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화 밥그릇 싸움?’ 극장 재개봉 영화 러쉬의 명과 암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한번 봤던 영화라도, 어두운 극장에 앉아 커다란 스크린으로 다시 마주한다면 ‘다른 영화’가 될 수 있다. 최근 불어닥친 상업영화의 극장 재개봉 열풍은 이 지점을 노린다.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지만 극장 관람을 놓친 영화, 한 번 봤지만 몰입해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를 보려는 영화팬들이 재개봉 영화들의 주 고객층이다.

하지만, 이름있는 영화들의 ‘재개봉 러쉬’가 도리어 신작 독립ㆍ예술영화들의 설 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검증된 영화ㆍ극장 다양성에는 긍정적= 평소 예술영화를 즐겨보는 대학원생 홍모(여ㆍ26) 씨는 최근 늘어난 극장 재개봉 영화들이 반갑다.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것이 취미인데, 재개봉 영화들이 일종의 ‘선택 기준’이 되어줄 때도 있다. 홍씨는 “이미 작품성이 입증된 영화들이 재개봉을 하기 때문에 ‘실망할 리 없는 영화’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고 했다. 그는 또 “새로 개봉하는 상업영화들보다 오히려 볼 의향이 생기는 영화들이 많이 재개봉해서 좋다”고도 덧붙였다.

실제로 재개봉 영화들은 상업영화 일색인 극장에 다양성을 불어넣고 있다. 올해 1분기에만 벌써 10개 남짓한 영화들이 극장에서 재개봉됐다.

지난달 17일에는 일본 멜로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4)이, 31일에는 홍콩의 전설적인 배우 장국영(1956~2003)의 13주기를 추모하는 의미로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영화 ‘성월동화’(1999)가 재개봉해 현재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이어 4월에는 ‘비포’ 시리즈의 첫 작품인 ‘비포 선라이즈’(7일), 제2차 세계대전의 나치 강제 수용소를 그린 걸작 ‘인생은 아름다워’(13일), 이탈리아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낭만적인 멜로영화 ‘냉정과 열정사이’(21일)가 줄줄이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영화 수입사들이 가진 좋은 영화들이 극장에 다시 걸리는 것은 극장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일조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 ‘작은 영화 밥그릇 싸움’ 비판= 대규모 배급을 앞세운 상업영화에 밀려 작은 영화들이 제한된 수의 상영관을 ‘나눠먹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신작 독립영화와 재개봉 영화 사이 밥그릇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오동진 평론가)는 목소리도 높다.

영화 제작 완료 2년여가 지나 극장 개봉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던 독립영화 ‘수색역’(감독 최승연)이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31일 개봉했다. 첫날 24개이던 상영관은 계속해서 줄어들어 5일 16개가 됐다. 같은날 메가박스에서 단독 재개봉한 ‘성월동화’는 12~13개 상영관을 유지했다.

비슷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지만 앞서 재개봉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점유하고 있는 12~13개 상영관 숫자를 고려하면 새 영화가 재개봉 영화에 밀리고 있는 현실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영화 수입ㆍ배급사들은 이미 보유한 통상 5년, 7년짜리 판권으로 극장 재개봉에 큰 비용을 들이지 않을 수 있다.

‘수색역’의 안지호 프로듀서는 “이 경우 극장 재개봉에 비용발생이 거의 되지 않고 어떻게 하든 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상영관 수가 제한된 상황에서 상영관을 찾는 독립영화들의 입장에서는 ‘갑의 횡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라고 토로했다.

게다가 재개봉 영화들이 다양성영화가 개봉될 자리에 들어앉는 일이 많아 더 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대형 멀티플렉스가 운영하는 ‘아트하우스’, ‘아르떼’, ‘아트나인’ 등은 원래 개봉관을 찾기 어려운 독립ㆍ예술영화에 상영관을 내 준다는 취지로 등장했지만, 재개봉 영화들에 자리를 내어 주는 추세다.

이에 대해 오동진 평론가는 “극장 환경을 효율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라면서 “아트하우스보다는 멀티플렉스 본관에서 재개봉 영화를 틀면 배려도 되고 상생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상설 클래식관 생길까’ 관측=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극장에 재개봉한 영화는 107편에 달한다. 2011년 4편에 그쳤던 재개봉 영화는 2012년 8편, 2013년 28편, 2014년 61편, 2015년 107편으로 매년 2배 가까운 폭발적인 확대를 기록하고 있다.

흥행 성적도 나쁘지 않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재개봉한 ‘이터널 선샤인’은 31만5000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2004년 첫 개봉 당시 16만9000명이던 성적을 훨씬 뛰어넘은 바 있다. ‘이터널 선샤인’에 이어 지난해 재개봉 흥행 2위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관객 15만9000명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이같은 추세에 재개봉 시장이 계속해서 확대될 경우 ‘상설 클래식관’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영화 판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를 쓰고자 하는 욕구가 있을 것이고, 영화를 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할 것”이라면서 “궁극적으로 멀티플렉스에서 재개봉 전용관이 만들어지거나 하는 분위기가 시일 내에 형성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영화 구매력이 있는 50~60대는 이미 멀티플렉스라는 극장 문화를 학습한지 20년이 되어간다”라며 “이들이 옛날 영화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그러한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관측했다.

jinlee@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