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부전선’ 천성일 감독 “영화 연출, 내 뜻 아니지만…”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TV 드라마 ‘추노’,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7급 공무원’,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모두 천성일 감독(44)의 펜 끝에서 태어난 작품들이다. 탁월한 이야기 솜씨를 뽐내온 그가 영화 ‘서부전선’을 통해 감독으로 변신했다. ‘서부전선’은 남한군 남복(설경구 분)과 북한군 영광(여진구 분)이 서부전선에서 맞닥뜨리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영화. 천 감독의 주특기인 코미디 요소는 물론, 전장(戰場)이라는 비극적인 공간에서 피어나는 인간애도 담겨 있다.

“제가 연출을 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운 건 전혀 아니예요. 사실 영화를 연출하기 위해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어요. 우연이라고 하면 우연이고 운명이라고 하면 운명이겠죠. 여러가지 이유로 (시나리오가) 임자를 제대로 찾지 못하면서, 먼 길을 돌아 다시 저한테 와있더라고요.”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서부전선’의 인물들은 또래 군인들이 아닌, 큰 삼촌과 조카 뻘의 나이 차 있는 관계로 설정됐다. 극 중 ‘남복’은 늦장가를 가서 이제 막 가장이 된 40대, ‘영광’은 아직 까까머리가 어울리는 18살 소년이다. 천 감독은 전쟁터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전쟁에 나가기엔 늦은 사람(‘남복’)과 너무 빠른 사람(‘영광’). 늦으면 늦은대로 그 사람의 사연이 있고, 빠르면 또 빠른대로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천 감독의 감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직접 메가폰을 잡으면서 겪은 시행착오도 있었다. 글만 쓴 입장이었다면, 그림(화면)은 누군가에게 책임져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때로는 작가가 구상한 것과 전혀 다르게 나온 그림이 더 좋을 때도 있다. 이번엔 처음으로 글 쓰는 것부터 화면에 옮기는 것까지 전 과정을 천 감독이 책임져야 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런 예를 들어 설명했다. ‘수만 마리의 개똥벌레가 날아다니는데 빛의 유영같다’라고 글을 썼다면 작가의 할 일은 거기서 끝이다. 감독은 ‘개똥벌레가 2만 마리인지, 3만 마리인지’, ‘어느 정도로 화면을 채워야 할 지’ 고민한다. 개똥벌레로 화면을 꽉 채웠을 때와 헐겁게 채웠을 때를 비교해 보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쓴 글을 직접 연출했을 때 장점도 분명했다. 천 감독은 ‘글을 쓰면서 모든 그림을 완성했기 때문에 연출할 때 덜 불안하고, 드라마의 큰 줄기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연출을 하면서 느낀 건 영화가 감독 만의 작품이 아니라, 촬영과 미술과 연기가 다 들어가 있는 공동의 작품이라는 거였죠. 그렇기 때문에 더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현장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그 때 그 기분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어서 연출에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그런데 기자도 잠입 르포를 장기간 취재해보겠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데스크가 허락해줘야 하는 거잖아요(웃음). 저도 제 의지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니고, 여러가지 상황이 맞아떨어지면 가능할 수도 있겠죠.”

현재 천성일 감독은 제작사 하리마오픽쳐스와 함께 ‘7급 공무원2’(가제)의 시나리오를 작업 중이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두 번째 이야기는 기획 단계라고. 연출의 영역이든 집필의 영역이든 ‘이야기꾼’ 천성일 감독의 넘치는 창작욕이 반갑기만 하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대중에게 보여주는 일은 아름답고도 슬픈 작업인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건 아름다운 건데, 내 이야기에 사람들이 등을 돌린다면 그것만큼 슬픈 일이 없잖아요. 평소에 TV 예능도 많이 보고, 카페 같은 곳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이야깃거리를 얻기도 해요.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그러다보면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독특한 말투 등이 쏙쏙 들어올 때가 있더라고요.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제 자신이 재미있게 느끼는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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