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 시리즈는 드라마가 갈등 구조가 아닌 회마다 완결성을 지닌 테마(제목으로 제시됨)와 연관된 에피소드로 굴러간다는 점에서 예능국에서 만들던 시트콤과 가깝다. 하지만 극성은 시트콤보다 훨씬 더 강해 새로운 형태의 드라마라 할만하다.
‘응답’ 시리즈가 여러 가지 면에서 기존 드라마와 다른 점이있겠지만 ‘응팔’에서 확실한 차이점을 보이는 것은 무성과 정봉 캐릭터라 할 수 있다.
나는 최무성(최무성 분)이 이 정도로 많은 이야기와 분량을 가진 배역인 줄 몰랐다. 혼자 아들을 키우는 동네 아저씨인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엄청난 캐릭터다. 선영과 느릿느릿한 러브라인도 꽤 비중있게 다뤄진다.
나는 이창호가 제9회 후지쓰배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던 96년에 바둑 담당 기자였다. 이창호의 국내외 대국이 열리면, 검토실에 조용하게 와있던 이창호의 부친인 이재룡 씨와도 대화를 나누곤 했다. 전주에서 시계포를 한다는 이창호 부친은 키도 작고 덩치도 작다. 김해에서 쌍문동으로 올라온 금은방 봉황당 주인 최무성과 외모는 다르지만 차분한 성격은 서로 비슷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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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성은 ‘곰’이다. 그리고 원칙주의자다. 강도가 들어왔다는 이야기에도 표정은 그대로인 채 ‘위험하네‘라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아들 택(박보검)이 사고를 당했다는 오보에는 이성을 잃을 정도였다. 아내를 잃고 자식까지 잃을까봐 거의 미쳐버리는 모습을 보여준 아빠였다. 아들의 안전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차분한 ‘곰‘ 캐릭터로 돌아온 아빠 무성의 부성애, 멋있지 아니한가.
평소 차분한 아빠가 이런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을 실제 아들이 알게 된다면 “아빠는 내가 전부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응팔’에서 기존 드라마와 다른 캐릭터 어필법을 보이는 또 하나는 정봉(안재홍 분)이다. 그래서 정봉과 봉황당, ‘투봉’의 매력이 부각되면서 큰 인기다.
정봉은 요즘 말로 하면 ‘덕후’다. 6수생 정봉은 대학에 또 떨어지지만 마니아적 기질이 농후하다.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즐겁게 산다. 과거에는 ‘행복한 바보‘ 또는 ‘동네 백수 형’으로 봤지만, 요즘은 ‘색깔 있는 싹수’다. 능력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정봉은 부모가 아이의 적성과 상관없이 몰아붙이지만 않는다면 행복하게 될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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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은 정봉-장만옥 러브라인을 만들면서 ‘늑대의 유혹‘ 우산신을 패러디했었다. 어떻게 정봉을 ‘살찐 강동원‘으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이건 드라마만 만들어온 PD와 작가들은 하기 힘든 발상이다. 예능과 드라마의 경계와 형식, 개념을 버릴 때 가능한 이야기다. 덕분에 정 봉은 ‘봉블리’로 매력적인 캐릭터를 얻었다.
정봉은 병실에 누워있는 만옥에게 직접 편지를 전하러 가지만, 하루 종일 병실 밖을 맴돌다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편지 전달에 성공했다. 병실에 갇혀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장만옥에게 준 선물은 어디건 갈 수 있는 ‘부루마블’ 우주여행권이었다.
정봉이라는 이 친구 머리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정봉은 앞으로도 기대되는 캐릭터다.
드라마만 만들어온 PD와 작가들은 무성과 정봉 캐릭터를 확 부각시키지 못한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스타일의 차이다. 최무성과 안재홍은 예능 출신인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를 만나 훨훨 날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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