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 PD는 중년들만 보던 사극을 젊은이들도 볼 수 있게 했다. 이야기 진행을 빨리하고, 추리기법을 도입해 수사장르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날 때도 있게 만들었다. 궁중을 벗어난 사가에서는 고어체가 아닌 현대어를 사용한 것과 의상에 색을 도입해 파스텔톤 의상을 선보인 것 모두 이병훈의 시도다.
이제는 보편화된 일이지만, 국악과 클래식 음악이 깔리던 이전사극과는 달리 유키 구라모토와 같은 뉴에이지 음악이나 현대음악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 이병훈 감독은 하는 사극마다 성공시켰다. ‘허준‘ ‘상도’ ‘대장금‘ ‘이산’ ‘동이‘ ‘마의’ 등으로 흥행불패신화를 이어갔다. ‘이산‘까지는 퍼펙트 성공이었지만, ‘동이’부터는 시청률 1위 자리를 빼았기기도 한 불완전한 ‘성공‘이었다. 매체와 채널 다변화와 새로운 형태의 사극 유입 등이 이유였다.
이병훈 감독은 27일 사극 대부대(?)가 총출동한 가운데 열린‘옥중화‘ 제작발표회에서 “1999년 ‘허준’부터 사극 형태로 바꿔서 시작했는데, 늘 시작할 때는 새로운 거라고 생각하고 내보냈는데도 허준 짝퉁이고, 상도 짝퉁이라는 말도 나왔다. ‘이산’은 ‘허준‘과 상관이 없는데도 비슷하다고 생각하신 분도 있었다. 그 딜레마를 알고 있다”면서 “‘이산’까지는 괜찭았는데, 그후부터는 1등을 추월 당하기도 했다. 요즘은 시청률 올리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그래서 두렵다. 하지만 두가지 모토는 꼭 지키고 싶다”고 털어놨다.
이 감독은 “첫번째 모토는 재미이고, 두번째 모토는 교훈적인 면이다”면서 “재미 제공은 너무 어렵다. 풀지 못하는 과제다. 그래서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재미와 교훈성을 주기 위해 시도하는 이 감독의 방식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그동안 실존인물을 많이 다뤘다. 실화이기 때문에 강점이있다. 우리 역사에 이런 사실이 있었구나 하는 리얼리티다. 하지만 단점은 경과와 결과를 시청자들이 다 안다는 사실이다. ‘이산‘에서 누가 언제 죽는지 다 안다. 예상을 뒤엎는 에피소드 를 만들기 힘들다. 시청자가 예상하기 힘든 소재와 내용이 필요했다. ‘옥중화’는 문정왕후, 정난정, 이지함, 임꺽정, 전우치등 유명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명종 시대, 감옥과 변호사 조직이라 할 수 있는 외지부를 통해 교훈성을 줄 수 있다. 재미는 마치 톰소여의 모험처럼 시청자가 뒤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것이었다. 이를 위해 지하의 동굴도 만들었다. 주인공은 가공인물이지만, 대부분이 실존인물이라 사실감이 있을 것이다.”
이병훈 사극는 교육적인 가치를 중시한다. 역사속에 묻혀있는 인물의 업적이나 이야기를 끄집어내 소재로 선택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점도 교육적인 의미가 있느냐다. 나라 세금의 반 정도를 내며 ‘장사란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던 거상 임상옥(이재룡)의 ‘상도’나 천한 신분인 마의에서 인의로 성장하는 백광현, 천민 출신의 괴로움을 안고서도 아들을 훌륭하게 교육시켜 왕(영조)으로 만든 최숙빈이 등장하는 ‘동이’ 등은 모두 그런 기준에서 선정된 아이템이다.
“우리 세대는 임오군란, 갑신정변 하면 발생연도가 바로 머리에서 나온다. 우리 자식 세대는 연도 외우기가 진저리가 난다고 했다. 이런 걸 드라마를 통해 재밌게 풀면 간접적인 교육 적 효과도 있을 것이다. 간혹 사극의 드라마성과 역사성이 배치될 때가 있다. ‘이산‘에서 정순왕후는 쿠테타를 한 적이 없는데, 쿠데타를 지휘하는 걸로 전개해 비판을 받았다. 반성을 많이 했다.
청소년들이 역사를 사극으로 배우는 경우가 많다. 그 후부터는 그 한계가 어디인지, 정순왕후의 쿠데타는 되는지 안되는지, 이런 고민을 많이 한다. 중요한 역사적 사실의 왜곡은 절대로 안된다. 하지만 재미를 위한 가벼운 내용의 추가는 할 수 있다고 본다.”
이병훈 사극은 모두 석세스 스토리다. 수많은 실패끝에 모험과 도전으로 성공하는 7전8기형 인물들이 많았다. 그의 사극을 RPG 미션 사극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때문이다.
이 PD는 사극을 만들면서 성공하는 사람의 모습들은 거의 다 담았다고 했다. 그래서 과정이나 패턴이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실제 성공한 사람들의 기존 모델을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했다면 이전과 달라질 수는 있지만 감동을 주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 PD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현장을 지휘하고 찍는 연출이 아니라 캐릭터를 새롭게 만들고 스토리를 50회로 구성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항상 새로운 걸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하다보니,내의원, 수랏간, 도화서 같은 걸 하게됐다. 새로운 걸 찾다 이번에는 전옥서라는 감옥을 하게 됐다. 감옥도 고통만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희노애락이 묻어나 있는 공간이다. 감옥이 극적이고 어두운 곳이니까 명랑한 인물(진세연)이 나오게 했다. MBC에서 ‘대장금’을 이를만한 여인의 이야기를 해달라는데 나도 동의했다.”
오는 30일 첫방송되는 ‘옥중화’는 옥에서 태어난 천재 소녀 옥녀와 조선상단의 미스터리 인물 윤태원의 어드벤처 사극이다. 이병훈 감독과 최완규 작가가 ‘상도‘ 이후 16년 만에 다시만난 사극이다. 고수, 진세연, 정다빈, 김미숙, 정준호, 박주미, 윤주희, 최태준 등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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