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미의 무비 for U] 3D 영화의 존재가치 입증한 ‘하늘을 걷는 남자’

1976년 8월 7일 미국 뉴욕, 출근길 시민들 앞에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다.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빌딩 사이에 연결된 줄 위를 누군가 걷고 있었던 것. 그 모습은 흡사 하늘 위를 걷고 있는 듯 보였다. 누구라도 ‘미쳤다’고 할 만한 이벤트를 벌인 남자는 펠리페 페팃(필립, 조셉 고든 레빗 분). 무명 아티스트였던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하늘을 걷는 꿈을 꿨다. 그는 쌍둥이 빌딩이 대중에 개방되기 전, 그 사이를 걷겠다는 목표 하나로 조력자들을 모아 무모한 도전에 나선다.

‘하늘을 걷는 남자’(감독 로버트 저메키스)는 3차원(3D) 입체 영상이 슈퍼히어로의 액션이나 우주 영화의 스펙터클에 최적화됐다는 편견을 털어버리기 충분한 영화다. 앞서 SF영화 ‘그래비티’(2013)는 광활한 우주의 황홀함과 그 이면의 공포감을 3D 화면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해 찬사를 받았다. ‘하늘을 걷는 남자’는 ‘그래비티’ 이후 오랜만에 3D 영화의 존재 가치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예컨대 필립이 줄 위에서 중심 잡는 봉을 떨어트릴 때, 눈을 찌를 듯 화면으로 돌진하는 봉에 흠칫 놀랄 수 밖에 없다. 영화의 백미는 단연 필립이 쌍둥이빌딩 사이를 건너는 클라이막스. 현장감 넘치는 화면은 관객도 함께 줄 위에 선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아이맥스(IMAX) 화면을 통해 필립의 발 밑에 펼쳐지는 시가지 풍경은 입을 다물 수 없게 한다. 


영상미는 논외로 하더라도, ‘하늘을 걷는 남자’는 박수 받기 충분한 작품이다. 펠리페 페팃의 실화는 흥미롭지만, 이를 영화로 만드는 건 다른 문제다.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실화가 토대라는 점에서, 우선 소재의 익숙함을 극복해야 한다. 게다가 주인공은 스티브 잡스처럼 업계에 혁명을 일으킨 것도, 마틴 루터 킹 목사처럼 흑인 해방을 이끈 것도 아니다. 미쳤다고 손가락질 받을지도 모르는 무모한 남자일 뿐. 그의 도전에 스크린에서 되살릴 만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과제다. 결정적으로 필립이 줄에서 떨어져 죽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결말이 정해진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건 전적으로 연출의 역량이다.

과연 로버트 저메키스는 ‘거장’의 이름 값을 톡톡히 한다. 그의 선택은 흔하디 흔한 ‘인간 승리’ 스토리가 아니었다. 영화는 필립의 도전 그 자체보다, 디데이(D-Day) 전후의 심리 상태에 집중해 보는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빌딩에 오르기 전날 밤, 필립은 공포에 떨며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인다. 막상 줄 위에 서자 평온함을 되찾고, 경찰들이 압박해오는 상황에선 장난기가 발동한다. 그러다 문득 줄이 끊어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흔들리기도 한다. 이내 자신을 지탱해주는 줄과 도전욕구를 일으킨 타워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관객에 대한 예의’가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약 42미터의 거리를 세 차례 오가는 동안, 그는 인간이 일생에 걸쳐 경험할 만한 온갖 감정을 다 겪는 것처럼 보인다. 이 과정에서 조셉 고든 레빗은 엄청난 밀도의 감정 연기를 탁월하게 소화해내며 클라이막스를 더욱 빛낸다.

간과해선 안 될 사실 하나는 필립이 간절함 만으로 빌딩을 횡단할 수 있었던 건 아니라는 점이다. 목숨을 담보로 한 도전에 준비 없이 뛰어들 순 없다. 거사(?) 전날 필립은 ‘리허설을 20번이나 했으니 그만 하면 됐다’는 여자친구의 말에 ‘그럼 21번 검토하자’고 한다. 피가 배어나온 그의 발바닥은, 그가 단순히 용기와 열정 만으로 신문 1면을 장식한 건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필립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물론, 자신을 옭아매는 체제에도 통쾌한 한 방을 날린다. 그의 줄타기가 ‘불법’이라는 것을 알기에, 지켜보는 시민들은 더 큰 쾌감을 느낀다. 필립에게 수갑을 채운 경찰조차, 그의 도전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필립의 도전 후, 그의 지인들은 쌍둥이빌딩이 지금까지와는 달라 보인다고 말한다. 뉴욕 시민들 역시 흉물스럽게 여겼던 건물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쌍둥이빌딩이 아직까지 존재했다면, 관객들 역시 극장을 나선 순간부터 건물이 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지 모른다. 이처럼 ‘하늘을 걷는 남자’는 인상적인 감상과 압도적인 체험을 동시에 안겨준 수작이다.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