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지난 몇 해간 MBC의 약진은 주말 밤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지난해 초부터 MBC는 주말 밤을 완전히 점령했다. 한 때는 ‘국민 코미디’였던 ‘개그콘서트’(KBS2)의 아성이 MBC 주말극에 무너졌다.
전략은 철저했다. 비단 소재(출생의 비밀, 불륜, 복수, 서민과 재벌, 기억상실증 등)의 문제만은 아니다. 작위적인 구성, 개연성 없는 전개, 황당한 설정이 난무해 ‘막장’이라 불리는 주부 타깃 드라마를 두 편 연속 내보내며 맞이한 전성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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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주말드라마는 이미 중년층 시청자가 보는 콘텐츠라는 대중의 인식이 생겼다. 다만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의 차이인데, MBC는 자극적인 드라마의 틀을 만들었다”고 봤다.
현재 방영 중인 ‘내 딸 금사월’도 다르지 않다. 김순옥 작가의 전작인 ‘왔다 장보리’와 ‘아내의 유혹’을 섞은 ‘진화형 자기복제’ 드라마라는 시각이 많다.
“시청자 역시 익히 알고 있는 온갖 소재를 활용해 버무리고, 거두절미하고 사건 전개만 빠르게 진행”(정덕현 평론가)하는 이 같은 드라마는 놀랍도록 시청자를 휘어잡는다.
몇 회를 건너 뛰어도 일단 한 번만 보면 전체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기에 굳이 질질 끌 필요가 없는 익숙한 패턴을 갖는다.
고아원에서 자란 밝고 착한 여주인공은 알고 보니 부잣집의 딸이었으나, 그 신분을 가로챈 악녀의 끈질긴 방해와 훼방으로 삶의 매순간 고비를 맞는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착한 여주인공은 언제나 위기를 모면하고, 가로채기 당한 자신의 신분도 되찾을 것이며, 결국 행복해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권선징악’을 향해 무조건 직진이다. 다만 그 과정에 개연성이라고는 없다. 논리로는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악랄한 발상은 해를 거듭할수록 진화한다. 그러면서도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묘사나 심리를 엿보는 장치는 없다. 복수를 위해 변장을 한다고 하나 가발을 쓰고 선글래스를 착용(내 딸 금사월)하는 것이 고작이다. 형편없는 디테일에 실소가 나온다.
몇 가지 코드에 자극적인 상황만으로 복제품 같은 드라마를 만들지만 제작자들은 굳이 변화를 시도하려 하지 않는다. 이미 수십년간 시장을 통해 검증받은 흥행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앞서 SBS가 ‘탈 막장’을 시도하며 참신한 기획의 드라마를 내보냈으나 동시간대를 꽉 잡은 MBC 주말드라마에 번번이 수모를 당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이 시간대의 주부 시청자들은 무조건 TV를 틀어놓는 생활패턴이 굳어져있다. 익숙하고 편안하게 보고 대리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원하는 상황에서 굳이 다른 걸 시도해 기존의 패턴을 깰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라고 봤다.
이미 수년째 같은 드라마를 만들고 편성하는 방송사의 무신경함이 문제로 지적될 수밖에 없다. 정덕현 평론가는 “주말극는 원래 유쾌한 가족드라마에 세태를 담아낸 것이었는데 MBC가 이 시간대에 들어오며 막장으로 코드를 전환시켰다”며 “드라마를 보는 패턴 역시 편성에 따라 학습된다. 괜찮은 콘텐츠를 보여주고 그 안에서 재미를 느끼게 할 수도 있는 것인데, 현재의 주말드라마는 자극적인 코드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당연히 우려가 나온다. 천편일률적인 소재로 구태를 반복하면 콘텐츠로서의 가치가 떨어져 드라마 산업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드라마가 동어반복이 되면 일회용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두고 두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보고 폐기되는 상황이 반복되며 드라마 발전 전체에 걸림돌이 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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