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배우①] 연극배우로 돌아간 ‘천만요정’ 오달수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별로, 별로.”12년 동안 조연만 하던 배우 오달수(48), 드디어 ‘원톱’ 주연작인 ‘대배우’(감독 석민우)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세상은 영화의 10퍼센트가 아니라 90퍼센트 이상 등장할 오달수의 모습을 보며 박수칠 준비를 이미 마친 듯하다. 모두가 그를 응원하는데, 웬일인지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사회 때 머리가 다 아프더라니까. 다시는 주연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딱히 내가 주연을 찾아서 할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석민우 감독님 영화에서 주연을 한 건 스쳐 지나가면서 했던 10년 전 약속 때문이었지. 약속을 깰 수가 없는 거죠, 그동안 너무 단단해져서.”

박찬욱 감독의 ‘박쥐’(2009)를 촬영하던 때다. 당시 조감독이던 석민우 감독은 오달수에게 “선배님 다음에 제가 입봉하면 꼭 출연해 주세요”라는 말을 남겼다. 얼떨결에 오달수도 “어, 그래 그러자”라고 대답했고, ‘약속’이 맺어졌다. 그때부터 작품회의 한 번 없이 감감무소식. 그러던 어느날 석 감독이 시나리오 한 권을 들고 오달수를 찾아왔다. 그는 “나한테 이 시나리오를 가져왔다는 것보다, 연극판의 생리나 에피소드에 대한 조사를 잘하고 시나리오를 썼기에 놀랐다”고 회상했다.

[사진=첫 주연작인 영화 ‘대배우’의 오달수를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사진=첫 주연작인 영화 ‘대배우’의 오달수를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대배우’는 연극판에서 연기를 시작해 영화계의 감초로 자리 잡은 오달수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 영화다.

대학로에서 20년째 연극 ‘플란다스의 개’에서 대사 하나 없는 ‘파트라슈’ 역할만 전문으로 해 오던 배우 장성필(오달수)이 대한민국 대표 감독 깐느박(이경영)의 영화에 출연할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대배우’라는 말은 극중 절망적인 상황에서 장성필의 부인(진경)이 휴대폰에 저장해 놓은 남편의 애칭으로 등장한다. 관객에게는 영화 포스터를 꽉 채운 오달수의 얼굴 자체가 ‘대배우’의 모습으로 느껴질 터다.

 

[사진=첫 주연작인 영화 ‘대배우’의 오달수를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윤병찬 기자/yoon4698@heraldcorp.com]

1990년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통해 연극 무대에 데뷔한 오달수는 2002년 ‘해적, 디스코 왕 되다’로 영화판에 발을 들였다. 이후 ‘올드보이’, ‘달콤한 인생’, ‘7번방의 선물’, ‘암살’, ‘국제시장’, ‘베테랑’ 까지 굵직한 한국영화들에서 얼굴을 비췄다. 줄줄이 이어진 흥행에 ‘천만요정’이라는 별명까지 따라붙었다.

‘대배우’는 오달수에게 연극판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 영화였다. 그는 장성필처럼 연극배우 시절 ‘개’나 ‘나무1’ 역을 맡은 적도, 배역을 따내려고 감독을 집요하게 스토킹한 적도 없지만 “포스터 빨리 붙이기 대회가 있다면 나갈 자신이 있다”고 했다.

“연극이든 영화든, 그냥 연기자로 살아간다는 게 만족이죠. 옛날 생각 하면 좋기도 하고. 그때 행복했던 순간, 추억거리만 가슴 속에 남는 거지. 포스터 붙일 때 힘들었지만 2인 1조로 걸어갔다 오면서 새벽에 도란도란 나눴던 이야기들 기억나고, 그 먼 길을 가면서도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아침에 토큰 두 개 들고 출발했거든요. 첫차 다닐 때 나와서 막차 때 들어가고.”

처음에는 ‘돈 많이 주는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시작했던 영화가 이제는 그의 본업이 됐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오달수에게 주어진 주연 시나리오. 동료 배우 황정민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고 진지하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싱겁게도 “해보니까 힘들지? 그냥 해봐, 해보면 다 알게 돼 있어”였다고.

오달수는 연기가 아직도 힘들다며 “가면 갈수록 힘든 게 정상”이라고 했다. 아주 단순하게 몸에 베어서 기계처럼 하는 단순노동 이외에는 가면 갈수록 힘들어지는 게 정상적인 ‘직업’이라는 지론이다. 그런데도 ‘천만요정’에서 ‘다작요정’이라는 파생어까지 달고 다닐 정도로 그는 쉴새 없이 일한다.

“제가 작품 욕심이 좀 있습니다. 분명히 그런 각오를 하거든요. ‘야, 이번 작품을 끝내고는 한 달 정도 부산 가서 아무 생각 없이 낚시나 하고 살아야지’. 그런데 며칠 있다가 또 시나리오 읽다 보면…. 못 쉬는 거죠. 난 차라리 쉬는 것보다,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은 작품을 하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제2ㆍ제3의 오달수’가 될 후배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남겼다.

“장성필처럼 감독 따라다니며 그렇게 스토커처럼 안 굴어도, 끝까지 버티면 반드시 기회는 온다. 저는 백 프로 장담하거든요. 굳이 영화나 TV로 진출하려고 연극을 한다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지만, 새로운 얼굴을 이쪽 연극바닥에서 찾게 되거든요. 기회는 백프로 온다, 거짓말 보태서. (웃음)”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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