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울고웃던 가족·이웃·친구들 이야기
그리운 골목속 시간에 세대불문 ‘호응’
현재의 우리에게 보내는 애잔한 戀歌
tvN ‘응답하라 1988’는 신원호 PD가 망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중년세대는 물론이고 2030세대까지 공감대를 형성하며 호평받고 있다. 이미 ‘응답하라 1997’(2012년)과 ‘응답하라 1994’(2013년)를 성공시킨 후 이번에는 1988년까지 내려간 이유가 무엇일까? 신원호 PD는 90년대는 삐삐나 PC통신 같은 것이라도 있었지만 88년은 완전히 아날로그 시대였다고 말했다.
같은 분위기의 시리즈물이지만 1988년은 1997년과 1994년과는 많이 다르다. 1987년 6.10 항쟁 이후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이뤄지고 그 이듬해인 1988년은 속은 힘들게 살아도 겉으로는 서울올림픽으로 성장과 과시, 낙관의 시대를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해서 90년대는 적어도 1997년 IMF가 시작될 때까지는 거품까지 향유한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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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간의 따뜻함을 가득 담은 tvN‘ 응답하라 1988’가 중년은 물론 이삼십대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신원호 PD는 “훈훈한 정을 느껴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따라서 80년대는 90년대에 비해 이중적이면서 쓰디쓴 무거운 역사가 응집돼 있다. 그렇다 보니 ‘응칠’과 ‘응사’의 여주인공이 대중스타를 좇는 ‘빠순이’라면 ‘응팔’은 못살던 시절의 따뜻한 가족과 이웃을 소환함으로써 향수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지금은 사라진 훈훈한 가족애와 이웃간의 정은 아파트에서 층간소음으로 이웃과 살벌하게 싸우는 요즘 대중의 결핍 정서를 환기시킨다.
‘응팔’은 당시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서울 도봉구 쌍문동 골목가를 상정했다. 잘 살지도 않고, 못 살지도 않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동네라는 것이다. 곤로와 연탄이 등장하고 골목길 한 켠에 놓여진 평상에서 주부들이 모여 음식을 함께 먹고 옆집 부부의 성생활(?) 문제에까지 관심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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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PD는 “사라진 골목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는 글들을 많이 봤다”면서 “‘응팔’은 이웃간에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고 지내던 따뜻한 정들을 그려낸다. 우리 드라마를 보면서 훈훈한 정을느껴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극중 사람들이 지금 사람들에 비해 돈 부자는 아니지만 마음 부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에는 엄마가 없는 집, 아빠가 없는 가정이 나오지만, 이웃간의 정으로 힘든 것들을 나눈다. 정말로 좋은 일은 함께 하고, 힘든 일은 서로 나눈다. 요즘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음식을 하면 이웃끼리 반찬이나 파전을 나눠 먹는 건 기본이다. 밥이 모자라면 빈 공기를 들고가 밥을 한 가득 얻어온다. 엄마가 없는 택(박보검)의 바둑대회 우승을 축하해주기 위해 라미란네 가족들이 모두 모여 당시 생소한 외국 음식이었던 스파게티를 마치 비빔국수처럼 양푼에 비벼 나눠 먹는다. 택이 바둑대회에서 참패해 혼자 힘든 시간을 보내자 골목친구들이 몰려와 “차라리 욕을 하라”며 모두가 한바탕 욕을 내뱉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깔깔 웃어넘겨 택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오게 했다.
라미란은 옆집에 사는 이일화의 딸 덕선(혜리)이 수학여행을 가는데 여비를 줄 수 없음을 알고, 옥수수를 먹으라고 주면서 바구니 밑에 여비에 보태 쓰라고 만원짜리 몇 장을 봉투에 담았다.
이일화는 딸 덕선이 수학여행에서 그 귀중한 미놀타 카메라를 잃어버려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카세트 테이프로 금강경을 들으며 화를 삭였다. 이어 막내 아들이 일일찻집을 주선했다고 지도부 주임에게 걸려 부모가 학교에 와달라는 교사의 전화를 받고도 아들에게 화내지 않았다. 그리고는 라디오에서 주 기도문을 듣고 있었다.
못 살던 시절이었지만 어머니는 자식의 기를 죽이지는 않았다. 당시 덕선 집에 있는 미놀타 카메라는 가보나 다름없다. 그걸 잃어버렸으니 덕선부터 ‘멘붕’에 빠졌다. 그런 상태의 아이를 엄마가 혼낸다면 그건 최악이다. 이일화는 딸이 감히 전화를 직접 걸지 못하고 교사를 통해 연결된 전화에다 “괜찮다. 그럴 수 있지”라고 대범하게 말한다. 어릴 때 비슷한 경험이 있는 기자는 이 대목이 크게 와닿았다.
이일화의 남편 성동일은 포장마차에서 할머니로부터 껌을 사주고, 파산한 친구가 파는 물건들을 사온다. 성동일은 이런 일로 매번 아내에게 바가지를 긁히고 살지만 계속 그 일을 반복한다. 라미란의 남편 김성균도 과거 자신을 도와준 친구로부터 짝퉁 점퍼를 비싸게 사고도 무르려고 하지 않는다.
‘응팔‘은 선우(고경표), 덕선(혜리), 정환(류준열)의 삼각관계로 혜리의 남편찾기도 본격화됐다. 하지만 그것보다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 사사건건 쥐어뜯고 싸우는 형제자매들의 모습이 우악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바로 앞 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도 않는 요즘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갈 것이다.
‘응팔’은 가족과 친구의 소중함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난해서 궁상을 떨어도 마음만은 부유했던 이유가 잘 나타나 있다. “오래된 내 것만큼 지겹고 초라한 것은 없다. 하지만 지겨움과 초라함의 다른 말은 익숙함과 편안함 일수도 있다. 오랜 시간이 만들어준 익숙한 내 것과 편안한 내 사람들만이 진심으로 나를 알아주고 토닥여 줄 수 있다. 익숙하고 편안한 오랜 내 사람들. 그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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