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플래쉬…음악영화에서 서늘한 스릴러 기운
마션·인턴…친근한 SF·휴먼코믹물반전의 반전
‘OO, 한국이 흥행 2위 국가’, ‘OOO, 미국 다음으로 한국서 가장 흥행’…
흥행 외화들에 붙는 이 같은 수식어가 더이상 낯설지 않다. 한국 관객들은 어느덧 세계 영화시장이 주목하는 ‘큰 손’이 됐다. 연간 극장 관객 수만 2억 명, 1인당 평균 관람 횟수는 4.19회에 달한다. 아이슬란드 4.28회(이하 2013 英 스크린다이제스트 자료 기준), 싱가포르 4.15회, 미국 3.83회, 프랑스 2.99회 등과 비교하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한민국 인구 수가 5150여만 명, 세계 26위(행정자치부 주민등록인구통계 2015년 9월 기준)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인의 영화 사랑은 더욱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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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 위플래쉬’‘ 마션’(왼쪽부터)까지 올해 화제의 외화들은 미국을 제외하면 한국에서 가장 큰 흥행을 거뒀다. 이들은 장르를 불문하고 관객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새로움’을 공통적으로 갖췄다. 덕분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한국 상업영화의 익숙한 문법에 싫증난 관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
올해는 상반기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를 시작으로 최근 ‘마션’까지 상당 수 외화들이 미국 다음으로 한국에서 가장 흥행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 ‘인턴’(누적 343만, 2일 영진위 통합전산망 기준)은 액션 블록버스터나 인기 프랜차이즈가 아님에도, 전 세계 상영국 가운데 한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수익을 기록 중이다. 앞서 ‘위플래쉬’는 미국을 제치고 한국에서 더 많은 흥행 수익을 내기도 했다.
한국에서 유독 흥행 성적이 좋았던 외화들은, 입소문의 힘으로 흥행한 경우가 많다. 단순한 ‘재미’보다는 기존 장르물과 차별화 된 ‘새로움’에 대한 열광이 깔려 있다. 외형만 보면 오락영화, 음악영화, 휴먼 드라마 등으로 나눌 수 있지만, 단순 장르 구분이 아쉽게 느껴지는 신선한 도전이 담겼다.
▶다 같은 액션영화가 아니다…색다른 스타일의 쾌감=상반기엔 각기 다른 색깔의 오락액션영화 두 편이 흥행 신드롬을 일으켰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약 612만 명)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약 384만 명)가 그 주인공. ‘킹스맨’은 스파이영화의 본 고장인 영국(2416만744 달러, 이하 박스오피스 모조 기준)을 제치고 미국(1억2826만1724 달러) 다음으로 한국(4688만5360 달러)에서 많은 수익을 거뒀다. 다만, 한 달 여 뒤에 개봉한 중국의 최종 수익(7466만7000 달러)에 따라잡히긴 했다. ‘매드맥스’는 국내 극장가에서 2907만116 달러(미국 1억5363만6354 달러)를 벌어들여 역시 비미국 지역 최고수익을 기록했다.
‘킹스맨’과 ‘매드맥스’는 국내에서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액션물과는 달랐다. 물량 공세 블록버스터도, 마블의 인기 프랜차이즈도 아니었다. 두 작품 모두 독창적인 액션신이 주는 쾌감이 압도적이었다. ‘킹스맨’은 기존 스파이액션의 공식을 뒤엎은 역발상과 B급 정서가 색다른 풍미를 더했다. ‘매드맥스’ 역시 CG가 아닌, 흙먼지 날리는 투박한 자동차 액션신과 오락영화답지않은 세기말적 분위기가 신선했다. 기획영화의 익숙한 문법이 아닌, 의외성을 향한 대중들의 열망이 두 편의 영화를 통해 드러난 셈이다.
▶익숙한 음악영화에 낯선 ‘스릴러’의 향기가?=한국에서 가장 돋보이는 흥행 성적을 일군 것은 ‘위플래쉬’(약 158만 명)일 것이다. 관객수는 소박한(?) 편이지만, 화제성 면에선 단연 돋보였다. 다양성 영화로 분류돼 소규모 개봉, 입소문으로 상영관을 500여 곳까지 늘리며 박스오피스 1위까지 올라서는 괴력을 발휘했다. 마침내 1141만9255 달러(미국 1309만2000 달러)의 수익을 냈다. 영국(244만6616 달러), 프랑스(229만3387 달러), 일본(202만5463 달러) 등과 비교하면 5배 가량 많다. 덕분에 ‘위플래쉬’ 수입사는 약 5000만 원에 영화를 사들여, 수십억 원에 달하는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다.
익숙한 음악영화의 틀을 벗어난 ‘위플래쉬’의 면면은 놀라운 것이었다. 한국 관객들이 음악영화를 사랑한다곤 하지만, ‘원스’나 ‘어거스트 러쉬’, ‘비긴 어게인’ 같은 서정적 분위기의 작품들에 한정됐다. ‘위플래쉬’는 구성과 편집으로 볼때 음악영화를 가장한 스릴러라고 해도 무방하다. 천재 드러머를 꿈꾸는 학생과 광기 가득한 폭군 선생의 대결 구도는 물론, 이들의 대립을 은유하는 지휘·연주가 발군이었다.
▶ ‘관객 예상을 뛰어넘어라’…흔한 장르영화의 역습=1000만 한국영화 두 편(‘암살’, ‘베테랑’)이 여름 성수기를 휩쓴 뒤, 비수기 극장가에선 ‘마션’과 ‘인턴’이 강세를 보였다. ‘마션’은 3222만1027 달러(미국 1억8312만1850 달러, 이하 미국 현지시각 11월 1일 기준), ‘인턴’은 2373만7522 달러 (미국 6856만2024 달러)를 벌어들였다. 특히 ‘인턴’은 한국에서 일본(771만9145 달러), 호주(597만7762 달러), 영국(412만1679 달러),독일(469만730 달러) 등과 비교해 3~5배 가량 높은 수익을 기록했다.
SF영화 ‘마션’은 ‘인터스텔라’의 후광과 부담을 동시에 안고 출발했다. 우주가 배경이고, 우주 비행사가 주인공이고, 출연진(맷 데이먼, 제시카 차스테인)이 겹친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인터스텔라’의 흥행으로 우주 소재 영화에 친근해졌지만, 그 이상 새롭지 않다면 평가절하될 위험부담도 커졌다. 하지만 ‘마션’은 우주의 스펙터클과 가족애·인류애 등 보편 감성을 담을 것이라는 예상을 보기 좋게 뛰어넘었다. ‘화성판 삼시세끼’로 불릴 만큼, 한 인간의 생존기에 집중했다. 주인공의 분투는 연민이 갈 만큼 처절하면서도, 생(生)에 대한 인간의 의지는 새삼 관객을 숙연하게 했다.
‘인턴’은 특별할 것 없는 휴먼 코미디처럼 보인다.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것도, 스펙터클로 무장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국내에서의 이례적인 흥행은 기본적으로 공감과 위안이 필요한 세대를 움직인 것이 주효했다. 예상 가능한 전개와 결말에도 ‘인턴’의 신선한 설정들이 호감도를 높였다. ‘젊은’ ‘여성’ CEO와 ‘나이든’ ‘남성’ 인턴 직원이라는 전복적인 인물 구도부터, 성공한 CEO의 완벽한 사생활이 아닌 위태로운 일상을 그린 점 등이 흥미롭다.
올댓시네마의 김태주 실장은 “‘매드맥스’는 CG를 쓰지 않은 액션의 새로움, ‘위플래쉬’는 관객을 몰입하고 체험하게 한 점이 통했다. 피부로 와닿는 새로움에 대한 관객들의 갈망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며 “‘인턴’ 역시 기존 코미디 외화가 연인관계를 다룬 것이 많았다면 직장·사회·가정생활을 다루면서 관객이 영화를 공감하고 체험하게 한다. 뻔한 로맨스를 배제하면서 해당 장르에 대한 관객들이 예상을 뛰어넘은 ‘반전’이 통했다고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