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배우’(감독 석민우)는 한국 영화계에 대한 사모곡으로 가득 차 있다. 무명 연극배우에서 한국영화계 대체 불가능한 배우가 된 오달수에게 바치는 108분짜리 헌사로도 기능한다.
20년째 대배우를 꿈꾸는 무명배우 장성필(오달수)은 대학로에서 아동극 ‘플란다스의 개’의 파트라슈 전문 역할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극단 생활을 같이하던 선배 설강식(윤제문)이 국민 배우로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 자신도 대배우가 되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생활은 계속 어려워지고, 가족들마저 짊어져야 할 짐처럼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장성필은 대한민국 대표 감독인 깐느박(이경영)이 새 영화 ‘악마의 피’의 사제 역할 배우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영화 출연을 이미 확정한 설강식에게 찾아가 자신을 추천해 줄 것을 부탁한다. 장성필은 가까스로 일생일대의 기회를 손에 잡는다.
스토리 자체는 단순하다. 소위 ‘메이저’ 매체인 영화로 진출하고자 하는 배고픈 연극배우의 삶을 그렸다. 주인공의 주변부에는 연극판의 어려운 생활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릿하게 보이는 희망과 가능성도 비추어진다. 끝끝내 깨지지 않는 가족애는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지향인 듯하다.
그러나 영화는 이야기보다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제작 과정이나 그동안의 한국 영화계 기념비적인 작품들, 그리고 배우 오달수에 대한 존경심이 가득 엿보인다.
영화 시작부터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의 황야 액션을 패러디한 장면이 등장한다. 윤제문이 ‘놈놈놈’에서의 이병헌 의상을 입고 모래바람 속에서 액션을 펼친다. 실제 김지운 감독과 쏙 닮은 까메오도 등장한다.
윤제문이 연기한 캐릭터 설강식의 이름도 설경구ㆍ송강호ㆍ최민식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서 조합해 만들어졌다. 이경영이 연기한 깐느박도 실제 인물인 박찬욱 감독을 패러디한 캐릭터다. 박 감독 아래에서 오랜 조감독 생활을 한 석민우 감독이 그를 오마주했다.
설강식을 납치한 장성필이 ‘박하사탕’에서의 설경구, ‘살인의 추억’에서의 송강호, ‘올드보이’의 최민식의 연기를 펼치는 장면도 한국 영화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오랜 조감독 경력으로 ‘마당발’이 된 석민우 감독은 김명민, 유지태, 김새론, 이준익 감독을 까메오로 끌어들였다. 영화를 보다 반가운 얼굴을 마주치는 재미도 있다.
다만 한국 영화에 대한 애정이 그리 많지 않은 관객이라면 남들이 웃는 포인트에서 ‘왜 웃지?’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박찬욱 감독을 똑같이 따라한 이경영의 ‘싱크로율 백퍼센트’ 매소드 연기도 평소 그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재미 포인트가 되기 어렵다. 또 영화 ‘박하사탕’에서 설경구가 “나 돌아갈래”를 외치던 장소의 로케이션 장면도 마찬가지다.
‘아는 만큼 보이는’ 잔재미는 쏠쏠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스토리 자체는 밋밋하게 느껴진다.
30일 개봉. 12세 관람가. 1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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