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진행한 KBS 2TV 다큐멘터리 ‘버스’의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재혁 PD는 “버스라는 공간을 통해 주변 사람들을 새롭게 바라보고자”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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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과정은 단촐했지만 험난했다. 제작진은 작은 핸디 캠을 들고 버스에 올랐다. 제일 앞자리부터 다섯 명이 앉을 수 있는 가장 뒷자리까지 카메라로 훑고 무작정 시민들에게 다가섰다. 다큐멘터리의시작은 버스지만 마지막 행선지는 예측할 수 없다. “허락한다면 한 명 한 명 시민들의 목적지까지 동행”하기도 한다.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을 따라 또 다른 일상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이야기할 준비가 돼있는 평범한 사람들은 “몇 마디 나누지도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툭 꺼내놓았다”(길다영 PD)고 한다. “생각보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된 건 제작진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일반인이 주인공인 프로그램이다 보니 촬영과정이 순탄치 만은 않았다. 촬영을 거부하는 사람은 기본이다. 지방까지 따라 내려갔지만 소득이 없을 때도 있었다. 방송을 약속받고 3일 뒤에 돌연 거부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KBS 다큐멘터리라고 했지만 시청자 상담실로 확인 작업을 하는 출연자도 적지 않았다.
‘맨땅의 헤딩’에 가까운 쉽지 않은 촬영이었다고 제작진은 입을 모은다. 그 결과 제작진의 개입을 최소화해 인위성과 자극을 줄인 ‘리얼 다큐’가 태어났다.
다큐 ‘버스’를 ‘리얼’하게 만드는 두 가지 요건이 있다.
첫째로는 대본, 섭외, 연예인이 없는 3무(無) 프로그램이다. 출발은 ‘버스’지만 대상과 종착지는 정해지지 않는다. 버스에 탄 불특정 다수의 시민이 출연진이 되고, 그들의 이야기가 대본이 된다.
둘째는 내레이션이 없다는 점이다. 제작진은 “감정을 배제하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이른바 ‘MSG’를 쏙 뺀 담백한 다큐다. 최대한 작위적인 편집이나 주관적인 감정을 배제하겠다는 의도다. 다만 제작진은 KBS 라디오 프로그램의 한 토막으로 공백을 채웠다. 버스를 타면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를 연출하면서도 상황에 맞는 분위기의 프로그램을 넣는 식이다. “흘러나오는 라디오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흔적을 보여주는 쉬어가는 타임 정도의 구성”(이재혁 PD)으로 자리했다. 유인나, 박명수 등의 DJ가 전하는 멘트는 다큐멘터리 ‘버스’의 내레이션이 되기도 하고, 배경음악(BGM)이 되기도 한다.
10대부터 50대까지 누구나의 일상을 꾸밈없이 담아낸 ‘버스’의 또 다른묘미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역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장르를 넘나들었다. ‘예능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자막이 등장이 그렇다. 방영 채널이 1TV보다 젊고 참신한 2TV라는 채널상의 경계가 그 이유다. 이재혁 PD는 “기존 다큐가 ’궁서체‘라면 다큐 ’버스’에는 재미를 위한 예능적 요소를 가미했다”고 말했다.
리얼 휴먼 다큐로 출발한 버스는 연예인이 아닌 여느 시민이 출연하는 예능 한 편으로 핸들을 돌리고 있다. 하루 평균 1700만 명, 1700만개의 사연을 실어 나르는 버스. 탑승 시간은 18일 오후 8시 55분 정류장은 KBS 2TV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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