력도 없는 이들이 자신의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칼 한 자루 뿐이겠죠. 김 과장은 칼이 든 서랍을 하루에도 몇 번은 열어보며 무기력함과 굴욕감, 분노를 속으로 삭였을 지 모릅니다. 그 인내치를 넘어섰을 때, 평범한 사람도 ‘괴물’이 될 수 있습니다.

영화 후반부, 카메라는 한바탕 소동을 겪은 후 또다시 출근길에 오르는 미례의 뒷모습을 비춥니다.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그 모습은 회사라는 공간에서 코미디부터 휴먼드라마, 비극까지 온갖 장르를 경험하면서도 다음 날이면 으레 집을 나서는 우리의 뒷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먹고사는 일의 절박함, 잔인함이란 그런 것인지 모릅니다.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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