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돌릴 틈 없이 제2막이 올랐다. 올해는 추석 연휴가 빠른 탓에, 여름 극장가의 열기가 식기도 전에 흥행 대전이 시작됐다. 이번엔 ‘빅3’다. 여름 극장가에서 ‘암살’로 제1주자로 나섰던 쇼박스는, 이번 연휴에도 ‘사도’로 가장 먼저 출발선을 떠났다. 후발 주자들은 24일 나란히 출격했다. ‘베테랑’으로 잭팟을 터뜨린 CJ엔터테인먼트는 ‘탐정: 더 비기닝’을 추석 카드로 꺼냈다. 최근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었던 롯데엔터테인먼트는 부진을 털어낼 승부수로 ‘서부전선’을 선택했다.
우선은 ‘사도’가 개봉 일주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기선 제압에 들어간 상황이다. 이제 막 뚜껑을 연 ‘탐정’과 ‘서부전선’이 관객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느냐에 따라, 추석 연휴 최종 승기를 잡을 흥행작의 윤곽이 잡힐 전망이다.
▶묵직한 드라마ㆍ빛나는 배우들, ‘사도’=끔찍한 광인으로 기록된 사도세자, 그런 사도를 뒤주에 가둬 죽게 한 비정한 아버지 영조. TV 드라마와 영화에 여러 차례 소환된 만큼 잘 알려진 역사적 사건이다. 이준익 감독이 ‘식상한’ 소재의 부담감에도 메가폰을 잡은 것은 ‘익숙한 사건도 새로운 시선으로 조명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 감독은 임오화변(壬午禍變)을 단순히 스크린에 옮기는 것을 넘어, 이상과 가치관이 달랐던 부자의 내면에 집중해 밀도 높은 드라마를 완성했다.
‘사도’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 송강호와 유아인이라는 두 배우가 아니었다면, ‘사도’가 주는 감정의 진폭은 달라졌을 수 있다. 두 배우의 공통적인 강점은 ‘틀’에 갇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송강호는 전형성을 답습하기 쉬운 ‘왕’이라는 캐릭터마저, 자신만의 목소리와 호흡, 움직임으로 완벽하게 새롭게 빚어낸다. 유아인 역시 ‘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마디’ 만을 바랐던 결핍된 청춘의 얼굴로 사도를 그려냈다.
이준익 감독의 뚝심, 배우들의 열연이 통한 것일까. 초반 레이스가 좋다. ‘사도’는 개봉 7일 만에 2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추천지수 ★★★★)
▶연휴엔 역시 유쾌한 코미디, ‘탐정: 더 비기닝’=연휴 극장가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볼 만한 오락영화를 꼽는다면 단연 ‘탐정, 더 비기닝’이다. 2006년 제8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58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대상을 차지한 시나리오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다. ‘쩨쩨한 로맨스’의 김정훈 감독이 각본을 쓰고 직접 연출까지 맡았다.
영화는 경찰 지망생이었던 만화방 주인 대만(권상우 분)이 광역수사대 출신 전설의 형사 태수(성동일 분)와 콤비를 이뤄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해가는 내용이다. 범인을 쫓는 과정이 제법 긴박하게 펼쳐지면서, 관객들도 추리에 동참하게 하는 몰입도가 있다. 권상우와 성동일의 코믹 연기 호흡도 흠 잡을 데 없다. 특히 성동일은 진지함과 코믹함을 넘나드는 연기에 독보적인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한다. 다만, 여성 캐릭터들은 가장들의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처지를 부각시키는 기능적인 역할에 그치는 아쉬움을 남긴다.
한응수 CJ엔터테인먼트 홍보팀 과장은 “기본적으로 추석 연휴에는 코미디 영화가 강세를 보였다. 특히 ‘탐정’은 코미디와 추리 코드가 결합됐다는 점에서, 두 가지 재미를 다 즐길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코미디를 좋아하는 10~20대나 어르신, 추리물을 좋아하는 30~40대를 아우를 수 있어서 가족끼리 보기에도 좋다”며 “올 연휴엔 정통사극부터 휴먼드라마까지 관객들이 폭넓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경쟁이 기대된다”고 전했다.
현재 ‘탐정’의 예매율은 6.7%(23일 오전 11시 영진위 통합전산망 기준)로, 지금까지는 빅3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 중이다. 예매율 수치만 보면 낙관적인 분위기는 아니지만, 최근 대규모 시사회를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예매율이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추천지수 ★★★)
▶웃음과 감동의 적절한 조합, ‘서부전선’=‘서부전선’은 드라마 ‘추노’, 영화 ‘7급 공무원’,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등 히트작의 각본을 쓴 천성일 작가가 직접 메가폰을 잡은 영화다. 전쟁 영화의 외피를 둘렀지만, 실은 휴먼코미디의 성격이 강하다. 대개 전쟁 영화가 영웅적 인물들과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면, ‘서부전선’은 전쟁터 한 가운데서 ‘비밀문서’를 두고 남북 군인들이 벌이는 해프닝에 초점을 맞췄다. 배우 설경구가 남한군 ‘남복’을, 여진구가 북한군 ‘영광’ 역을 연기한다.
앞서 작품들에서 천성일 감독은 평범한 상황을 비튼 코미디에 일가견을 보였다. ‘7급 공무원’은 자신의 신분을 감춰야 하는 국정원 직원들이 연인 관계로 얽히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영화의 재미를 책임졌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서는 말 그대로 ‘바다로 간 산적’과 ‘산으로 간 해적’이라는 역설적인 상황이 웃음을 안겼다. ‘서부전선’ 역시 정예 군인들이 아닌 늦깎이 군인과 풋풋한 소년병을 내세운 점, 긴박한 전장을 비장하게 그리는 대신 아이러니하게도 코미디로 풀어낸 점 등이 돋보인다.
물론, 전쟁과 분단이라는 비극을 무겁게 바라보는 시선도 읽힌다. ‘비밀문서가 무슨 내용인지 아느냐’는 영광의 질문에 남복은 “우리가 언제는 알고 했느냐”고 반문한다. 전쟁 야욕을 품은 이들은 따로, 영문도 모른 채 희생 당하는 이들은 따로인 셈이다. 영광과 남복이 팬티 바람으로 나란히 걷는 장면은, 남북으로 구분된 군복을 벗어던지면 누구나 똑같이 선량한 인간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임성규 롯데엔터테인먼트 홍보팀장은 ‘서부전선’에 대해 “전쟁 상황 속에서 펼쳐지는 남북병사의 훈훈한 휴먼드라마, 웃음기 넘치는 코미디가 적절히 조합을 이룬다는 것이 강점이다. 또 ‘12세 관람가’의 영화로 올 연휴 모든 연령층의 관객이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현재 ‘서부전선’의 예매율은 12.4%로 ‘사도’의 뒤를 추격하고 있다. (추천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