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국회부터 한번도 안지켜진 선거구 획정시한

[헤럴드경제] 법을 만드는 국회가 12일 사실상 자신들이 정해놓은 선거구 획정안 처리 법정시한을 스스로 어김에 따라 ‘선거 대혼란’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선거구 획정 작업을 연내에 마무리 짓지 못하면 내년 1월1일부터는 전국의 모든 선거구가 사라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지만 이날 여야 지도부간 협상 결렬로 선거구 획정 기준에 대한 정치권의 합의 도출은 요원해졌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원유철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이종걸 원내대표는 지난 10일과 11일에 이어 이날 국회에서 양당 원내수석부대표와 국회 정치개혁특위 여야 간사까지 포함한 ‘4+4 회동’ 형식으로 만나 선거구 획정 전반에 대한 협상을 벌였으나 합의에 실패했다.

이로써 하루 남은 법정시한내 선거구 획정안 확정이 사실상 물건너감에 따라 벌써부터 총선 준비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당장 선관위는 내달 5일 선거구별 선거비용제한액을 공고해야 하지만 실제 총선에 적용될 선거구가 확정되지 못함에 따라 현행 선거구를 기준으로 산정해야 한다.

또 선관위는 새롭게 선거구가 획정되면 변경된 인구수 및 읍·면·동수에 따라 선거비용제한액을 재산정해야 한다.

이어 다음 달 12월 15일부터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지만 내년 1월 1일이 되면 현행 선거구가 모두 무효화되면서 예비후보 등록도 효력을 잃게된다. 기존 예비후보 등록자는 법적 자격을 상실하게 되고 추가로 예비후보 등록도 할 수 없게된다.

예비후보 자격을 갖지 못하면 총선 출마 예정자들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게된다.

이처럼 연말까지 선거구획정이 안되면 총선대비에 일대 혼란이 발생하기 때문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정치권은 선거구 획정 기준 마련 ‘마지노선’을 올해 12월 31일까지로 보고 있다.

다만 여야가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치개혁특위의 활동시한을 내달 15일까지로 정한 것은 1차적으로 내달 15일까지는 선거구획정을 마무리짓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선거구를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여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린다는 점에서 여야는 쉽게 타협하기보다는 ‘벼랑끝 협상전술’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정치권이 선거일을 한두 달 남겨 두고서야 선거구 획정을 마무리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2000년 16대 총선부터 2012년 19대 총선까지 획정위가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하는 시한은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과거에는 선거구획정위의 선거구획정안 국회제출 시점만 규정돼 있었고, 최근개정된 선거법처럼 선거구 획정안 처리 시한에 대한 개념은 없었으나 16 총선 이후 지난 19대 총선까지 모두 선거일을 1∼2개월 코앞에 두고서야 극적으로 처리됐다.

하지만 올해도 이런 관행이 되풀이될 경우 파장은 과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동안은 선거구획정이 해를 넘기더라도 기존 선거구가 유효한 상태에서 일부 지역구만 조정됐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올해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해를 넘기면 현행 선거구 구역표 전체가 무효화되기 때문이다.

선거구 획정을 둘러싸고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어 현재 분위기로 볼 때 이런 우려를 그저 기우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대혼란을 막으려면 여야가 선거구 획정 기준을 마련해 중앙선관위 산하 선거구 획정위로 전달하고 이 기준을 토대로 획정위가 만든 획정안이 국회로 넘어오면 본회의에서 이를 처리해야 한다.

이 모든 작업이 연내에 마무리돼야 대혼란을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여야 지도부가 직접 나서 사흘간 마라톤 협상을 벌였음에도 좀처럼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는 점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선거구 획정 협상이 다시 모멘텀을 얻기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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