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아무리 들어도 아내라는 사람의 목소리가 남자 목소리다. ‘마이클이 남자와 결혼했나?’ ‘잘못 들은 건가?’ 생각이 꼬리를 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금 전 마이클이 탄 택시 운전사도 같은 목소리였던 것 같다. 전화기 너머 아내가 바꿔준 아들도 똑같은 목소리다.
권태로움에 발버둥치던 마이클은 그의 강의를 들으러 온 리사를 우연히 마주한다. 리사는 운명처럼 ‘다른 목소리’를 가졌다. 단숨에 리사에게 끌린 마이클은 그와 달콤한 하룻밤을 보낸다. 한 줄기 햇살처럼 새로운 목소리를 찾은 그는 리사와 평생을 함께 살겠다고 다짐한다.
영화에는 마이클과 리사 말고도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이 둘을 뺀 모든 사람은 하나의 목소리로 표현됐다. 남녀노소 없이 건조한 목소리다. 찰흙인형들의 얼굴도 마찬가지다. 무표정도 한결같다.
그가 머무는 ‘프레골리 호텔’의 이름은 주변 모든 사람들이 실제로는 한 사람이지만 다른 모습으로 변장해 있는 것이라고 믿는 ‘프레골리 증후군(fragoli syndrom)’이라는 병명에서 따 왔다. ‘아노말리사’라는 제목은 극중 마이클이 비정상라는 뜻의 ‘아노말리(anomali)’에 리사의 이름을 합성해 만들어 준 애칭이다.
영화는 클레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카메라를 고정시켜놓고 점토를 변화시켜가며 움직임을 만드는 방식)이라는 다소 ‘유아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다루는 주제는 절대 단순하지 않다. 중년의 권태와 그 사이 비친 일탈의 희망을 흥미로운 장치들로 등장시킨다.
다만 마이클의 권태는 어디에서 오는지, 왜 도망치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부족하다. 앞뒤 맥락보다는 현재 진행형의 고독을 그렸다.
기발한 상상력과 철학적인 접근으로 극찬받았던 ‘존 말코비치 되기’(감독 스파이크 존즈, 2000), ‘이터널 선샤인’(감독 미셸 공드리, 2005) 등의 각본을 썼던 찰리 카우프만의 첫 애니메이션 각본ㆍ연출작이다. 제72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애니메이션이지만 드물게 ‘19금’이다. 극중 실제 사람인 것처럼 표현된 정사 장면 때문이다.
30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9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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