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알려주마] “우리 그냥 방송하게 해주세요”…근본적 대책은?

“제행무상이라고, 세상은 자꾸만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게 있습니다. 정권이 방송을 탐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의 주구가 돼서 지금도 방송을 어떻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자유롭게 방송을 할 수 있는 날이 하루 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008년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에 선 박명종 부산MBC PD(‘아가마의 길, 2552년만의 귀향’)의 수상소감에 여의도홀엔 박수와 함성이 가득 찼다. 이 수상소감은 무려 7년을 뛰어넘어 최근 SNS를 통해 회자됐다.

지상파 방송3사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 혹은 뉴스 아이템이 사라지는 사례는 결국 현재의 권력을 겨냥했을 때에 빚어진다. 

[사진제공=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비일비재하게 불거지는 일이다. 때문에 각 방송사에선 PD, 기자들의 제작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공정방송위원회(협의회)다.

KBS와 SBS는 노사 공정방송위원회(이하 공방위)를 두고 “보도 및 기타 프로그램이 방송되지 않을 경우나 특정 아이템이 삭제되는 등의 사안에 대해 제도를 통해 공론화”하고 있다. KBS의 경우 “노사 양측의 논의 내용을 녹취해 공개”할 수 있으며, “회의 내용을 보면 누가 불리한 상황이며, 명백하게 단체협약을 위반하고 있는지 누구라도 파악”할 수 있다.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같은 일이 빚어질 경우 방송을 바꿔나가는 역할”이 바로 공방위를 통해 이뤄진다. 

[사진제공=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KBS의 한 기자는 “취재나 제작에 있어 관습적으로 자기검열을 하는 부서도 있겠지만 아이템의 발제와 취재를 문제삼는 분위기는 아니다. 상식적인 취재가 허용된다. 하지만 아이템의 강도를 낮추거나 특정인터뷰가 빠지는 경우는 있다”고 말했다. 다만 “문제제기를 하고, 공론화할 수 있는 환경은 마련돼있다. 가만히 있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끊임없는 내부의 파생들을 통해 공정성을 지키려 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MBC는 환경 자체가 마련되지 않았다. 

지난 2012년 “사측에서 단체협약을 파기한 이후 공정방송위원회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민주방송실천위원회 측의 설명이다. 제작자율성을 보장하고 방송공정성을 담보할 제도적 장치가 없는 셈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지난 수년간 사측과의 갈등에서 빚어진 부당전보와 해고 등의 과정을 몸소 학습하자, 제작 일선에선 현재 압박과 위축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MBC의 한 기자는 “제작자율성이 보장되는 것이 당연하나 이미 제작자율성은 침해받고 있다. 회사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내거나 프로그램 아이템을 가지고 문제제기를 하면 부당전보나 해고를 각오하고 총대를 매야 하는 상황이다. 내부 게시판에 글을 하나 쓰는 것도 쫓겨날 각오를 해야하니,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 최선인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이 나온다”고 말했다.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것보다야 당연히 있는 편이 낫다. 하지만 공방위 역시 실효성이 없어 ‘형식적인 장치’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지키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당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보여주기 식에 머문다. 구성원이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고, 사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제도적, 법적 구속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이 또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할 수 없는 방송현실”은 이미 수년째 이어졌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이 우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진제공=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최진봉 교수는 “조직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두 공영방송의 사장을 선임하는 KBS이사회와 방송문화진흥회(MBC)의 여소야대 구조(KBS 여당 이사 7:야당 이사 4, 방문진 여당 6:야당 3)를 개선해야 하며, 이사회와 방문진이 선정하는 사장 추천 및 임명에는 특별다수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올해에도 이미 방송통신위원회는 기존대로 공영방송 이사회를 구성했고, KBS는 최근 보도본부장 시절 ‘불공정 보도’ 논란이 일었던 고대영 KBS비지니스 사장을 최종 후보자로 추천했다. 최 교수는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편파적인 이사 구성 이후 사장이 추천 혹은 임명되는 공영방송은 정부 여당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또한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반복된다”고 꼬집었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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