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팔’, 덕선이 같은 아이를 많이 길러내야 하는 이유

-덕선이는 소통왕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 기자] TV에서 청소년들이 나와 인터뷰를 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최근 방송된 KBS1 ‘다큐공감’ 여고 축구부편에 나온 마산의 한 여고생도 그렇고, ‘SBS특별기획-바람의 학교’에도 따돌림을 당했던 경험담이 방송됐다. KBS 2TV ‘후아유-학교2015’와 ‘발칙하게 고고’ 등 청소년 드라마에도 학교폭력과 왕따 문화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학원물은 대부분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기획된다. 하지만 청소년을 둘러싼 자극적인 환경이 더 압도적으로 다가와, 오히려 본질이 상황에게 압도당한다. 

그런 점에서 tvN ‘응답하라 1988’ 14화 ‘걱정 말아요 그대’ 편은 그런 왕따 문화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내용이 훈훈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져 호평을 받았다.

덕선(혜리)은 공부는 꼴찌지만 착한 마음씨만큼은 일등이다. 간질을 앓고 있는 반장의 엄마에게 특별히 부탁을 받은 덕선은, 반장이 갑자기 간질 증세를 보이자 반 친구들을 시켜 교실 문을 닫고, 간단한 응급처치로 반장을 안전하게 보살폈다.

그 다음 장면이 압권이었다. 양호실에서 깨어난 반장이 교실로 돌아오고, 본인이 무안해하고 있을때, 덕선이와 친구들이 보여준 뜻밖의(?) 반응이다. 

이상한 사람 쳐다보는 듯한 표정으로 삼삼오오 수군거리지 않았다. 덕선이를 포함한 반 친구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반장과 함께 도시락을 나눠먹었다. 덕선이는 숟가락을 가져오지 않았다면서 반장의 숟가락을 빌려 입에 넣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창 시절, 교실에서 발작을 일으켜 간질병을 앓는 친구를 목격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학우를 어떻게 도와주고, 어떻게 함께 하느냐를 가르쳐주고 실천하는 교육이 성적 한 점 올리기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비현실적인 이야기여서 슬프기는 하지만) 그래야 따돌림 없는 세상이 올 것이다.

왕따 없는 교실, 질병이 있는 친구마저 끌어안는 교실의 훈훈함은 찡한 감동으로 힐링을 선사했다. 현실이 아닌 드라마이고 판타지였지만 눈물이 날 정도였다.

학교가 공부만 잘하는 인간을 기르는 동안 교실의 분위기는 점점 삭막해져갔다.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며, 남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아이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덕선은 공부는 뭇하는데, 똑똑하고 착하다.

우리는 덕선(혜리)이 같은 아이를 많이 길러내야 한다. 이게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이다. 학교에서 덕선이 같은 아이가 많아져야, 왕따가 없어지고 사회가 따뜻해진다. 덕선은 얼굴보다 마음이 훨씬 더 예쁜 아이다.

물론 덕선이 같은 성숙한 아이가 갑자기 탄생될 리는 없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와 이웃과 함께 지내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들은 학교 갔다 오면 친구들끼리 많이 논다. 과외공부도 별로 하지 않는 시절 시험을 보기 전 며칠간을 제외하면 여유가 많았다. 그게 학생이다. 어릴 때부터 친구과 이웃이 자신의 생활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다.

요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되는 ‘소통’에 관한 한 덕선은 으뜸이다. 소통 대마왕이다. 누구와도 잘 지낸다. 페이스북에서 친구를 몇백명씩 만들고 ‘좋아요’를 마구 누른다고 해서 소통을 잘하는 게 아니다. 덕선은 이웃집 한 사람 한 사람과도 대화가 통하며 다양한 관계맺기를 하고 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에 따르면 “이 사람 저 사람과 모임을만들어 네트워크를 결성하고 내 편을 만드는 건 외로움과 불안감을 숨기기 위한 것이다”고 말한다. 사실 그런다고 소통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 그 모임의 사람이 내 편인 것도 아니다.

결국 왕따도 불안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 자신이 공격받지 않기 위해 공격하는 메카니즘이다. 성적지상주의에서 자란 아이에게 인간은 합격자(성공)와 불합격자(실패, 낙오)로만 나눠진다. 더불어 함께 지내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 덕선이가 새삼 대견해진다.

덕선이가 공부를 잘 못해도 부모는 아이를 몰아붙이지 않는다. 성동일과 이일화는 경제적 여유는 없지만 자식을 제대로 키우고 있는 것이다. 요즘도 실제 ‘덕선’과 같은 아이는 많다. 하지만 부모가 아이의 적성과 상관없이 몰아붙인다면 아이는 불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공부는 못해도 소통을 잘하고 행복해하는 아이를 기를 것인가, 공부는 잘하는데 소통과 배려가 엉망인 아이를 기를 것인가. ‘응팔’이 간접적으로 제기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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