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경 “영화 살리기 위해 나를 죽였다”

영화 ‘널 기다리며’로 첫 스릴러 도전
모홍진 감독 “그녀라면 다를 것 같았다”

“눈을 희번득하게 뜨고 칼로 누구를 찌르고, 그렇게 연기 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할 자신도 있고요. 그런데 그렇게 연기하는 게 과연 희주에게 맞는 거고 영화에 맞는 건가…. 나를 죽이는 연기가 정말 어려운 연기라 생각하거든요. 이번 영화에서 그걸 한 번 도전해 본 것 같아요.”

배우 심은경(22)의 첫 스릴러 도전이었다. 10일 개봉한 영화 ‘널 기다리며’(감독 모홍진)에서 심은경은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죽인 범인의 출소를 15년간 기다렸다가 복수에 나서는 희주로 분했다.

아역으로 데뷔한 지 어느덧 13년이 흘렀다. ‘써니’(2011), ‘수상한 그녀’(2014) 등 그동안의 연기로 ‘믿고 보는 배우’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그렇지만 이번 영화를 두고서는 촬영 1년여가 지나도록 아직도 연기에 아쉬움이 남아있는 듯했다. 


끔찍한 복수를 실행에 옮기는 중에 얼핏 보이는 소녀의 순수성이라는 이 양면성을 이해하고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극단적이고 대조적으로 표현할 것인가, 혹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 간극을 이어볼 것인가. 고민하던 심은경은 후자를 택했다.

심은경은 “최선을 다 했지만 내 연기가 최선으로 희주를 표현한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관객한테 설득이 되고 공감이 갔을까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연기에 냉정하고 또 솔직했다.

“그동안은 항상 만족은 못했는데, 확신은 있었어요. 어딘지 모르게 자신이 있었거든요. ‘최선을 다 하고 진심을 보여줬으면 된 거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 캐릭터는 조금 어려웠어요. 복수를 꿈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함을 지니고 있는 캐릭터라서, 제 스스로 확신이 조금 안 들었던 것 같아요.”

심은경이 연기한 희주는 애초 시나리오에선 남성 캐릭터였다. 설정을 바꾼 것은 모홍진 감독이다. 심은경을 보고난 뒤 내린 결정이었다. 모 감독은 지난달 열린 영화 제작보고회에서 “남자 캐릭터라면 대결이 격하고 재밌을 것 같았지만 심은경이 연기한다면 남과 다른 느낌의 스릴러가 나올 수 있겠다는 확신을 줬다”라고 말했다.

흔치 않은 스릴러 캐릭터를 덜컥 선택하고서, 그때부터 심은경의 머릿속은 고민의 연속이었다. “스스로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다른 선과 악을 보여주고자 했는데 톤앤매너(tone and manner)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라는 고민의 흔적이 인터뷰 내내 이어졌다.

다만 심은경은 스스로의 연기 톤을 죽여서라도 영화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여리고 착했던 아이가 아버지가 살해당한 상처 때문에 뒤틀려버렸고, 그래서 ‘이 아이는 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예요. 영화 전체가 보여야 나도 보이고 다른 배우들도 보이고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가장 중요했어요.”

‘완벽주의 콤플렉스’를 갖고 연기만 생각하고 살았다던 심은경은 최근 시야를 넓혀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래보다 먼저 사회에서 경험한 부분은 있겠지만 반대로 내 자신이 어떤 취미를 좋아하고 난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 같다”라며 “이제야 혼자 여행도 다녀보면서 나를 발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은 ‘연애도 좀 해, 너 나이대에 할 수 있는 걸 즐겨’라는 조언을 들어도 ‘나는 연기를 좋아하고 내 삶의 전부인데 어떻게 다른 걸 생각하며 살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듣지 않았어요. 그게 다가 아닌 건데, 내 나이대를 즐길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깨달은 게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요.” 

이세진 기자/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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