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MBC가 PD, 기자, 아나운서 등의 직종을 폐지한다고 밝히자 결국 사내 갈등이 폭발했다. 구성원들은 “직종폐지는 부당 전보를 남발하기 위한” 노림수로 봤고, 사측은 “창의적인 조직개편을 위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MBC는 지난 6일 조직개편 및 사규개정에 대한 내용을 통해 ‘인사규정상 직종의 정의를 삭제’키로 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에 따르면 사측은 지난 6일 ‘직종폐지 방침에 따라 직종의 정의를 삭제하는 내용의 사규 개정안’을 노조에 통보하고 12일부터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인사규정에는 직무 특성에 따라 △기자 △카메라기자 △편성 프로듀서 △TV 프로듀서 △라디오 프로듀서 △아나운서 △미술 △제작카메라 △방송기술 △방송경영 △시설 △IT·콘텐츠관리 △기타 등 총 13개 직종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개정안에선 △국장 △부국장 △부장 △사원 등 네 개 직급으로 나누고 사원은 다시 △일반직 사원 △촉탁직 사원 △연봉직 사원 △업무직 사원 등 채용형태로만 분류한다는 것이다. MBC엔 기자 아나운서 PD 등 전문 직종은 사라지고 임원과 사원만 남게 됐다.
사측의 결정에 내부 비판이 거세다. 기자협회·미술인협회·방송경영인협회·방송기술인협회·아나운서협회·영상기자회·카메라맨협회·PD협회 등 MBC 8개 직능단체는 12일 성명을 발표하고 “직종 폐지는 근로조건 침해”라며 즉각 철회할 것을 사측에 요구했다.
앞서 MBC본부는 “지난 몇 년간 MBC가 부당전보 소송에서 수차례 패소한 사측이 이를 남발하기 위한 터무니없는 조치”라며 반발했다.
![](http://heraldk.com/wp-content/uploads/2015/10/20151013000012_0.jpg)
지난 2012년 파업에 참가한 기자, PD등을 비제작부서로 전보조치한 사례를 비롯해 지난 1월 회사를 비판하는 웹툰을 그려 해고당한 권성민 전 PD가 제기한 해고무효소송 등에서 수차례 패소한 사측이 편법을 동원해 “부당 전보를 합법적인 것으로 둔갑”시키려는 의도인 것으로 MBC본부는 보고 있다.
MBC 사측도 만만치 않게 맞선다. MBC 구성원의 대다수가 반발하는 직종 폐지에 대해 MBC는 13일 새벽 “‘직종폐지’ 반대하는 언론노조문화방송본부의 반개혁성과 기득권을 경계한다”며 공식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MBC는 “명목상으로만 존재하고 사실상 사문화되었던 직종제는,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을 판단해 보지도 못한 채 입사할 때 선택한 직종을 평생 갖고 생활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경력이 쌓여도 직종 간 장벽을 넘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라며 사실상 실효성을 잃은 직종 개념을 바로잡아 직무중심의 단일 체계를 통해 콘텐츠에 집중하는 새로운 조직, 창의적 노력을 지지하는 조직을 만들어 나가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또한 노조의 입장을 언급하며 “직종제로 인해 ‘한번 기자는 영원한 기자, 한번 PD는 영원한 PD’라는 등식은 입사 시 직종은 평생 보장되는 것이란 인식을 심어 줬다. 평생 직종의 울타리 안에서 안온하게 살 수 있다는 기득권은 버릴 수 없는 달콤한 유혹”이라며 “이것이 바로 직무 개념과 구별할 아무런 실익도 없는 직종 개념을 굳이 고집하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력직 수시 채용에 이어 직종 개념을 사규에서 삭제하기로 한 것은, 우물 안을 벗어나 ‘세계 시청자’와 만나려는 결정”으로 “부문의 울타리 속에서 타성화, 기득권화 된 조직 문화를 일신하여 창의적 업무풍토를 만들기 위한 조치입니다. 이를 통해 콘텐츠 경쟁력을 높이고 ‘한류 콘텐츠’ 리더로서 진정한 글로벌 미디어 그룹을 완성하기 위한 결단”이라고 했고, “직무중심의 인사 운영 방침은 오래된 관행에서 벗어나 콘텐츠 중심의 방송 본연의 모습을 되찾으려는 개혁 조치”라고 말했다. “언론노조가 극단적 언사로 비판을 일삼은 것은 그들의 반개혁성과 보수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행위”라고도 덧붙였다.
MBC는 “실효성을 상실한 직종 개념을 사규개정을 통해 바로잡은 뒤에도, 기자는 기자로, PD는 PD로 일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변신하고 열정을 바쳐 제작에 몰두하는 기자와 PD는 앞으로도 영원히 기자와 PD로 일하게 될 것”이라며 “직종이란 허상이 사라져도 기자, 카메라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 방송기술, 방송경영 등의 직무는 영원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구성원들은 사측을 신뢰하지 않았다. MBC 기자협회 등은 “지난 2012년 파업 이후 회사는 여러 차례 인사 발령을 통해 본인의 희망과 무관하게 심지어 희망과는 반대로 직원들의 직종을 바꿔버렸다. 상당수의 유능하고 전문성을 갖춘 기자와 카메라기자, PD, 아나운서 등의 직원들은 이 같은 인사로 기존 업무에서 배제돼 본연의 업무와 무관한 일을 해야 했다”며 “직종 폐지를 단순히 ‘사문화된 조항의 삭제’라고 볼 수는 없다. 회사의 갑작스러운 직종 폐지는 그동안 되풀이해온 ‘부당 전보’를 더욱 손쉽게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미리 규정을 손질해놓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MBC본부는 역시 “현 경영진 입맛에 맞지 않는 직원들에 대한 ‘유배’ 인사를 수시로 자행하는 데 있어서 직종 구분이 뭔가 걸림돌이 된다고 느꼈던 것”이라며 “이번 사측의 ‘직종 폐지’ 폭거에 대해 조합은 향후 부당전보 남발을 위한 사전조치일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대다수 MBC 구성원들은 입사 시점부터 ‘자신이 입사한 직종이 일반적으로 유지되고, 향후 근무 역시 해당 직종에서 이뤄질 것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다. 이는 MBC 구성원들의 매우 중요한 근로 조건”이라며 “회사가 조합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직종을 강제 폐지해 구성원들의 근로조건을 침해하려 시도하는 것은 위법 행위”라고 규정했다. MBC본부는 이에 “기습적으로 통보한 ‘직종폐지 사규개정’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며 “취업규칙변경무효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고,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사측을 형사고발하는 등 강력한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