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은막의 스타 이은심(80, 본명 서옥선)이 33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1960)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결혼과 함께 대중들 곁을 떠났다. 1982년엔 아예 가족과 함께 브라질로 이민을 갔다. 그러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의 초청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선 ‘하녀’가 아시아영화 100선에 포함돼 상영될 뿐 아니라, 남편인 고(故) 이성구 감독의 ‘장군의 수염’(1968)도 회고전 상영작으로 선정돼 관객들과 만났다.
“부산영화제에서 저를 한 2개월 찾았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나이가 있으니 혼자 여행을 못하는데, 딸하고 손녀하고 같이 간다고 생각하니 가고싶더라고요. (한국행이) 이번이 마지막이겠죠. 영화제 쪽에서 따뜻하게 대해 주셔서 기뻤고,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이은심이 연기한 ‘하녀’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캐릭터였다. 단란한 가정의 하녀로 들어간 여자는, 집주인인 남편을 유혹해 중산층 가정의 일원이 되고자하는 욕망을 품는다. 견고해 보였던 가정이 하녀로 인해 붕괴되는 과정에서 서스펜스가 상당하다. 당시로선 괴작에 가까웠던 이 작품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명작으로 남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신설한 ‘아시아영화 100’에서 공동 10위에 오르기도 했다. 10위권에 포함된 한국영화는 ‘하녀’가 유일하다.
“당시 연기하면서 어려운 건 없었어요. 신인이고 뭘 모르니까 (김기영)감독님이 직접 액션을 하면서 지도해주셨죠. 주위 스태프들 효과도 많이 봤어요. 당시 제일 실력있는 성우(고은정)가 더빙을 해주셨는데, 그 분이 저를 50%는 더 돋보이게 한 것 같아요.(웃음) 담배 피우는 연기가 어렵긴 했어요. 기침도 나고 실수를 좀 했죠.”
단번에 스타로 급부상했지만, 이은심이 ‘배우’로서 보낸 시간은 3년 여 가량.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면 ‘하녀’보다 먼저 찍은 ‘조춘’(1959), ‘사랑도 슬픔도 세월이 가면’(1962), ‘신식 할머니’(1964)까지 단 네 편에 불과하다. 그녀는 왜 그렇게 빨리 스크린을 떠났던 걸까.
“‘하녀’ 이후에 몇 작품이 들어왔는데, 예술영화에 야심이 있어서 한 편에 마음이 갔어요. 촬영 당시 제목은 ‘내일의 광장’이었는게 개봉은 아마 ‘지게꾼’으로 했죠. 며칠 촬영을 하다가 도저히 못하겠다고 했어요. 상대방이 감정이 오게 제가 연기를 해줘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까 상대가 화를 내더라고요. ‘하녀’는 어떻게 찍었느냐고 창피당했어요.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죠. 그러고나서 영화는 할 생각도 못했어요.”
지금까지 이은심은 배우 생활을 그만둔 걸 후회해본 적이 없다. 영화를 그리워한 적도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소위 ‘길거리 캐스팅’으로 촬영 현장에 발을 들인 그녀에게, 연예계에서 보낸 시간은 혹독했던 모양이다. 이제 평범한 노년을 보내는 이은심은 “우리 딸이 내가 유명한 배우라고 얘기해도 다들 모른다. 걸어다녀도 알아보는 사람도 없다”고 멋쩍게 웃어보였다. 배우 이은심은 그렇게 잊혀진 듯 보이지만, 그녀가 연기한 독보적인 캐릭터는 한국영화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족적으로 남았다. [사진 제공=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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