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칼럼-정덕현] 스펙사회, 차라리 복면 원하는 청춘

복면을 뒤집어쓰고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복면가왕>은 실로 기괴하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지만 처음 괴상한 복면을 봤을 때 느껴지는 불편함은 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똑같이 느끼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예능 프로그램이 상대적으로 낯선 어르신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하는 분들도 많다. 그렇게 느끼는 게 당연한 것이 어르신들이 살던 시대에 무대란 ‘자신을 맘껏 드러내는 기회’의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에게는 <불후의 명곡2> 같은 프로그램들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그 무대에서는 자신의 가창력을 뽐내거나 아니면 노래의 대단함을 재발견해주는 식의 ‘드러냄’이 자연스럽게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애초에 ‘쇼’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복면가왕>의 가수들은 자신의 존재를 복면으로 가린 채 무대에 오른다. 그런데 이들이 복면을 쓰는 이유는 아이러니하다. 얼굴을 가리는 것이지만 그것이 사실은 자신들의 진가를 드러내기 위함이라는 것. 가리는 건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리고 무엇을 드러내는 것일까. 가리는 건 편견이고 드러내는 건 진가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편견을 만드는 것일까. 외모, 이름 속에 들어있는 그 사람의 스펙,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고 부모는 누구고 학교는 어디를 나왔는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것들을 복면으로 가리고 나면 남는 건 그 사람의 목소리와 가창력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어느 정도의 가창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무대에 설 수 있다. 이른바 ‘복면의 평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최근 종영한 MBC <그녀는 예뻤다>에는 주근깨투성이의 여자 주인공이 차츰 외모와 스펙을 극복하고 그 자체로 예쁜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는 이야기로 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드라마 형식이고 딱히 복면을 쓴 건 아니지만 여기서도 주근깨라는 설정은 또 다른 복면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외모도 아니고 또 화려한 스펙도 아닌 자신만이 갖고 있던 능력(동화작가를 꿈꾸면서 갖게 된 상상력, 기획력 같은)으로 자신의 진가를 드러낸다. 다행스럽게도 그녀가 들어간 그 회사는 복면을 쓴 채 실제 능력을 보여주는 인물을 알아봐주는 곳이었다. 하지만 어디 현실도 그런가. 현실에서라면 능력을 보여줄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액면’으로만 평가되는 경우가 다반사일 게다.

그래도 윗세대들의 시대에는 실력만 있다면 스스로를 드러낼 무대가 있었고 그렇게 무대에 올라 괜찮은 기량을 보여줌으로써 자신만의 쇼를 보여줄 수 있는 길도 좁지만 열려 있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요즘은 그렇지가 못한 것 같다. 심지어 대학을 나와도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은 스펙 때문에 서류심사에서조차 통과하기가 힘든 청춘들이 많다. 외국어 능력은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 쓸 만한 자격증은 뭐가 있는지 등등 회사의 문턱을 넘기 위한 스펙들은 점점 더 쌓여간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경험해본 분들은 알 것이다. 그 따위 스펙들이 실제 사회생활에서는 그다지 쓸모도 없다는 것을.

‘쇼 머스트 고 온(Show must go on)’. 인생을 흔히 쇼에 비유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펼쳐지는 쇼는 갖가지 스펙을 뒤집어씀으로써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사실 태생으로 미래가 결정되는 것만큼 불행한 사회는 없지 않은가. 모두가 똑같이 공정한 기회를 얻고 싶다는 절절함이 저 기괴한 복면에 드리워져 있다. 스펙사회. 청춘들은 차라리 복면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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