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효과업체 ‘덱스터’ 이끄는 김용화 감독 “아시아의 픽사 만들 것”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중국 대륙의 ‘큰 손’들이 국내 시각효과(Visual Effects, VFX) 업체에 앞다퉈 지갑을 열고 있다. 국내 대표 VFX 기업 ‘덱스터’는 지난 4월 세계 최대 극장 체인 완다그룹으로부터 100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7월에는 유명 PC업체 레노버를 자회사로 둔 레전드 홀딩스 산하 레전드 캐피털로부터 1000만 달러를 유치하기도 했다. 지난 8월 말, 영화 관련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기술성 평가를 통과, 연내 코스닥시장 상장이라는 목표에도 한 발 다가섰다. 

김용화 영화감독.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덱스터를 이끄는 수장은 영화감독으로 더 친숙한 김용화(44) 감독이다.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 등의 작품으로 충무로의 대표 흥행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덱스터의 DI(Digital Intermediate, 색보정 등 후반작업) 사업부 개소식에서 그를 만났다. 차기작 시나리오 작업을 겸하고 있는 터라 피로감은 묻어났지만, 새로운 사업부를 출범하는 날인 만큼 그의 얼굴에선 벅찬 표정이 읽혔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대표’와 ‘감독’ 중 어떤 호칭이 좋은 지 물었더니, 그는 여전히 ‘감독’으로 불리는 것이 편하다고 미소지었다.

김용화 영화감독.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처음엔 영화(‘미스터 고’)를 잘 만들고 싶은 열망 때문에 덱스터를 만들었죠. 컴퓨터그래픽(CG) 작업에 800억 원을 달라는데 어쩌겠어요. 그렇다고 투자 진행 중인 작품을 안 할 수도 없고…. 물론 내적인 동기도 컸죠. 전 결국 영화는 극장가서 보는 영화와 집에서 보는 드라마로 나눠질 거라고 생각해요. TV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영화를 굳이 많은 인력과 금액을 들여서 해야 할까. (수준 높은 시각효과의 작품을) 안 해서 못하는 건지, 못 해서 안 하는 건지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VFX 기술에 대한 일정 수준의 이해도 없이 업체를 꾸린 건 아니었다. 김 감독은 제임스 카메론,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에 열광하는 소위 ‘할리우드 키드’다. 그는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영상으로 떠올렸을 때, CG의 도움을 받아 구현하면 더욱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최근작 ‘미스터 고’ 뿐만 아니라,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 등에도 CG 기술이 상당 부분 쓰였다. 특히 ‘미스터고’는 주인공 고릴라의 털 한올 한올을 섬세하게 표현한 비주얼로 화제를 모았다. 동물 털을 실감나게 구현하는 것은 상당한 고난도 작업에 속한다.

시각효과 전문 기업 ‘덱스터’를 이끄는 김용화 감독은 최근 사업가로서 괄목할 만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의 대규모 프로젝트에 잇달아 참여한 것은 물론, 완다그룹·레전드 홀딩스 등 중국 대기업들로부터 투자를 받는 성과까지 냈다. 연내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영화 관련 기업으로선 처음으로 기술성 평가도 마쳤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2011년 당시 김용화 감독은 ‘국가대표’의 흥행으로 번 돈을 탈탈 털어 덱스터 설립에 필요한 초기 비용을 마련했다. ‘여기서 안주하거나 가진 걸 놓치지 않으려고 하면, 평생 똑같은 영화를 만들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주위에선 영화감독과 스튜디오 대표를 겸하는 것에 우려가 컸다. 그는 “영화감독이라고 해서 영화만 찍는 것은 아니지 않나. 촬영 중간중간에 밥도 먹고 연애도 하고 그러지 않느냐”면서, “그 시간을 줄여 일하다 보면 3년 뒤 쯤엔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웃어보였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하면 세상이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과 ‘모든 일에 음양이 존재하 듯, 실패의 경험도 기회비용으로 소급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덱스터는 어느덧 직원 250여 명을 보유한 아시아 최고 수준의 시각효과 스튜디오로 자리잡았다. 지난 해 800만 관객을 모은 한국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을 비롯해, ‘적인걸2’(2013), ‘몽키킹’(2014), ‘지취위호산’(2014), ‘고스트 블로우’(2015 개봉 예정) 등 다수의 중국 작품에 참여했다. ‘지취위호산’은 2015년 초 중국 내에서 흥행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016년까지 6개의 중국 프로젝트가 계약된 상황. 중국의 대기업을 주요 주주로 영입한 것을 계기로, VFX 기술의 결정체로 꼽히는 디지털 휴먼 등 연구개발(R&D) 부문에 대한 투자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덱스터가 시각효과 작업에 참여한 ‘적인걸2’ 스틸 컷.

오늘날의 덱스터가 있기까지, 김용화 감독의 선구안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일찌감치 중국 시장의 잠재력에 주목했다. 내수시장을 탓하면서 VFX 분야에 뛰어들길 주저할 수만은 없었다. 시장이 작으니까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하던 것을, ‘시장을 넓혀서 도전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그는 “중국이 최대, 최고 시장이 되는 데 7년을 내다봤는데, 그보다 2배 이상 빨리 성장했다. 극장만 하루 14~15개씩 생기고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현재 중국 VFX 시장은 덱스터 뿐 아니라 국내외 슈퍼바이저들의 치열한 경쟁의 장(場)이 됐다. 할리우드 제작자들도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고비용의 현지 스튜디오 대신 국경 너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중국 외에도 기회의 땅은 널려있는 셈이다.

덱스터가 시각효과 작업에 참여한 ‘몽키킹’ 스틸 컷.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 VFX 업체들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이 부족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캐나다의 경우 VFX 관련 노무비의 최대 20%를 지원하고 있으며, 영국에선 제작비에 따라 최대 25%의 세금 환급을 신청할 수 있다. 호주는 PDV(CG 시각효과, 2D/3D 애니메이션 등) 작업으로 발생한 제작비가 약 5억 원 이상일 경우, 비용의 30%를 돌려준다. 프랑스 역시 방송·영화 제작사와 VFX 스튜디오 등에 현지에서 발생한 제작비의 최대 20%를 환급해준다. 그렇다보니 소니이미지웍스 등은 캐나다와 같은 강력한 세제 지원이 있는 국가로 터를 옮기고 있다. 국내 업체들 사이에서도 한시적인 지원 제도에 답답함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캐나다, 영국, 호주 등이 특정 산업에 그렇게 지원하는 이유를 한 번쯤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미래를 내다봤을 때 VFX가 파생시키는 게 많다고 본 거죠. 게임이나 광고 등도 시각효과가 기반 산업이예요. 무공해 산업이고 청년 고용계수도 높죠. 특혜를 바라는 게 아니라 국가가 적어도 같은 출발선 상에서, 잘 경쟁할 수 있게는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그럼에도 김용화 감독은 “덱스터는 1등을 하기 위해서 (운영)하는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어 “한국의 ‘덱스터’ 하면 몇 년 후에는 ‘아시아의 픽사’와 같은 수식어로 떠올릴 수 있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물론 연출에 대한 열정도 여전하다. 현재 주호민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인 ‘신과 함께’의 시나리오를 집필 중이다. 그는 “다행히 감독 유전자가 있어서 시나리오를 쓸 때는 무아지경으로 쓴다”고 말했다. 스튜디오 대표와 영화감독으로서의 행보 모두 기대되는 이유다.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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