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통 멜로로 꼽을 만한 영화는 ‘쎄시봉’과 ‘무뢰한’, ‘뷰티 인사이드’ 정도였다. 그마저 관객들의 고른 호응을 얻진 못했다. ‘쎄시봉’은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는 소재와 충무로가 주목하는 젊은 배우들로 주목 받았으나 총 관객 수는 170만여 명 수준에 그쳤다. ‘뷰티 인사이드’는 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지만, 화제성이나 화려한 출연진에 비하면 만족할 만한 성적표는 아니었다. 두 작품에 비해 호평 받은 ‘무뢰한’은 아트하우스를 통해 소규모 개봉하면서 40만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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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나온 멜로 영화들도 엄밀히 말하면 정통 로맨스는 아니다. 올해 포문을 연 멜로 ‘오늘의 연애’는 로맨틱 코미디였고, ‘쎄시봉’은 음악 소재와 로맨스가 버무려졌다. ‘무뢰한’은 스스로 장르를 ‘하드보일드 멜로’로 명명했 듯 누아르의 분위기가 강했다. 개봉을 앞둔 멜로 영화들도 코미디나 ‘19금’ 요소가 가미된 작품들이다. 윤계상·한예리 주연의 ‘극적인 하룻밤’, 문채원·유연석 주연의 ‘그날의 분위기’ 등의 로맨틱 코미디가 멜로 영화 기근인 극장가에 그나마 단비가 될 전망이다.
2000년 대 초만 해도 로맨스 영화가 풍년이었다. 제작 편 수도 지금보다 많았을 뿐더러, 두고두고 회자되는 수작들도 제법 나왔다. ‘동감’(2000), ‘봄날은 간다’(2001), ‘번지점프를 하다’(2001), ‘연애소설’(2002) ‘클래식’(2003), ‘너는 내 운명’(2005) 등은 여전히 한국 로맨스 영화의 대표작들로 꼽힌다. 최근 몇 년 간은 ‘건축학개론’(2012) 정도를 제외하고는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멜로 영화가 전무하다.
잘 만든 로맨스 영화가 없다는 문제도 있겠지만, 관객과 제작자 모두 해당 장르를 기피하는 분위기 탓이 크다. 극장에서 보다 스펙터클한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 성향이 강해지면서, 제작자는 물론 흥행 배우들도 액션과 스릴러 등의 장르에 집중되고 있다. 결국 멜로 영화 제작 편 수 자체가 줄다보니 좋은 작품이 나오기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한 영화 관계자는 “관객들이 멜로 정서를 공감하는 데 인색해지고 상대적으로 밝은 로맨틱 코미디를 찾는 경향이 있다. 최근 멜로 영화의 흥행 전례가 없다보니, 제작에도 선뜻 나서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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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여전히 멜로 영화의 수요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개봉 당시 흥행 기록을 넘어선 ‘이터널 선샤인’을 비롯한 재개봉 외화들이 국산 멜로영화의 공백을 채우는 분위기다. ‘러브 액츄얼리’, ‘그녀에게’ 등 손꼽히는 멜로 영화 수작들이 줄줄이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가운데 내년 상반기 개봉 예정인 ‘남과 여’(감독 이윤기, 주연 전도연·공유)가 한국 정통 로맨스 영화 계보의 막힌 물꼬를 틀 작품이 될 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