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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만 하면 잘린단 말야…?”
지난 7일 BBCN뱅크와 윌셔은행의 통합발표가 있던 기자회견장에서 나오던 윌셔은행 유재환 행장은 자신의 목에 손바닥을 갖다대며 그렇게 말했다. 농담처럼 웃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정반대였으리라 짐작된다.
4년전인 2011년 12월 9일 중앙은행과 나라은행의 합병발표를 하는 자리에도 유 행장은 메인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중앙은행장 자격이었다. 하지만 통합은행의 CEO인 행장자리는 당시 나라은행의 앨빈 강 행장이 맡기로 해 유 행장에게는 사장(President)이라는 애매한 직위가 주어졌다.그로부터 한달도 채 안돼 유 행장은 윌셔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에 앞서 지난 2004년에도 유 행장은 한미은행장 재직 중 한국 외환은행의 미국법인인 퍼시픽유니온뱅크(PUB)를 인수하는 실무작업을 마친 뒤 옷을 벗어야 했다. PUB인수합병 기자회견 때까지만 해도 직접 발표를 맡았지만 그로부터 6개월도 채 안돼 한미 이사진이 웰스파고 부행장이던 손성원씨를 영입하는 바람에 물러나 1년 이상 야인생활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번 통합발표 석상에서도 유 행장은 메인테이블에 앉았다. 하지만 통합은행의 행장을 BBCN 케빈 김행장이 맡기로 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그는 지긋이 눈을 감았다. 윌셔뱅콥 고석화 이사장은 “BBCN이 존속기업(Surviving company)가 되는 만큼 그쪽에서 행장을 맡는 것”이라며 “유 행장은 풍부한 경험으로 은행경력이 많지 않은 케빈 김 행장을 돕도록 컨설팅역할을 맡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고문으로 계속 일을 하게 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한인은행권에서는 유 행장이 고문 타이틀을 달고 계속 통합은행에 남을 것으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 이번 통합발표를 지난 4일 윌셔은행 창립 35주년 기념행사가 끝날 때까지도 유 행장이 몰랐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참이다. 고석화 이사장이 ‘상장은행의 대외비 원칙’을 지키느라 CEO인 유 행장에게 합병성사를 의도적으로 알리지 못했을 수도 있고, BBCN 이사회의 표결결과가 6일 오후에 나왔던 만큼 모르는 게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합병작업의 과정은 철저히 고석화 이사장과 BBCN 케빈 김 행장의 독점적인 협상이었던 만큼 유 행장으로서는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유 행장의 거취가 어찌될 것인지를 점치기에는 이르다.하지만 벌써부터 물밑작업이 시작됐다는 소문도 있다. 유 행장 스스로일 수도 있고, 다른 은행에서 손을 쓰고 있을 수도 있다. 한미은행과 중앙은행(현 BBCN) 그리고 윌셔은행까지 상장 3대은행의 CEO를 두루 거친 사람은 오직 유 행장 뿐이기 때문이다. 전화위복과 대반전의 기회가 유 행장의 앞에 활짝 열려 있다.
황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